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 및 영상詩

[스크랩] 洪海里의 봄꽃시편

洪 海 里 2018. 2. 27. 11:36



복수초福壽草

 

보라

저 뜨거운 말.

 

치솟는다.

솟구친다.

치오른다.

솟아오른다.

 

숨탄것들에게

이 한마디 보여 주기 위해

종일 지치지 않는 아가처럼,

 

눈 속 세상에서

그리고 기리고 기다리다

한 송이 황련黃蓮으로 피어

눈을 뚫고 얼음을 녹여,

 

금빛으로 귀를 열어 주는

작고 낮은 몸

몹쓸 병처럼 아픈,

 

노란 봄날!

     

 

 

막걸리

 

막걸리는 밥이다

논두렁 밭두렁에 앉아

하늘 보며 마시던 밥이다

물밥!

사랑으로 마시고

눈물로 안주하는

한숨으로 마시고

절망으로 입을 닦던

막걸리는 밥이다

마시는 밥!

   

 

 

보리밟기

 

늙으신 어머님의

주름진 얼굴같은 보리밭에 서서

밭고랑을 따라가며 보릴 밟는다

부스스 들떠오르는 팔다리마다

대지모신大地母神의 품에 꼭꼭 안겨

꿋꿋이 일어서라 꼭꼭 밟으면

한겨울의 어둠과 추위를 털고

아지랑이 따스한 햇살을 받아

억센 팔다리를 하늘로 땅속으로 내뻗는다

칼날 같은 바람의 매서운 하늘

얼음장 아래서도 푸르른 얼굴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오랜 세월을

칠흑 같은 동지섣달 긴긴 어둠을

두견새 피울음으로 이겨온 밭고랑에서

못 먹어 부황든 보릴 밟는다

시퍼러이 일어서라 누런 보리밭

꼭꼭 밟는다 밟고 또 밟는다.

 

 

 

洪海里는 어디 있는가

 

의 나라

우이도원牛耳桃源

찔레꽃 속에 사는

그대의 가슴속

해종일

까막딱따구리와 노는

바람과 물소리

새벽마다 꿈이 生生

한 사내가 끝없이 가고 있는

사이

눈 시린 푸른 매화,

대나무 까맣게 웃고 있는

솔밭 옆 마을

꽃술이 술꽃으로 피는

난정蘭丁의 누옥이 있는

말씀으로 서는 마을

그곳이 洪海里인가.

   

  

, 벼락치다

 

  천길 낭떠러지다, 봄은.

 

  어디 불이라도 났는지

  흔들리는 산자락마다 연분홍 파르티잔들

  역병이 창궐하듯

  여북했으면 저리들일까.

 

  나무들은 소신공양을 하고 바위마다 향 피워 예불 드리는데 겨우내 다독였던 몸뚱어리 문 열고 나오는 게 춘향이 여부없다 아련한 봄날 산것들 분통 챙겨 이리저리 연을 엮고 햇빛이 너무 맑아 내가 날 부르는 소리,

 

  우주란 본시 한 채의 집이거늘 살피가 어디 있다고 새 날개 위에도 꽃가지에도 한자리 하지 못하고 잠행하는 바람처럼 마음의 삭도를 끼고 멍이 드는 윤이월 스무이틀 이마가 서늘한 북한산 기슭으로 도지는 화병,

 

  벼락치고 있다, 소소명명!

   

 

 

, 날아오르다

 

두문불출의 겨울 적막의 문을 두드리던 바람

부드러운 칼을 숨기고 슬그머니 찾아왔다

아침 밥물을 잦히는 어머니의 손길로

물이 오르는 들판 어디선가 들려오는 칼질소리

금세 봄은 숨이 가빠 어지럽다

오색찬란 환하다, 망연자실

바라보면 울고 싶어지는 희다 못해 푸른 매화꽃

저 구름 같은 입술 젖어 있는 걸 보라

나무들마다 아궁이에 모닥불을 지피고

지난 삼복에 장전한 총알을 발사하고 있다

봄 햇살은 금빛 은빛으로 선다

봄은 징소리가 아니라 꽹과리 소리로 온다

귀가 뚫린 것들 어디서 나타났는지

꽃집에 온 것마다 서로 팔을 걸고 마시다

목을 끌어안고 꿀을 빨고 있다

무릎에 앉은 채 껴안고 마셔라! 마셔라!

입에서 입으로 꽃술이 흘러들어가고 있다

폭탄주에 금방 까무러칠 듯 봄이 흔들리고 있다

세상에 어찌 끝이 있다 하는가

시작이 있을 뿐

겨울이 간 것이 아니라 봄이 온 것이다

···릇 숨통을 트고 잠시 멈추어 숨을 가다듬는

저 푸르러지는 산야로

풍찬노숙하던 환장한 봄이 날아오르고 있다

   

  

꽃나무 아래 서면 눈물나는 사랑아

 

꽃나무 아래 서면 눈이 슬픈 사람아

이 봄날 마음 둔 것들 눈독들이다

눈멀면 꽃 지고 상처도 사라지는가

욕하지 마라, 산것들 물오른다고

죽을 줄 모르고 달려오는 저 바람

마음도 주기 전 날아가 버리고 마니

네게 주는 눈길 쌓이면 무덤 되리라

꽃은 피어 온 세상 기가 넘쳐나지만

허기진 가난이면 또 어떻겠느냐

윤이월 달 아래 벙그는 저 빈 자궁들

제발 죄 받을 일이라도 있어야겠다

취하지 않는 파도가 하늘에 닿아

아무래도 혼자서는 못 마시겠네

꽃나무 아래 서면 눈물나는 사랑아.

   

  

꽃이 피면 바람 분다

 

꽃이 필 때 날씨가 따뜻한 것은

널 빨리 보고 싶은 내 마음 탓이고,

 

꽃 피면 어김없이 바람 부는 까닭은

산통으로 흘린 땀 식혀주려는 뜻이다.

 

꽃이 피고 나서 추워지는 것은

오래 곁에 있고 싶은 내 생각 때문이려니,

 

춥다고 탓하겠느냐,

바람 분다 욕하겠느냐.

 

 

         *홍해리 꽃시집금강초롱우리시인선 030(도서출판 움, 2013) 등에서





출처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글쓴이 : 김창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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