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처녀치마 / 천지일보 2021.04.29. 윤석산 시인

洪 海 里 2021. 5. 9. 04:11

[마음이 머무는 詩]

 

처녀치마 - 홍해리

  •  

처녀치마

 

洪 海 里(1942 ~ )

 

 

철쭉꽃 날개 날아오르는 날
은빛 햇살은 오리나무 사이사이
나른, 하게 절로 풀어져 내리고,
은자나 된 듯 치마를 펼쳐 놓고
과거처럼 앉아 있는 처녀치마
네 속으로 한없이 걸어 들어가면
몸 안에 천의 강 흐르고 있을까
그리움으로 꽃대 하나 세워 놓고
구름집의 별들과 교신하고 있는
너의 침묵과 천근 고요를 본다.

 

 

 

[시평]

 

처녀치마는 식물의 이름이다. 처녀치마는 지난해에 돋아난 잎이 시들지 않고 무성한 채로 추운 겨울을 견뎌낸다. 겨울의 잔설이 녹아내릴 때쯤 겨울을 견뎌낸 잎 가운데에서 꽃대가 올라오기 시작한다. 3월 말경이면 꽃대가 완연히 올라와 4월에서 5월까지 홍자색의 꽃이 줄기 끝에서 서너 개, 혹은 열 개 정도가 뭉쳐 달리 듯 피어나는 야생화다. 그래서 마치 이른 봄날 언덕배기에서 내려다보면, 산속에서 치맛자락을 넓게 펴고 앉은 ‘처녀’ 같이 보이는 풀꽃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그래서 친숙한 철쭉꽃이 한창 피어오르는 그러한 시절, 마치 숨은 은자(隱者)인 양, 한 폭의 치마를 펼치고, 오래 전에 잊혀진, 이제는 지나간 과거의 여인이 앉아 있는 듯 피어나는 꽃. 비록 가녀린 식물이지만, 한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견뎌낸 그 속으로 들어가면, 겨울에도 얼지 않고 흐르고 흐르는 천의 강이 있을 듯하다.

새로이 맞이하는 봄 계곡에서, 인고의 시간 속에서, 그리움으로 꽃대 하나 세워 놓고, 견디는 침묵과 천근의 고요를 안으로 삼키며, 먼 하늘 떠도는 구름의 집, 밤이면 떠오르는 별들과 교신을 하는 처녀치마. 어쩌면 우리의 보이지 않는 아픔의 시간이 오롯이 피어오른, 그런 꽃이 아닌가 한다.

- 윤석산(尹錫山) 시인

 

 

* 처녀치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