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매화에 이르는 길』(2017)

마지막 산책 - 치매행致梅行 · 229

洪 海 里 2017. 4. 8. 08:04

마지막 산책

 - 치매행致梅行 · 229

洪 海 里

 

  

산책은 산 책이다

돈을 주고 산 책이 아니라

살아 있는 책이다

발이 읽고

눈으로 듣고

귀로 봐도 책하지 않는 책

책이라면 학을 떼는 사람도

산책을 하며 산 책을 펼친다

느릿느릿,

사색으로 가는 깊은 길을 따라

자연경自然經을 읽는다

한 발 한 발.

- 졸시「산책전문


꽃피 터져 천지간에 흥건한 날

아내 손을 잡고 꽃 속으로 걸어갑니다

한 발짝, 한 발짝, 몇 발짝 떼다 멈춰서고

몇 걸음 걷다 주저앉고 마는

눈부신 봄날이 늦늦가을입니다

느릿느릿 가다 서다 하며 

자연경을 읽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산책길로 들어섰습니다

환하게 핀 꽃을 봐도 꽃인 줄 모르고

아니, 보려고 들지도 않으니

물오른 새소린들 귀에 와 닿겠습니까

인생 참 별것 아니라는데

그 별것 아닌 길이 어찌 이리 힘든 것인가

초승 상현 지나 보름달 환한 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하현 지나 그믐치 퍼붓는 밤

우울한 꽃만 피어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슬픈 새소리만 산천에 가득 흘러갑니다

절벽강산이 되어 버린 아내에게

봄날이 오다 말고 그냥 지나가고 있지만

오늘이 마지막 산책이 아니기를,

이 길이 뭍길이든 물길이든 하늘길이든

어딘가로 이어지는 시작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