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選集『洪海里는 어디 있는가』(2019)

우화羽化

洪 海 里 2018. 11. 13. 17:21

우화羽化

 

洪 海 里

 

 

 

바닥을 본 사람은

그곳이 하늘임을 안다

위를 올려다보고

일어서기 위해 발을 딛는 사람은

하늘이 눈물겨운 벽이라는 것을

마지막 날아오를 허공임을 알고

내던져진 자리에서

젖은 몸으로

바닥을 바닥바닥 긁다 보면

드디어,

바닥은 날개가 되어 하늘을 친다

바닥이 곧 하늘이 된다.

 

시집『독종』(2012, 북인)

 

* 우화 : 홍철희 작가 촬영. 2023. 07.30.

 

  * 며칠 아무것도 되지 않는 날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말하자면 시도 무엇도 만나지 못한 채 빈속을 채울 무언가를 찾다가 엎드린 거기, 바닥이 맞다. 몸이 바닥에 닿았으니, 바닥을 보았으니 이제는 일어서기 위해 손을 짚어야 하는데 어쩌다가 나는 엎드린 자리에 내려온 시를 읽는다. 시집을 펼쳤다가, 바닥이 되어본 사람의 편지를 받는다. 젖은 바닥에서 바닥바닥 깃을 터는, 진리를 이제야 발견하다니. 그동안 나는 뜬구름으로 떠도는 시, 바람처럼 사라지는 노래를 붙잡으려고 애썼던 것이다.

  바닥에서 일어난 말씀으로 하늘에 오르는 경험을 한 적 없으나 오늘 만난 시가 가슴에 들어온 건 확실하다. 시를 읽은 하루가 또 하루를 잇고, 아무것도 해내지 못한 날에도 한 편의 시로 연명할 수 있겠다는 예감이 든다.

  - 금 강.

 

  * 잎을 갉아먹고 만들어 낸 진액으로 도롱이를 말아 쓰고 나뭇가지에 매달려
겨울나기를 한 애벌레는 따듯한 봄날에도 열심히 바닥을 기어야 나방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올라가야 하고 내려서야 하는 지점을 아는 것, 바닥과 하늘의 경계지점 또한
자신의 인식 여하에 달려 있으며, 삶의 한 대목마다 최선의 노력이 따라야 한다.
일어서기 위해 발을 딛는 사람은 하늘이 눈물겨운 벽이라는 것을, 마지막 날
아오를 허공임을 알고, 내던져진 자리에서 젖은 몸으로 바닥을 바닥바닥 긁어
본 사람만이 바닥이 곧 하늘이란 것을 안다는 말이다.
   번데기가 변태하여 성충(成蟲)이 되고, 하늘을 날기 위한 날개를 얻는 것처럼
사람의 몸에 날개가 돋쳐 하늘로 올라가 신선이 된다는 우화등선(羽化登仙)은
진정한 자각, 순수한 각성, 즉 awareness에 있는 것이 아닐까?
     탈지면(脫脂綿)처럼 정제(整齊)된 시를 읽으며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 유 진/ 시인, 첼리스트<선린대학 출강>

   * 쉬운 시가 아니다.  홍해리 선생님의 이 바닥을 기어기어, 누가 침을 뱉든,
발로 차든 망설임없이 자신의 길을 한없이 꿈틀거리며 가다가다 얻어낸 시「우화羽化」는
결코 아무나 흉내낼 수 없는 깨달음의 경지에서 얻어낸 정신의 엑기스다.
어둠속에 들어앉아 자신의 거울 속에 들어가 직접 자신과 대면하지 않고는 얻어낼 수 없는 각성이다.
 우화가 생각난다. 모든 애벌레들이 어디인지도 목적도 없이 몰려가는 길을 따라가다가
절망의 추락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차라리 땅바닥을 기어가며 살다 번데기로,
자신의 몸을, 자신의 영혼까지를 죽임으로써 나비로 부활한다는...!!    
 오랜 자기침잠을 통해 고집스럽게 얻어지는 예술과 철학보다는 대중적 즉흥적 반응에
즉흥적 대처에만 급급해지는 현대인들, 젊은이들, 특히 테크닉에 연연해 하는 일부 시인들에게도
홍해리 선생님의 이 시는 좋은 귀감이 될 것이다. 
  - 김금용(시인)

 

* 홍철희 작가 촬영.

===================================

 

가을이 말하다

이원주 기자 입력 2018-11-15

 

 

 

트랜드뉴스 보기

 

 

 

가장 좋은 시기를 놓쳤다면 홍시가 되어라.

더욱 달고 달아져서, 늦었음이 아니라 완숙하고 있었음을 알려라. 
바람 못 이기고 땅에 떨어졌다면 나무가 되어라.

낙오된 것이 아니라 영원히 존재할 가치를 품었음을 보여라. 

가장 높이 열렸다면 날짐승의 먹이가 되어라.
가장 풍족한 햇살을 받았으니, 가장 배고픈 자를 위해 쓰여라.―전남 영암군 금정면 감 농장에서  
사진=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글=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동아일보 2018. 11. 15.)

 

'詩選集『洪海里는 어디 있는가』(2019)'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時를 쓰다  (0) 2018.12.11
시가 죽어야 시가 산다  (0) 2018.11.22
참나무 그늘  (0) 2018.11.13
하동여정河東餘情  (0) 2018.11.13
만공滿空  (0) 2018.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