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봄이 오면 눈은 녹는다』(2018)

밑이 빠지다 - 치매행致梅行 · 265

洪 海 里 2017. 7. 25. 14:05

밑이 빠지다 

- 치매행致梅行 · 265


洪 海 里





아내가 알약을 삼키지 못해

막자와 유발乳鉢을 사왔는데


약알을 넣고 몇 번 찧고 빻다 보니

밑이 빠져 버렸다


쓴 약을 쓴 줄도 모르고 받아먹는 아내

"쓰지?" 해도 그냥 웃고 마는 아내


약이 쓴지 단지 아는지 모르는지

미주알고주알 밑두리콧두리 캘 것 없지만


바람 부는 날 밑싣개 타고 흔들리다 보니

어느덧 나도 밑 빠진 막자사발이 되었다.



* 막자 : 乳棒

* 막자사발 : 乳鉢


  *


  * 위의 시에서는 아내와 화자가 대화를 나눕니다. 화자는 아내의 대답이 그리 탐탁지는 않지만, 그래도 묻고 또 물어가면서 약을 먹일 준비를 합니다. “아내가 알약을 삼키지 못해”서 궁여지책으로 “막자와 유발乳鉢을 사왔는데”로 화자는 약알을 찧고 빻아서 아내가 약을 삼키기에 편안하게 노력을 기울입니다. 화자는 아내에게 질문을 합니다. 돌아오지 않을 메아리인 줄 잘 알면서도 또 묻고 묻습니다. “쓰지?” ,그 말 속에는 인생도 쓴 것인가라는 자괴감도 섞여 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아내는 이제 약이 쓴지 단지도 모릅니다. 그냥 지금은 씹는 것도 삼키는 것도 잊어버려서 유동식으로 흘려보낼 뿐입니다. 마치 강이 흘러 목적지를 모르는 어디론가 가버리는 듯 말입니다. 그렇게 한참을 서성이던 화자는 이제야 자신의 위치를 깨닫고는 혼자 놀라기도 하면서 흔들리기도 합니다. “어느덧 나도 밑 빠진 막자사발이 되었다.”로 치매 아내를 돌보는 일이란, 밑이 빠지게 고단한 일이라는 것을 한 장면으로 묘파합니다.

  - 손현숙(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