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매화에 이르는 길』(2017)

역설 - 치매행致梅行 · 230

洪 海 里 2017. 4. 17. 05:55

역설

- 치매행致梅行 · 230

 

洪 海 里

 

 

 

"오늘 밤 잠이 들면

깨어나지 말기를,

내일 아침 해 떠도

눈을 뜨지 않기를!"

 

그러면서도

그러면서도,

 

밥 같이 먹을 사람

곁에 있으니,

한잔 술 나눌 사람

옆에 있으니,

내 몸 누일 한 평 방

내게 있으니,

천천히 산책할 길

앞에 있으니,

아낌없이 주는 자연 속

내가 있으니,

시를 낳고 안는 행복 또한

나의 것이니,

 

"오늘 밤에 잠들면 깊은 잠 자고

내일 아침 해 뜨면 깨어나기를!"

 

 

* 홍해리 시인이 아내의 병상에서 쓴 시 『치매행致梅行』에 이어 20번째 시집 『매화에 이르는 길』이 출간되었다. 한자어 『치매행致梅行』을 우리말로 풀어 쓴 것이 『매화에 이르는 길』이다.

치매는 치매癡呆가 아니라 치매致梅라 함이 마땅하다.
매화에 이르는 길이다. 무념무상의 세계, 순진하고 무구한 어린아이가 되는 병이
치매다.
- 『치매행致梅行』 서문 -

나도 언제 세상을 꽃으로 보고
그 길을 따라 하염없이 걷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길 끝에 매화가 피어 있다.
- 『매화에 이르는 길』 서문

병든 아내, 자신이 병든 줄도 모르는 아내, 대화 한 마디 할 수 없는 아내, 불쑥불쑥 뛰쳐나가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도무지 음식을 먹으려 하지 않아 속을 태우며,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사는 아내를 보면서, 또 그런 아내를 병에서 꺼내줄 수 없는 자신의 한계를 느끼면서 시인은 아침에 눈을 뜨기가 싫어진다.

그러다가 문득 아직 남아있는 것들에 생각이 미치는 것일까? 아침에 눈 뜨지 말기를 바라던 시인이 제목처럼 역설적으로 “해 뜨면 눈 뜨기를” 바란다.
함께 밥을 먹어 줄 사람은 아내일 테고, 함께 술을 마셔 줄 사람은 동료 시인들일 것이다. 아내와 함께 누웠던 방, 산책하던 길이 아직 있다. 그 길에 철따라 꽃은 여전히 피고, 하루 종일 초점 없는 눈으로 침묵하는 아내지만 아직 곁에 있으니, 시인은 아침에 눈을 떠야만 할 것이다. 가끔 동요를 따라 부르는 아내의 감성이 아직 살아있고, 그런 아내에게서 시를 건져 올리는 나날이 있으니, 시인은 희망을 버릴 수가 없을 것이다.

『치매행致梅行』이 애절한 사부곡思婦曲이었다면, 『매화에 이르는 길』은 희망의 노래이다. 내가 「역설」을 눈으로 읽으면서 울고, 낭독하면서 울고, 책을 덮고도 울었던 것은, 한 줄기 간절한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다.

<詩>

매화 아래 선 시인

장정순

시인은
혼자서 밥을 먹고
혼자 술을 마시는 것을
무척 싫어한다
그래서 사무실에 나가면
누군가와 함께 식사를 하고 술을 마신다
아무도 없는 날에는
누구든지 함께
먹고 마셔 줄 사람이
곁에 있어야 할 것만 같아서
술 한 잔 못하는 나는
오늘도 시인과 마주 앉아
가난한 시인의 밥을 축낸다
막걸리 반 잔 내 앞에 따라 놓고
시인이 막걸리 병을 다 비울 때까지
나는 야금야금 안주만 먹는다
침묵하는 시인의 속내가 두려워
이것저것 시답잖은 수다도 떤다
시 같지 않은 시를 들고 가서
이건 어때요 저건 어때요
괜스레 시인의 머리를 어지럽힌다
오늘만큼은 시름 모두 내리시고
피곤한 몸으로 퇴근하시어
죽음처럼 달콤한 잠 주무시고
아침에 해 뜨면 눈 뜨시라고
매화 방긋 벙글 때
허허 웃으시라고
- 시 「역설」을 읽고 쓴 나의 감상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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