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산책

洪 海 里 2021. 10. 18. 05:49

▲  서울지하철 시 홍해리의 '산책'  ⓒ 이인환

 

"산책은 산 책이다/ 돈을 주고 산 책이 아니라/ 살아있는 책이다/ 발이 읽고/ 눈으로 듣고/ 귀로 봐도 책하지 않는 책/ 책이라면 학을 떼는 사람도/ 산책을 하며 산 책을 펼친다/ 느릿느릿,/ 사색으로 가는 깊은 길을 따라/ 자연경(自然經)을 읽는다/ 한 발 한 발."
- 홍해리의 '산책' 전문

스크린도어 앞에서 이 시를 접할 때 나는 짜릿한 전율을 느꼈다. 시는 시가 갖춰야 할 쾌락적 기능과 교훈적 기능을 모두 갖췄다. '산책'이라는 말에서 '돈을 주고 산 책',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산 책'을 떠올리며 교묘한 언어유희를 하며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한다. 쾌락적 기능을 수행한 것이다. 아울러 산책을 '자연경'이라는 경전을 읽는 행위로 승화시키며 살아가며 '산책'뿐만 아니라 '책'을 통해 철학적 사고를 해야 한다는 각성을 깨우쳐 준다. 이보다 확실한 교훈적 기능이 또 어디 있겠는가? 시가 갖춰야 할 창의성과 적절한 비유와 상징, 그리고 언어유희를 통한 시적 향유의 묘미를 깨닫게 한다. 이런 시 정말 좋다.

그렇다고 모두 이런 시를 써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한 편의 시를 통해 쾌락적 기능과 교훈적 기능을 모두 수행하는 시를 창작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시의 기본을 착실히 익혀야 한다. 축구선수가 축구규칙을 익히듯이 시인으로서 시의 규칙을 확실하게 익혀나가야 한다.

 

"서울시 지하철 스크린도어 게시 시 공모에 부쳐"
‘허접한 시’라고 돌멩이 던지는 이들에게 들려주는 정말 허접한 변명
17.07.19 01:15l이인환(yakyeo)
-OhmyNews에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