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매화에 이르는 길』(2017)

<시> 늙은 밥 -치매행致梅行 · 159

洪 海 里 2015. 4. 11. 04:24

늙은 밥

- 치매행致梅行 · 159

 

洪 海 里

 


 

아내와 마주앉아 아침을 먹다 보니

밥이 아주 많이 늙었습니다

피부도 거칠고 주름 지고 저승꽃도 보입니다

꽃이 피는 밥을 아침으로 먹습니다

저녁이 아니라 아침입니다

아침은 가장 신선한 시간인데

태어난 지 며칠이나 되는 늙은 밥입니다

늙은 밥이 늙어서 불쌍하다고

숟가락 젓가락이 가락가락加樂加樂 놉니다

숟가락이 일할 때 젓가락이 놀고

젓가락이 일할 때 숟가락이 노래합니다

아침 먹은 힘으로 설거지를 합니다

밥 그릇 국 대접 반찬 접시

숟가락 젓가락 찻잔까지

씻고 부시고 깨뜨리면서 끝장이 납니다

아내는 노랜지 울음인지도 모르고

그냥 웃음꽃을 피우지만

꽃잎은 내 가슴에 떨어져 나를 울립니다.

 

 

 

* 국립4·19민주묘지에서, 2015.3.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