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정곡론正鵠論』(2020)

물은 물리지 않는다

洪 海 里 2019. 12. 21. 15:01

물은 물리지 않는다

 

洪 海 里




물은 왜 물리지 않는가


이빨로 깨물어도 어찌 물리지 않는가

빛도 없고 내도 없고 맛도 몸도 없는 물

아무리 마셔도 물리는 법이 없고

질리지 않는 것이 물이다


물은 사이가 없다

물과 물 사이에 무엇이 있어 사이를 지우는가

몸에 샘이 솟아 내가 되어 강에 이르고

마침내 바다에 닿아야 하나가 된다


우주를 움직이는 것은 물의 힘이다

생명은 물로 비롯되어 물로써 바로 선다

꽃 본 나비이듯

물 본 기러기 어찌 그냥 지나겠는가


무릇 맛의 세계를 다스리는 것은 물의 덕이다

맛이 없다는 물맛이 제일이다

그러니 물에 물 타는 짓은 하지 말 일이다

물은 제 맛을 버리지 않는다


너에게 스며드는 내 사랑이 그렇다.


  * 물맛으로 몸을 읽는다. 물맛을 느끼면 몸이 자연스러운 상태를 유지한다는 말이다.

잠에서 깨어나 마시는 물 한 모금으로 하루가 부드럽게 열린다. 물은 평소 갈증을

채우는 역할로 드러나지만, 내가 모르는 사이에 스며들어 몸속 은밀한 부분까지

살리는 것이다.


  물 같은 시는 질리지 않는다. 물의 자극이 요란하지 않고 그윽한 자리로 이끄는

것처럼 물을 닮은 시는 천천히 몸으로 들어온다. 온몸으로 스며든 시는 마른 생각을

촉촉하게 적셔 움이 트게 한다. 이런 시를 읽으면 물이 되어 여기까지 흘러온

마음을 알게 된다.

 - 금강.




* 소순희 화백 그림 <홍해리 시인/Oil on Canvas/40.9x31.8cm>

 


                             진실한 사랑





영화 겨울왕국에서는 마법을 가진 주인공 엘사가 어릴 적 실수로
동생 안나를 다치게 합니다. 진실한 사랑이 안나의 얼어버린 심장도
녹일 수 있다는 겨울왕국 이야기.
곧 다가올 봄, 꼭 잡은 두 손의 사랑으로 세상이 따뜻해지길 소원합니다.
― 강원도 태백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동아일보 2020.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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