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選集『洪海里는 어디 있는가』(2019)

독종毒種

洪 海 里 2018. 11. 13. 04:17

독종

  

 

1

세상에서 제일의 맛은 독이다

물고기 가운데 맛이 가장 좋은 놈은

독이 있는 복어다

 

그러나 가장 무서운 독종은 인간이다

그들의 눈에 들지 마라

아름답다고 그들이 눈독을 들이면 꽃은 시든다

 귀여운 새싹이 손을 타면

애잎은 손독이 올라 그냥 말라 죽는다

그들이 함부로덤부로 뱉는 말에도

독침이 있다

침 발린 말에 넘어가지 마라

말이 말벌도 되고 독화살이 되기도 한다

 

3

아름다운 색깔의 버섯은 독버섯이고

단풍이 고운 옻나무에도 독이 있다

곱고 아름다운 것들은

모두 독종이다

 

그러나 아름답지 못하면서도 독종이 있으니

바로 인간이라는 못된 종자이다. 

 

4

인간은 왜 맛이 없는가?

 

- 시집『독종』(2012, 북인)

 

   * 온 누리에 으뜸가는 독종이 바로 사람이란다. 눈빛에도 독이 있어 꽃을 시들게 하고, 손에도 독이 묻어 어린 이파리를 말라죽게 만들고, 말에서 독침을 내뿜어 같은 종족끼리 치명적 상처를 입힌다. 자연계의 모든 생명체는 저마다 자기보호 본능에 따라 독성을 함유하고 있다. 그래서 음식도 조리해서 먹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인간의 해독은 어떻게 가능할지 모를 일이다.

   - 고미석(동아일보 논설위원)

 

   * 시를 받아 적고 정돈하려는데, 제목이 중독으로 적혔다. 독종에 한자 표기를 하려다가 발견한 것이다. 무심코 그렇게 적은 이유가 있을 텐데, 그동안 나는 무엇에 중독된 것일까. 독이 중독에 이르러 효과를 드러낸다고 볼 때 나는 헤어날 수 없는 어떤 맛에 끌려다닌 게 분명하다. 어디로 흘러가는지도 모르고 깊이도 알 수 없이 빠져 있었다.

   시는 읽을수록 중독되는 게 맞다. 독을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은 독이 무서운 줄 모른다. 어쩌다가 눈짓에 독이 묻은 시를 만나기도 할 것이다. 웃음으로 날리고 말로 독을 꽂는 시를 읽고 몽롱한 밤을 지나기도 할 것이다. 이래저래 나도 모르게 든 독인데, 해독의 방도로도 좋은 시가 필요하다. 세상에는 다행히 사람 좋은 시인이 쓴 좋은 시가 많다.

  - 금 강.

 

 

[고미석의 詩로 여는 주말]

‘독종毒種’

동아일보입력 2012-12-15    
 

 

 
홍해리(1942~  )
 
1
세상에서 제일의 맛은 독이다.
물고기 가운데 맛이 가장 좋은 놈은
독이 있는 복어다.

2
가장 무서운 독종은 인간이다.
그들의 눈에 들지 마라.
아름답다고 그들이 눈독을 들이면 꽃은 시든다.
귀여운 새싹이 손을 타면
애잎은 손독이 올라 그냥 말라죽는다.
그들이 함부로덤부로 뱉어내는 말에도
독침이 있다.
침 발린 말에 넘어가지 마라.
말이 말벌도 되고 독화살이 되기도 한다.

3
아름다운 색깔의 버섯은 독버섯이고
단풍이 고운 옻나무에도 독이 있다.
곱고 아름다운 것들은
모두 독종이다.
그러나 아름답지 못하면서도 독종이 있으니
바로 인간이라는 못된 종자이다.

4
인간은 왜 맛이 없는가?

-홍해리 ‘독종毒種
 
중국 작가 가오 레이의 설치작품.
 
 
‘성공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다른 사람들이 실패해야만 한다.’

 
  요즘 인기를 모으고 있다는 외국 소설의 광고 문구다. 한국의 대선토론에 나온 어느 후보는 자신의 출마 목적이 남을 훼방 놓고 떨어뜨리기 위해서라고 큰소리친다. 반드시 누군가를 실패하도록 만들어야 내가 만족할 수 있다는 식의 모질고 야멸찬 발언이 막장 드라마보다 리얼하게 TV로 생중계됐다. 이 땅의 현실은 종종 그 어떤 허구보다 드라마틱하다. 너무 소설적이라 소설이 따라가지를 못한다.
 
  올해 전시되었던 중국 작가 가오 레이의 설치작품도 공동체의 구성원끼리 건전한 경쟁의식을 넘어 죽기 살기식 투쟁으로 치닫는 상황을 빗댄 작품이다. 암울한 미래를 그린 공상과학영화에 나올 법한 차림으로 두 마네킹이 서로 마주 보고 있다. 각자 손에 가위를 들고 있는 이들의 방독면 호스는 하나로 연결돼 있으니 하나가 죽으면 둘 다 죽는다. 상대를 죽이면 나도 죽는다. 그럼에도 적개심과 증오 때문에 나와 연결된 생명줄을 자를 것인가. 알면서 저지르고 몰라서 또 저지르는 게 인간이고 그게 또 인간사인가.

  최근 ‘독종’이란 시집을 펴낸 홍해리 시인에 따르면 온 누리에 으뜸가는 독종이 바로 사람이란다. 눈빛에도 독이 있어 꽃을 시들게 하고, 손에도 독이 묻어 어린 이파리를 말라죽게 만들고, 말에서 독침을 내뿜어 같은 종족끼리 치명적 상처를 입힌다. 자연계의 모든 생명체는 저마다 자기보호 본능에 따라 독성을 함유하고 있다. 그래서 음식도 조리해서 먹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인간의 해독은 어떻게 가능할지 모를 일이다.

  대통령선거가 코앞이다. 아무쪼록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더불어 잘 살아야 한다고 굳게 믿는 지도자가 나오면 좋겠다. 집안마다 지역마다 음식 맛이 다른데 입맛 차이를 무시한 채 내 조리법만 강요할 순 없지 않은가. 진리의 세상에서는 나와 너의 구분이 없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망해버려라!’ 험담을 할 때 우주는 험담한 바로 그 사람을 망하게 하는 힘으로 작용한다는 법상 스님의 말씀이 추억처럼 남아 있다.

 -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동아일보 2012. 12. 15.)

 

* 경험적으로 이름에 '종'자가 들어가면 혹시 독종이 아닐까 생각한다.

터무니없다 하겠지만 그동안 만난 사람 중에는 대부분 그랬기 때문이다.(종 자 들어간 사람들에겐 미안!)

독이란 치명적이긴 하지만 나름 아름답거나 믿을 만하거나 쾌감을 주는 그 무엇을 가지고 있다.

다만 지나친 탐심이 모든 걸 망가뜨린다.

마라톤이 42,195km인데 삼십 몇 킬로쯤에서 환희를 느낀다고 한다.

아마 몸에서 독이 나와서 그러는 것일 수도 있다.

그 긴 거리를 뛰어다니는 사람은 정말 독종임이 틀림없다.

인간이 못된 것은 몸에서 나오는 독 때문일 것이다.

독 때문에 어쩌지 못하고 저질러버리는 그 알 수 없는 마력!

악어가 그래서 사람 잡아먹고 눈물을 흘리는 걸까.

- http://blog.daum.net/joofedptj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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