시집『매화에 이르는 길』(2017)

비우고 버리다 - 치매행致梅行 · 160

洪 海 里 2015. 5. 25. 10:29

비우고 버리다 

- 치매행致梅 · 160

 

洪 海 里

 

 

 

훨씬 더 오래 산 나보다 먼저

아내는

한 사람의 일생을 다 내려놓고

자유로운 영혼이 되었는데

 

나는 아내가 내려놓은 것까지

몽땅 짊어지고 낑낑거리고 있으니

한심하기 그지없다

 

바라보기만 해도 울렁거리던 가슴

물 건너간 지 오래

이제는 절벽처럼 먹먹하고 막막해

  

오늘은 마음속에 어떤 밥그릇을 안고

살아야 하나

스산한 봄날이 가고 세상은 푸르른데

민들레 꽃씨 하나 어딘가로 떠 가고 있다.

 

 

 * 다 비우고 버렸어도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사이가 부부다.

려놓은 것 무심코 보다가도 문득, 다시 돌아올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앉는 이가 부부다.

나는 다 내려놓고 자유로운 영혼이 되는 상황을 경험하지는 않았으나, 그 모습도 가슴에 새로 살림을 차리는 일로 여긴다.

망각의 지점에 오가는 아내 곁에 머물지 못한다면 남은 날이 더 슬퍼질 것이다.

 

  서로 흔적을 버릇처럼 챙기니 부부다.

이제 바라보기만 해도 울렁거리던 가슴의 기억이 멀지만, 마음껏 슬퍼할 수 있는 구역을 벗어나지 않는 것이 부부다.

봄날은 가고 우리 생은 점점 가벼워진다. 절벽 앞에 서서 이별을 예감하는 날이 오면 나는 무슨 말을 할까.

마침 날아가는 꽃씨라도 눈에 들면 어찌할까. 잊는 것은, 또 다른 꽃으로 피는 일이라고 적을 수 있을까.

       - 금 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