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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금강하구사람 / 영산홍 한 분 - 치매행致梅行 · 93(홍해리)

洪 海 里 2017. 8. 23. 04:43

영산홍 한 분

         - 치매행致梅行 · 93

 

                                홍해리

 

 

오늘은 아내가 조그만 화분을 들고 왔습니다

유치원에서 꽃을 심는 실습을 했나 봅니다

활짝 핀 영산홍이 앙징스럽습니다

눈물이 왈칵 솟구치는데

편지 한 장이 가지 사이에서 피어납니다

나는 이제까지 꽃을 보지 않았습니다

한때 아내는 한 송이 아름다운 꽃이었지만

그것도 모르고 나는 한평생을 살았습니다

늦둥이 같은 환한 꽃 한 분

이제사 꽃거울에 나를 비춰봅니다

활짝 핀 꽃이 반짝반짝 웃고 있습니다.

 

 

              - 시집 치매행 致梅行, 황금마루, 2015

 

 

 

  사랑하는 마음은 숨길 수 없다는데,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표현하지 못한다면 이보다 안타까운 일이 없다. 사랑하는 이를 옆에 두고도 기억하지 못하는 건 어떤가. 그를 잊었다가 순간 가슴에 들어오는 느낌은 어떨까.

 

  잠깐 꽃의 마음이 되어 전하는 편지는 그래서 더 절실하다. 이 마음을 이제 뭐라고 부를까. 꽃은 그대로 웃고 있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출처 : 금강하구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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