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길은 살아 있다 / 감상 : 나병춘(시인)

洪 海 里 2018. 9. 3. 12:02

[한 편의 시]


길은 살아 있다


洪 海 里




길이 방긋방긋 웃으며 걸어가고 있다
보이지 않는 길에도
날개와 지느러미가 있어 날고 기고 헤엄친다
길이 흐느끼며 절름절름 기어가고 있다
길이 바람을 불러 오고 물을 흐르게 한다
꽃도 길이 되어 곤충을 불러 모은다
길은 긴 이야기를 엮어 역사를 짓는다
길에는 길길이 날뛰던 말의 발자국이 잠들어 있다
길이길이 남을 길든 짐승의 한이 서리서리 서려 있다
살아 있는 것들은 모두 몸에 길이 있다
영혼도 가벼운 발자국으로 길을 낸다
태양과 별이 지구를 향해 환한 길을 만든다
시간은 영원으로 이어지는 끝없는 길이다
기다리는 길이 끊어지고 사라지기도 한다
발바닥 아래 생각이 발딱거리며 가고 있다
사랑도 이별도 길이 되어 멀리 뻗어나간다
사람도 길이 들고 길이 나면 반짝이게 된다
눈길 손길 발길 맘길로 세상을 밝힌다
가장 큰 길은 허공과 적막이다
발자국은 앞서 가지 못한다
길은 따뜻하다.



<감상>

1.
시를 읽다 보면, 문득
어떤 그림이 펼쳐지고 
그 그림에 대한 영상들이 제멋대로 출몰하는 때가 있다.
'신들림'이라고나 할까.
아무도 알 수 없는 깊은 계곡 오솔길에 들어서서 헤매고 또 헤매다가 발견한
적요한 옹달샘을 발견한 기분이랄까.
이 시를 만난 것이 똑 이런 심상과 맞닿아 있다.
말이 말을 낳고 말똥을 낳고
말똥은 말똥구리를 낳아,
이 거대한 행성 지구를 굴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적막한 사막 어느 한켠 초원에서 풀을 뜯고 있는 얼룩말 새끼를 상상해 본다.
야생으로 태어나 그냥 야생으로 살아가는 망아지처럼
푸른 벌판을 달리고 싶다.

2.

길길이 뛰는 망아지들의 
갈기와 발자국들이
구르고 구르다 
구름이 되어 날아가고 천둥번개가 되고 그 빗방울들이 날아들어 지렁이가 되고 청개구리가 되었다
꼬꼬꼬 꼬꼬닭에게 뛰어들었다 
노랑 병아리 뼝뼝뼝이 되어 탱자울로 숨고
한 덩이 말똥 닭똥 무더기 속에서
꿈틀, 꿈틀, 꿈의 둥지를 짓고 있는 달개비 씀바귀 나팔꽃 풀꽃 사이
말똥구리 한 마리,

저 한 채의 경단 속에서 
게으른 한잠을 자고 있는 
굼벵이들,
그 꿈길에 오밀조밀
맑고 그윽한 길을 내고 싶다.

똥 한 덩이가 날아가
민들레 방가지똥 꽃으로 
환하게 비상하며 웃는 날
말의 알들은 비로소 히히힝
천하를 호령하듯
청총마 갈기를 흩날리리라.

날아가라.
중앙아시아 티벳 지경이나
아프디 아픈 아프리카로
세렝게티 누떼들 얼룩말들 평화로이 똥 누고 울부짖는 사바나 푸른 지대 사자 호랑이들에게 잡아먹히기도 하는
오이풀 토끼풀 냄새 상큼한 
꿈길의 오아시스를 만들어라.
길길이 날뛰는 말의 똥들아.
천방지축 망아지 새끼들아.

- 졸시,「말은 말똥구리가 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