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매화에 이르는 길』(2017)

한밤중 -치매행致梅行 · 161

洪 海 里 2015. 5. 28. 20:42

한밤중

-치매致梅行 · 161

 

洪 海 里

 

 

 

시「다 저녁때」(치매행致梅行 · 1)를 쓸 때만 해도

아내는 참 순하고 착한 어른아이였습니다

지금은 나보다 더 거세찬 어른애가 되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으면, 막무가내

나를 밀치고 밖으로 나가려 듭니다

잘못한 것도 없이(사실은 잘못 천지지만) 

잘못했다고

내가 다 잘못했다고 빌며 구슬려 삶아도

한참을 버티다 지쳐서야

슬그머니 방으로 들어갑니다

도대체 대책, 대책이 없습니다

흑흑거리다 보면

세상이 온통 새까맣습니다

검정은 검정이고 하양은 하양인데

왜 검정이 하양으로 보이고

하양이 검정으로 여겨지는 세상인지

이렇듯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나곤 합니다

일어난 것은 쓰러지기 마련이고

온전한 그릇도 깨어지기 십상이긴 하지만

대낮도 한밤중인 날

나를 버리고 비우자고 다짐다짐해 봅니다.

 

 

* 치매는 치매癡呆가 아니라 치매致梅라 함이 마땅하다.

매화에 이르는 길이다.

무념무상의 세계, 순진하고 무구한 어린아이가 되는 병이 치매다.

어리석은 병이라고 癡呆라 함은 잔인하기 그지없다.

일본에서는 인지기능에 이상이 생겼다는 뜻으로 인지증認知症이라 한다.

하루 속히 신약神藥/新藥이 개발되어 치매로 신음하고 있는 환자들과

환자를 돌보느라 애쓰고 있는 많은 분들에게 행복과 평화가 함께하기를

소망해 본다.

 

- 월간《우리詩》(2015.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