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選集『洪海里는 어디 있는가』(2019)

방짜징

洪 海 里 2018. 12. 21. 04:49

방짜징

 

洪 海 里

 


죽도록 맞고 태어나

평생을 맞고 사는 삶이러니,

 

수천수만 번 두드려 맞으면서

얼마나 많은 울음의 파문을 새기고 새겼던가

소리밥을 지어 파문에 담아 채로 사방에 날리면

천지가 깊고 은은한 소리를 품어

풀 나무 새 짐승들과

산과 들과 하늘과 사람들이 모두

가슴속에 울음통을 만들지 않는가

바다도 바람도 수많은 파문으로 화답하지 않는가

나는 소리의 자궁

뜨거운 눈물로 한 겹 한 겹 옷을 벗고

한평생 떨며 떨며 소리로 가는 길마다

울고 싶어서

지잉 징 울음꽃 피우고 싶어

가만히 있으면 죽은 목숨인 나를

맞아야 사는, 맞아야 서는 나를

때려 다오, 때려 다오, 방자야!

파르르 떠는 울림 있어 방짜인

나는 늘 채가 고파

 

너를 그리워하느니

네가 그리워 안달하느니!

 

- 시집『비밀』(2010, 우리글)

 

* 우이동시낭송회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방짜징을 들고 준비하고 있는 필자.


 

* 시 읽기

 

  방짜는 질 좋은 놋쇠를 녹여 불에 달구고 두드려서 만든다. 아무리 잘 만들어진 방짜징이라 해도 그대로 두면 소리를 내지 못한다. 태어남부터 잘 두드려 맞고, 알맞은 간격에서 채로 두드려야 맑고 부드럽고 웅장한 소리가 난다.

  사람도 잔소리, 쓴소리, 된소리의 충고를 새겨들을 줄 알아야 바르게 성장하고, 성찰과 깨침을 거듭해야 성숙한다. 성숙한 사람에게는 깊은 울림이 우러난다. 제 몫의 제 역할을 다 하려면 지혜와 지성적 성숙을 꾸준히 연마해야 한다.

  - 나는 소리의 자궁, 가만히 있으면 죽은 목숨인 나를 때려 다오, 때려 다오, 방짜야! 지잉 징 울음꽃 피우고 싶다고 말하는 시인은 가슴속에 울음통을 만들고 있는 모두의 소리를 대신해서 울어주고 싶은 것이다. 한평생 떨며 떨며 소리로 가는 길마다 울림이 있는 소리를 내고 싶은 것이다. 감성을 일깨우는 감동적인 시를 품어 내어 사람들의 가슴을 데워주고 싶은 것이다.

  깊고 은은한 울림이 있는 소리를 내야 한다고, 詩와 詩人들에게 채찍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깨어있는 삶을 권고하고 있는 것이다.

      - 유 진(시인, 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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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도록 맞고 태어나 평생을 맞고 사는 삶,이란 얼마나 잔혹한가?  달군 쇠는 맞아야 강한 법! 징은 어느 대장장이의 가학적 사랑으로 태어난, 맞는 것이 평생의 업인, ‘수천수만 번 두들겨 맞으면서, 울음의 파문으로 소리의 밥을 짓는 신령한 공기(空器)이다. 그 공기는 아무 것도 담겨있지 않은 빈 그릇이다. 그 빈 그릇엔 밥이 가득 들어있다. 그 밥은 귀로 먹는 소리의 밥이다. 파문에 담아 채로 두들겨 사방에 날리면/ 천지가 깊고 은은한 소리를 품어/ 풀 나무 새 짐승들과/ 산과 들과 하늘과 사람들이 모두/ 귀로 듣고, 울음통 뜨거운 가슴으로 먹는 소리의 밥이다.

 

  ‘바다도 바람도 수많은 파문으로 화답하,고 급기야 소리의 자궁으로 거듭 태어나는 징! 자궁이란 신성 모태이며 창조를 의미하는 것. 그럼 시인은 징의 몸을 빌려 말하고 싶은 것 무엇일까?  채로 징 지잉 징 태질하며, 가혹하게도 가혹하게도 나를 담금질하며 /뜨거운 눈물로 한 겹 한 겹 옷을 벗고/ 한평생 떨며 떨며 소리로 가는 길마다 울고 싶어서/ 지잉 징 울음꽃 피우, 며 찾아가는 구도의 길 무얼까?

 

  징이란 시인의 정신세계를 감정이입한 객관상관물이다. 시인은 징의 몸을 빌려, 소리의 자궁이 되어, 남자의 몸으로 애를 낳고 싶다. /가만히 있으면 죽은 목숨인 나를/ 맞아야 사는, 맞아야 서는 나를/ 때려 다오, 때려 다오, 간청하며 ‘지잉 징 울음꽃 피우,며 찾아가는 구도의 길!  

 

  詩만이 시인을 구원한다면, 운명처럼 시를 쓸 수 밖에 없다면 /너를 그리워하느니/ 네가 그리워 안달하느니!/ 詩여, 불멸의 시여, 내게로 오라. 나 죽어도 좋으니, 얻어맞아 죽어도 좋으니, 방짜징 울림통으로, 길고 긴 여운으로 내게로 오라!  

시인의, 물의 뼈, 옹골찬 詩心이 /온몸에 확, 성냥불 그어/ 스스로의 몸이 다비식인/ 고추잠자리처럼 새붉다.    

   - 조삼현(시인)


 


  자궁은 생명을 키워내는 생명의 샘이며, 생명의 집이다. 방짜징의 자궁은 그냥 자궁이 아니고 소리의 자궁이다. 세상의 온갖 소리를, 소리밥을 지어 파문에 담아 사방에 날리는 소리의 생명샘이고 소리의 집이다. 그 소리는 그냥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수천 수만 번 두드려 맞’아야 태어나는 소리, 웃음보다 울음의 파문을 새기는 소리다. 그 울음은 저 혼자 우는 울음이 아니고 천지가 깊고 은은하게 품어 화답하는 울음이며, 풀 나무 새 짐승들과 산과 들과 하늘과 사람들로 하여금 가슴 속에 울음통을 만들게 하는 울음의 자궁이다. 한평생 떨며 떨며 가는 울음꽃길의 소리이다. 우리들 삶에 울음이 없고 슬픔이 없다면, 웃음만 있고 기쁨만 있다면 그 삶이 얼마나 삭막하고 깊이 없고 가볍고 경박할까. 모름지기 삶이란 강물 밑바닥 깊이 가라앉은 슬픔이 있어서, 혼자 고요히 밀실에서 눈물 글썽이는 울음이 있어서, 가슴 아려 잠 못 이루는 그리움이 있어서 그윽하고 아련한 꽃길로 승화되는 것이리라.

   ‘방짜징’이라는 객관적 상관물을 끌어와 환유를 통해 삶의 본질을 감동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맞아야 사는, 맞아야 서는 나’이기에 때려주는 너를, 본질적인 울음 울게 하는 너를 그리워하는 역설 속에 슬퍼서 아름다운 우리들 삶이 아프게 꽃피고 있다.

 

  삶의 본질과 삶의 진실에 닿아 있어서 독자들이 그 시를 읽으면서 스스로 자신의 우물에 두레박을 드리워 길어 올릴 수 있게 하는 시, 삶의 본질을 꿰뚫어 통찰하고 인간의 보편적 감정을 건드려 공감하고 교감하게 하는 시, 그리하여 인간의 감정을 움직이게 하고 드디어는 그의 삶을 바꾸어 놓는 시, 어떻게 사는 것이 값진 삶인가를 항상 생각케 하는 시, 이런 시가 감동 깊은 시이며, 시공을 초월하여 많은 독자에게 감동을 주어 오래 남는 시가 될 것이다. 일생 동안 이러한 시 한 편을 쓰기 위해 모든 시인들은 오늘도 밤을 밝히며 생명의 불꽃을 사르고 있는 것이리라.

        - 이혜선(시인)



중요무형문화재 제77호 유기장 이봉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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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방짜유기 제조기법 공개행사 현수막- ⓒ 이만유


  지난 11월 6일부터 8일까지 3일간 중요무형문화재 제77호 유기장(보유자 이봉주 84세)의 전통 방짜유기 제조기법 공개행사가 경향각지 방송언론인 및 학계, 기관단체장, 관련부분 종사자, 주민 등이 참석한 가운데 경북 문경시 가은읍 갈전리에 위치한 유기공방에서 개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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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무형문화재 제77호 유기장 공방 표지석과 축하화환- ⓒ 이만유


  '무형문화재의 올바른 전승과 원형 보존을 위해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는 단독 또는 합동으로 매년 1회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공개된 장소에서 해당 종목의 지정 당시 원형을 공개해야 한다'라고 문화재보호법(제36조의2, 시행령 제26조의3)으로 규정된 데 따른 행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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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금하기 및 용해과정- ⓒ 이만유


  유기는 우리 선대들이 가정에서 생활용품으로서 양은냄비와 스텐용기가 나오기 전 도자기와 함께 늘 생활 속에 함께했다. 특히 연탄이 연료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1960년대부터는 변색이 심하다는 이유로 생산뿐만이 아니라 유통까지 중단되어 20여 년간 유기는 우리 곁을 떠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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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핌질(넓힘질) 및 우김질 과정(도듬질) 1- ⓒ 이만유


  이후 유기의 전통성과 기법 등이 관심을 불러일으키면서 문화재청에서 문화재로 지정하고 사람들의 관심도 다시 유기제품으로 되돌아 왔다. 유기는 우리가 사용하는 일반 생활용품 외에 악기, 장신구 등 다양한 쓰임새로 인해 요즈음 많은 각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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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핌질(넓힘질) 및 우김질 과정(도듬질) 2- ⓒ 이만유


  이번에 개최된 공개행사는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 할 수 없는 분야인 방짜유기를 과거 전통적으로 제조해 오던 기법 그대로 재현하였는데 유기장 이봉주 선생님 외에 아들인 조교 이형근씨, 과정을 수료한 이수생, 전수장학생 등 모두가 참여하여 방짜유기의 전 제작과정을 공개해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주목을 끈 유익한 행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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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핌질(넓힘질) 및 우김질 과정(도듬질) 3- ⓒ 이만유


▶ 이봉주의 삶과 방짜유기 제작과정

  이봉주는 1926년 납청에서 8㎞ 떨어진 평북 정주군 덕언면에서 모친이 놋성기 장사로 생계를 이었던 집안에 태어났다.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3세 때부터 납청의 점주 김용도의 집에 취직을 하여 유기제작 일을 접하게 되었지만 기술은 배우지 못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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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핌질(넓힘질) 및 우김질 과정(도듬질) 4- ⓒ 이만유


  이봉주는 납청 출신이지만 고향에선 방짜유기 제작기술을 배울 기회가 없었고, 해방 후에 22세 때인 1948년에 월남하여 서울 용산구 후암동에서 납청 방짜유기 공장을 크게 하던 탁창여(卓昌汝)의 양대공장(良大工場)에 입사하여 기능을 익히기 시작했다. 이 공장은 모두 납청 출신의 유기장인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처음에는 김의선을 대장으로 한 점주 밑에서 일을 했으며, 김용도로부터 기능을 익혀 2년 만에 점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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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핌질(넓힘질) 및 우김질 과정(도듬질) 5- ⓒ 이만유


  18개월 후에 한국전쟁이 나자, 군에 입대하였다가 제대 후 다시 탁창여가 경영하는 공장에 들어가서, 29세 때 점주로서 옛 선배대장이었던 김용도와 김의선 등과 함께 일을 하였다. 이후 1957년에는 구로동에 자신이 직접 '평부양대유기공장'을 설립하여 대장겸 점주 그리고 경영까지 하여 생산 기술자로서 판매자까지 겸하게 되었다.

  그런데, 50년대 말부터 생활문화가 변화하면서 연탄을 쓰자, 연탄가스에 쉽게 변질되는 유기는 심한 타격을 받게 되었다. 이봉주의 회고에 의하면, 당시 남한에는 납청 유기공장이 서울에 5개, 대전에 1개, 김천에 1개가 있었지만, 거의 같은 시기에 폐업되고 지금까지 남아있는 공장은 오직 이봉주의 유기공장뿐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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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핌질(넓힘질) 및 우김질 과정(도듬질) 6- ⓒ 이만유


  1978년 경기도 안양시 박달동으로 이주하여 진유공사를 세워 공장시설을 개량하고 계속 양대유기를 제작하였으며, 1983년 6월 1일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1994년에는 안산 시화공단으로 확장 이전하여 각종 방짜유기를 생산했다. 그러나 안산지역에 많은 공단이 들어서면서, 공해로 인해 유기생산이 어려워지자 2002년 청정지역 경북 문경시 가은읍으로 공장을 옮기게 되어 현재까지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현재 문경에는 작업장과 전시장, 전통작업장 등 다양한 시설이 있으며, 전국최고의 방자유기 생산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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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물의 형태를 만드는 모습 - ⓒ 이만유


▶ 방자유기 제작 구성원
- 원대장 : 전체 방짜일을 총지휘하는 책임자로서 최고 기능의 보유자이다
- 앞망치 대장 : 원대장의 맞은편에 앉아 화덕에서 가열한 바둑을 재빠르게 모루 위에
                      올려 놓는 역할을 담당한다.
- 네핌대장 : 네핌질할 때 달구어진 바둑을 모루 위에 올려놓아 겟망치와 센망치가
                  메질할 수 있도록 하며, 겟 질이나 닥침질도 한다.
- 가질대장 : 수동식 선반작업대인 가질대에 앉아 기물을 마무리하는 것이 주된 일이고 닥침질도 한다.
- 겟대장 : 좋은 구리와 주석을 선별하여 정확히 합금해서 용해하는 역할
- 곁망치 : 앞망치의 왼쪽에 앉아 센망치와 달구어진 바둑을 교대로 쳐서 늘이는 작업
- 센망치 : 가열된 바둑을 세게 내리쳐 늘이는 작업
- 밖풍구 : 겟대장의 조수로 용해작업을 할 때 풀무질을 하거나 도가니를 소탕에
               넣고 용탕을 들어내는 등 용해를 돕는다.
- 안풍구 : 원대장의 조수로 화덕에 불을 피우고, 화력을 유지시키는 풀무꾼이다.
- 제질풍구 : 제질간의 풀무꾼으로, 원대장이 제질할 때 조수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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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물의 형태가 갖추어져가는 모습 1- ⓒ 이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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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물의 형태가 어느 정도 완성되어가는 모습- ⓒ 이만유


▶ 방자유기 제작과정
(1) 바둑만들기
① 합금하기 : 순동 16냥(1근)에 주석 4냥 5돈
② 용해(鎔湯) 만들기 : 주석을 먼저 도가니에 넣은 후 주석이 녹아가면 구리를 넣는다.
③ 용탕붓기
(2) 네핌질(넓힘질) 과정
① 바둑가열하기
② 늘이기와 겹치기
③ 협도질 하기
(3) 우김질 과정(도듬질)
  - 네핌질이 끝나 넓혀진 바둑을 가열과 메질을 반복해서 한꺼번에 여러 개의 형태를
    만들어가는 과정 
(4) 냄질 과정(이가리질)
  - 우김질된 바둑은 U자형의 그릇 모양으로 겹쳐지게 되는데, 이것을 하나씩 떼어내는 작업을 냄질이라고 한다 
(5) 닥침질 과정(싸개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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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짜유기의 특성을 보여 주는 문양- ⓒ 이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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