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감상> 연가 / 道隱 시인

洪 海 里 2019. 8. 19. 06:09

연가


洪 海 里

 

맷방석 앞에 하고

너와 나 마주앉아 숨을 맞추어

맷손 같이 잡고 함께 돌리면

맷돌 가는 소리 어찌 곱지 않으랴

세월을 안고 세상 밖으로 원을 그리며

네 걱정 내 근심 모두 모아다

구멍에 살짝살짝 집어넣고 돌리다 보면

손잡은 자리 저리 반짝반짝 윤이 나고

고운 향기 끝간데 없으리니

곰보처럼 얽었으면 또 어떠랴 어떠하랴

둘이 만나 이렇게 고운 가루 갈아 내는데

끈이 없으면 매지 못하고

길이 아니라고 가지 못할까

가을가을 둘이서 밤 깊는 소리

쌓이는 고운 사랑 세월을 엮어

을 다시 쌓는다 해도

이렇게 마주 앉아 맷돌이나 돌리자

나는 맷수쇠 중심을 잡고

너는 매암쇠 정을 모아다

설음도 아픔까지 곱게 갈아서

껍질은 후후 불어 멀리멀리 날리자

때로는 소금처럼 짜디짠 땀과 눈물도 넣고

소태처럼 쓰디쓴 슬픔과 미움도 집어넣으며

둘이서 다붓 앉아 느럭느럭 돌리다 보면

알갱이만 고이 갈려 쌓이지 않으랴

여기저기 부딪치며 흘러온 강물이나

사정없이 몰아치던 바람소리도

추억으로 날개 달고 날아올라서

하늘까지 잔잔히 어이 열리지 않으랴.

 

출처 : 洪海里는 어디 있는가

- 홍해리 시선집 / 도서출판 움 (2019)

    

 

<감상>

래된 정경이다.

여인네 둘이서 맷돌을 돌리는 모습

적어도 60여년 전에야 볼 수 있는 모습이리라.

 

그런데 이 시에서는 부부가 둘이서 맷돌을 갈고 있으니

둘이 만나 이렇게 고운 가루 갈아 내는데

끈이 없으면 매지 못하고

길이 아니라고 가지 못할까

 

정 깊은 가난한 부부이리라.

부족한 식량사정에 옥수수나 콩을 맷돌에 갈아서

옥수수 죽이나 두부를 만들어 먹었으리

 

저녁 무렵 부부가 다정하게 맷돌을 돌리는 모습을 생각하면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다.

 

네 걱정 내 근심 모두 모아다

돌리다 보면 고운 향기 끝 간 데 없으리니....

 

한 끼 해결하면 오늘은 행복한 것을

힘든 세상에서 아등바등할 것 있느냐

 

쌓이는 고운 사랑 세월을 엮어

한 생을 다시 쌓는다 해도

이렇게 마주앉아 맷돌이나 돌리자

 

조금은 소극적인 삶의 대처법이 마음에

안 들어도 사는 게 뭐 대수냐

이렇게 알콩 달콩 사는 것이....

 

시를 읽으며 욕심없는  옛 부부의 모습에서

아름다운 연가가 귀에 들리는 듯하다.

 

- 道隱(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