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밥
- 치매행致梅行 · 159
洪 海 里
아내와 마주앉아 아침을 먹다 보니
밥이 아주 많이 늙었습니다
피부도 거칠고 주름 지고 저승꽃도 보입니다
꽃이 피는 밥을 아침으로 먹습니다
저녁이 아니라 아침입니다
아침은 가장 신선한 시간인데
태어난 지 며칠이나 되는 늙은 밥입니다
늙은 밥이 늙어서 불쌍하다고
숟가락 젓가락이 가락가락加樂加樂 놉니다
숟가락이 일할 때 젓가락이 놀고
젓가락이 일할 때 숟가락이 노래합니다
아침 먹은 힘으로 설거지를 합니다
밥 그릇 국 대접 반찬 접시
숟가락 젓가락 찻잔까지
씻고 부시고 깨뜨리면서 끝장이 납니다
아내는 노랜지 울음인지도 모르고
그냥 웃음꽃을 피우지만
꽃잎은 내 가슴에 떨어져 나를 울립니다.
* 국립4·19민주묘지에서, 2015.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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