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봄이 오면 눈은 녹는다』(2018)

씹어 삼키다 - 치매행致梅行 · 266

洪 海 里 2017. 7. 28. 14:44

씹어 삼키다

- 치매행致梅行 · 266


洪 海 里




평생 누굴 한번 씹어 본 적 없는데

아내는 음식물 씹는 걸 잊었습니다


남의 물건 꿀꺽해 본 일 없는데도

물 삼키는 것도 잊어 버렸습니다


내 마음이 내 마음이 아니라서

마음이 이내 무너지고 맙니다


눈시울이 뜨거워

소리없이 흐느끼다 눈물을 삼킵니다


마지막이라는 말

끝까지 간다는 것 …….



  *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저는 알았습니다. 치매의 마지막 단계는 본능도 잊어버린다는 것을요. 인간에게 본능은 끝까지 살아 있는 감각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믿음이 한 순간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화자의 아내는 이제 씹는 것도 삼키는 것도 잊은 모양입니다. 그런 요즘의 현상을 화자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화자의 아내는 “평생 누굴 한 번 씹어 본 적 없는”사람이고 또 “남의 물건 꿀꺽해 본 일 없는” 정직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잊음을 습관처럼 영위했던 사람인 양 모든 것을 잊었습니다. 먹고 삼키는 본능조차도 잊어버린 아내 앞에서 화자는 그저 망연합니다. 누구 앞에게도 절대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아내와의 이별이 이제 코앞으로 다가온 듯합니다. 그것은 “마지막이라는 말/ 끝까지 간다는 것 …….” 이 모든 말들을 씹어 삼키면서 화자는 아내 곁을 조용히 지키는 사내입니다.    

  - 손현숙(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