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아내는 부자 / 감상 · 그림 : 전선용(시인)

洪 海 里 2021. 11. 16. 06:33

아내는 부자

 

洪 海 里

 
 
 
나는 평생 비운다면서도
비우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버린다 버린다 하면서도
버린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다 내려놓자 하면서도 그러지 못했습니다
버린다 비운다는 말 한마디 없이
내려놓는다는 말도 없이
아내는 다 버리고 비웠습니다
다 내려놓고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부자가 되었습니다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평안합니다
천하태평입니다
먹는 것도 입는 것도 걱정이 없습니다
집 걱정 자식 걱정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거칠 것이 없는 아내는
천하제일의 부자입니다.
 
#홍해리_시인의 시선집 『마음이 지워지다』중에서 「아내는 부자」 (놀북. 2021)
 
 
<사족>
살면서 비우고 살아야 한다는 말을 우리는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많이 듣고 삽니다. 머리는 알고 있는데 도무지 실천이 어려운 비워내기는 결국 어떤 어려운 환경에 처하고서야 자의가 아닌 방법으로 실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경에서, 부자가 천국에 가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 했으니 살면서 비우는 일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단적으로 말해 주고 있습니다.
홍해리 시인은 치매를 앓아온 부인 옆자리를 오랫동안 지키며 시를 써왔습니다. 거동을 하지 못하고 자리에 누운 부인을 바라본 세월, 아무런 걱정이 없는 듯 천하태평으로 누워있는 아내를 보면서 시인은 아내가 천하제일 부자라고 말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참 역설적인 표현입니다. 시인의 관점은 슬픔을 승화시켜 깨달음으로 이어지는 데 있습니다. 이는 시가 가져야 할 책임, 사람들의 영혼을 깨우는 역할을 충실하게 했다는 점입니다. 가르치려들지 않고 처한 상황을 통해 우리가 올바르게 살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욕심을 내려놓는 일은 우리가 화평하게 살게 되는 원동력이 됩니다. 아파트 값이 폭등하고 금전만능주의가 된 것도 어쩌면 사람의 욕심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마음이 지워지다』시집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시인은 모든 것을 비우는 중입니다.
아내를 향한 思婦曲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에게 삶의 지혜를 주는 시입니다. 그런 의미로 본다면 이 시를 읽을 때 시인이 가리키는 상황의 표면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을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불쌍하고 애처로운 눈빛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시인의 경험적 가치를 어떻게 내게 적용할 것인가를 봐야 합니다. 화분 밑동이 뚫려있지 않으면 물이 고여 썩게 되고 결국은 꽃은 죽게 됩니다.

 

 

* 글 & 그림 : 전선용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