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천사 꽃무릇
洪 海 里
내 사랑은 용천사로 꽃 구경가고
혼자 남아 막걸리나 마시고 있자니
발그림자도 않던 꽃 그림자가
해질 임시 언뜻 술잔에 와 그냥 안긴다
오다가 길가에서 깨 터는 향기도 담았는지
열예닐곱 깔깔대는 소리가 빨갛게 비친다
한평생 가는 길이 좀 외로우면 어떠랴마는
절마당 쓸고 있는 풍경 소리 따라
금싸라기 햇볕이 이리 알알 지천이니
잎이 없어도 꽃은 잘 피어 하늘 밝히고
지고 나면 이파리만
퍼렇게 겨울을 나는
꽃무릇 구경이나 가고픈
가을날 한때.
- 시집『바람도 구멍이 있어야 운다』(도서출판 움, 2016)
* 내외신문 2016.08.03. 조기홍 기자
홍해리 시인은 19집 시집 『바람도 구멍이 있어야 운다』를 최근 출간했으며 평생 시집 20권을 내는것이 목표였지만 가능성이 있어 보이고 더 낼 수 있다면 행복한 인생이 될 것 같다고 소감을 피력하였다. 홍 시인은 사단법인 우리詩진흥회 이사장이며 30년 역사을 지닌 '우이시 낭송회' 행사에 수많은 시인들과 함께 하고 있다.
- 출처: 용천사 꽃무릇 / 홍해리 시인:내외신문 - https://www.naewaynews.com/51748
* 용천사龍泉寺
전남 함평군 해보면 용천사길 209
천년고찰 용천사는 전남 함평군 해보면 광암리 모악산에 위치한 유서깊은 사찰이다. 삼국시대, 백제 침류왕 1년(서기384년), 인도에서 건너온 마라난타(摩羅難陀) 스님이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또한 일본에서 발견된 사료(史料)에 의하면 백제의 제 22대 문주왕(文周王) 때(서기475~477년), 행은선사(幸恩禪師)에 의해 창건됐음을 알 수 있다.
천년고찰 용천사는 전남 함평군 해보면 광암리 모악산에 위치한 유서깊은 사찰이다. 삼국시대, 백제 침류왕 1년(서기384년), 인도에서 건너온 마라난타(摩羅難陀) 스님이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또한 일본에서 발견된 사료(史料)에 의하면 백제의 제 22대 문주왕(文周王) 때(서기475~477년), 행은선사(幸恩禪師)에 의해 창건됐음을 알 수 있다.
그 이후 통일신라시대, 원성왕(元聖王) 1년(서기 785년), 중국 선종(禪宗)의 중흥조인 육조 혜능대사(六組 慧能大師)의 제자인 청원 행사존자(靑原 行思尊者 ?~740년)에 의해 서남해의 대찰로 발전해 왔으며(문헌:조선 숙종 31년(1705년), 용천사대웅전단청기), 고려 말 각진국사(覺眞國師, 서기 1270~1355년)에 의해 불갑사(佛甲寺)와 함께 크게 융성했다.
조선시대, 인조 10년(1632년), 대웅전을 중창했고 인조 16년(1638년), 쌍연선사(雙衍禪師), 개연선사(槪然禪師)가 그 외 부속건물을 짓고 단청을 마쳤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숙종 31년(1705년), 보수와 중창을 거치면서 전각과 부속건물이 30여 동에 이르는 거찰(巨刹)로 발전해 왔다.
하지만 정유재란과 근대 6.25전쟁으로 인하여 사찰의 모든 건물이 불타 소실됐고 석조물(석등:전라남도 유형문화재 84호, 석탑, 돌계단, 부도밭, 석축, 해시계, 주춧돌) 등이 남아 웅장했던 사찰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다행히 1990년대 이후, 지역주민의 애정과 관심으로 대웅전, 지장전, 요사채, 사천왕문, 해우소, 황토방 등 천년고찰인 용천사 복원불사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모악산 용천사 주변에는 60여 만평에 달하는 한국 최대의 꽃무릇(상사화)이 군락을 이루며 자연 그대로 보존되고 있고 2000년, 제 1회 꽃무릇축제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매년 수십 만의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다.
현재 용천사는 호남 제일의 자연생태학습장으로 변모하고 있는 용천사 꽃무릇공원을 통한 사찰 홍보와 지역사회의 복지포교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조선시대, 인조 10년(1632년), 대웅전을 중창했고 인조 16년(1638년), 쌍연선사(雙衍禪師), 개연선사(槪然禪師)가 그 외 부속건물을 짓고 단청을 마쳤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숙종 31년(1705년), 보수와 중창을 거치면서 전각과 부속건물이 30여 동에 이르는 거찰(巨刹)로 발전해 왔다.
하지만 정유재란과 근대 6.25전쟁으로 인하여 사찰의 모든 건물이 불타 소실됐고 석조물(석등:전라남도 유형문화재 84호, 석탑, 돌계단, 부도밭, 석축, 해시계, 주춧돌) 등이 남아 웅장했던 사찰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다행히 1990년대 이후, 지역주민의 애정과 관심으로 대웅전, 지장전, 요사채, 사천왕문, 해우소, 황토방 등 천년고찰인 용천사 복원불사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모악산 용천사 주변에는 60여 만평에 달하는 한국 최대의 꽃무릇(상사화)이 군락을 이루며 자연 그대로 보존되고 있고 2000년, 제 1회 꽃무릇축제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매년 수십 만의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다.
현재 용천사는 호남 제일의 자연생태학습장으로 변모하고 있는 용천사 꽃무릇공원을 통한 사찰 홍보와 지역사회의 복지포교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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