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단 두 줄에 표현된 사랑 / 물새 발자국과 요한복음 3:16 / 최길호 목사

洪 海 里 2018. 10. 18. 19:14
    단 두 줄에 표현된 사랑 / 물새 발자국과 요한복음 316. /최길호(목사)

1.
물새 발자국/홍해리

사랑아, 너는 앞으로 걸어가는데

왜 자꾸 내게로 다가오고 있느냐

2.
오늘 페친이 된 홍해리 시인의 시다.
이름은 여성 같지만 남성이다.
시의 연이 단 두 줄이다.
그런데도 이토록 강렬할 수가 없다.
사랑하는 이의 심정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싶다.
사랑을 '콕' 찝어낸 것 같다.

3.
다음은 이 시에 대한 페친들의 반응들이다.
*마음이 있는 그곳으로 무의식이
몸을 싣고 가나 봅니다.
*마음이 있는 곳에 길이 있나 봅니다.
*사랑이 깊이 다가오는 계절입니다.
*사랑하니까요
*정해진 운명이었나 봅니다.
*사랑아 ...
 마음아...
사랑을 이해하는 이들의 댓글이다.

4.
성경에서 나를 사로잡은 한 문장이 있다.
요한복음 3장 16 절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 한 구절이
내 삶을 전율케했다.
내 삶의 방황이 끝났다.

5
수없이 많은 연서를 읽어도
사랑의 목마름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천상의 언어를 끌어다 사랑을 말해도
그 사랑을 위하여 내 목숨을 내어놓는
사랑은 드물다.

6.
우리 집 애완견 두 마리는 가족과 같다.
"초롱"과 "코코" 참으로 사랑스럽다.
그들을 아픔에서 건져 내려 그들에게
수술비로 들어간 돈이 만만치 않다.
치료를 위하여 천만 원이 든다면
어떻게 할까?
그만한 돈의 여유도 없지만 있다 해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두 딸이 같은 상황에서 일억이
든다면 어떨까?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다.
10억이 든다면? 웃기는 질문이다.
딸들의 생명이 달려 있다면
돈이 문제가 아니다.
생명이라도 대신할 것이다.
희생할 수 있는 것만큼이 사랑이다.




6.
하나님의 아들이 생명을 버리셨다.
대학교 1학년 가을에 그 사실과
마주쳤다.
그 하나님께 생명을 걸 수 있을까?
예수를 따르던 열두 제자중 유다를 제외한

모든 제자들이 생명을 걸었다.
중세 종교 암흑시대에는 5천만 명
이상의 기독교인이 생명을 걸었다.
하나님의 생명을 건 사랑을 제대로
이해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것을 위하여 살다가 그것을 위하여
죽을 수 있는 가치를 발견한 삶에
감사한다.

7.
그 사랑에 눈뜨니 
세상이 온통 사랑의 언어
사랑의 색채로 가득 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