씹어 삼키다
- 치매행致梅行 · 266
洪 海 里
평생 누굴 한번 씹어 본 적 없는데
아내는 음식물 씹는 걸 잊었습니다
남의 물건 꿀꺽해 본 일 없는데도
물 삼키는 것도 잊어 버렸습니다
내 마음이 내 마음이 아니라서
마음이 이내 무너지고 맙니다
눈시울이 뜨거워
소리없이 흐느끼다 눈물을 삼킵니다
마지막이라는 말
끝까지 간다는 것 …….
*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저는 알았습니다. 치매의 마지막 단계는 본능도 잊어버린다는 것을요. 인간에게 본능은 끝까지 살아 있는 감각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믿음이 한 순간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화자의 아내는 이제 씹는 것도 삼키는 것도 잊은 모양입니다. 그런 요즘의 현상을 화자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화자의 아내는 “평생 누굴 한 번 씹어 본 적 없는”사람이고 또 “남의 물건 꿀꺽해 본 일 없는” 정직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잊음을 습관처럼 영위했던 사람인 양 모든 것을 잊었습니다. 먹고 삼키는 본능조차도 잊어버린 아내 앞에서 화자는 그저 망연합니다. 누구 앞에게도 절대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아내와의 이별이 이제 코앞으로 다가온 듯합니다. 그것은 “마지막이라는 말/ 끝까지 간다는 것 …….” 이 모든 말들을 씹어 삼키면서 화자는 아내 곁을 조용히 지키는 사내입니다.
- 손현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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