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산책
- 치매행致梅行 · 229
洪 海 里
산책은 산 책이다
돈을 주고 산 책이 아니라
살아 있는 책이다
발이 읽고
눈으로 듣고
귀로 봐도 책하지 않는 책
책이라면 학을 떼는 사람도
산책을 하며 산 책을 펼친다
느릿느릿,
사색으로 가는 깊은 길을 따라
자연경自然經을 읽는다
한 발 한 발.
- 졸시「산책」전문
꽃피 터져 천지간에 흥건한 날
아내 손을 잡고 꽃 속으로 걸어갑니다
한 발짝, 한 발짝, 몇 발짝 떼다 멈춰서고
몇 걸음 걷다 주저앉고 마는
눈부신 봄날이 늦늦가을입니다
느릿느릿 가다 서다 하며
자연경을 읽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산책길로 들어섰습니다
환하게 핀 꽃을 봐도 꽃인 줄 모르고
아니, 보려고 들지도 않으니
물오른 새소린들 귀에 와 닿겠습니까
인생 참 별것 아니라는데
그 별것 아닌 길이 어찌 이리 힘든 것인가
초승 상현 지나 보름달 환한 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하현 지나 그믐치 퍼붓는 밤
우울한 꽃만 피어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슬픈 새소리만 산천에 가득 흘러갑니다
절벽강산이 되어 버린 아내에게
봄날이 오다 말고 그냥 지나가고 있지만
오늘이 마지막 산책이 아니기를,
이 길이 뭍길이든 물길이든 하늘길이든
어딘가로 이어지는 시작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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