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여보 사랑해/洪海里
아내는 어쩌다 나일 꺼꾸로 먹어
정신줄을 놓아버렸습니다
대신 잡아 줄 수도 없어 답답한 마음
얼마큼 가야 길이 보일지
하루라도 제정신으로 돌아온다면
하고 싶은 말 한마디 있습니다
'여보, 사랑해!' 바로 이 말
나는 그조차 인색한 사내였습니다
젊어서 받지 못한 사랑
이제 받고 싶어 아내는 조르는 것인가
쓰잘머리 없는 이런저런 생각으로
오늘도 내 마음은 열대야입니다
잠도 자지 못하고 땀만 줄줄 흘립니다
이러다 잠을 깨면 하루가 천년입니다
삼시 세 끼는 왜 그리 빨리 돌아오는지
아침 점심 저녁 준비로 분주한 날마다
외상말코지도 아닌데 마음만 팍팍합니다.
* 외상말코지 : 어떤 일을 시키거나
물건을 주문할 때 돈을 먼저 치르지
않으면 선뜻 해 주지 않는 일.
영산홍 한 분/洪 海 里
- 치매행致梅行 · 93
오늘은 아내가 조그만 화분을 들고 왔습니다
유치원에서 꽃을 심는 실습을 했나 봅니다
활짝 핀 영산홍이 앙징스럽습니다
눈물이 왈칵 솟구치는데
편지 한 장이 가지 사이에서 피어납니다
나는 이제까지 꽃을 보지 않았습니다
한때 아내는 한 송이 아름다운 꽃이었지만
그것도 모르고 나는 한평생을 살았습니다
늦둥이 같은 환한 꽃 한 분
이제사 꽃거울에 나를 비춰봅니다
활짝 핀 꽃이 반짝반짝 웃고 있습니다.
탓/洪 海 里
- 치매행致梅行 · 80
난蘭 찾아다니느라 늘 집을 비웠으니
아내가 얼마나 외로웠을까
난에게 남편 빼앗긴
주말과부의 가슴이 얼마나 시렸을까
친구들과 술 마시고 자정에야 돌아와
새벽이면 빠져나가고
밤이면 다시 취해 기어서 들어왔으니
술에 익사한 남편을 건사하는 아내
사는 게 어디 사는 일이었겠습니까
시 쓴답시고
밤낮 시詩답지도 않은 걸 끼적거리며
시 쓰는 친구들 불러내 술이나 마셔 댔으니
시에게 남편을 내주고 술에게 빼앗기고
아내는 모든 걸 놓았습니다
다 버렸습니다
이렇게 된 것은, 바로
내 탓, 내 탓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