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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녘 허수아비 / 수도일보 2022.06.08.

洪 海 里 2021. 12. 9. 05:44

수도일보 / 2022. 06. 08.

 

해질녘 허수아비
 
홍해리

 
사내도 때로는 나락에 떨어져
시커멓게 울고 싶은 때가 있다
한평생이 독같이 외로운 길이었다면
남은 길은 또 어떨지
울지 않는 은자隱者의 북을 두드리면서
홀로 고요해지고 있는
저 들녘의 저녁녘
밥상은 이미 차려졌는데
너덜거리는 옷때기 한 자락 걸치고
허수어미도 없는
텅 빈 논배미 한가운데
바람 맞으며 서 있는 나!

 

* 허수아비 서 있는 들녘에 왜 허수어미는 없는 것인지 이제 알겠다. 외롭지 않다면 허수아비가 될 수 없고 외로운 허수아비는 혼자라서 원래 어미는 존재하지 않는다. 홍해리 시인은 다른 작품 '허수아비'에서

 

“나이 들면

그리움도 사라지는 줄 알았습니다.

 

나이 들면

무서운 것이 없을 줄 알았습니다.

 

막상 나이 들고 보니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텅 빈 들녘에 홀로 서서

낮은 옷자락만 바람에 흐느낍니다.

 

그래도

마음은 가득하니 짜장 부자입니다"

 

라고 고백하였는데 왜 허수아비가 될 수밖에 없었고 허수아비는 어떤 존재라는 것을 요약하여 말한다. 사람은 원래 혼자다. 부모로부터 태어나 형제가 많고 커가며 친구를 사귀고 사회의 공동체가 되어 함께 생활하지만 개개인은 독립체로 인격을 갖춘다. 하지만 혼자일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러다가 짝을 만나 함께 살지만 그때도 역시 혼연일체가 되지 못하고 각각의 생각을 고집한다. 원래 하나가 될 수 없는 객체가 사람이다. 젊음을 잃고 늙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때는 짝의 생각을 알게 될 때다. 다시 말해 철이 들었을 때 비로소 늙었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다른 한쪽이 떠나든가 영영 돌아오지 못할 길을 간다. 한평생 똑같이 외로운 길이었다면 처음부터 들어서지 않았을 것이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는가. 은자로 산다 해도 밥은 먹어야 하고 사람이 할 수 있는 온갖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래서 사람은 각자가 허수아비가 될 수밖에 없다. 홍해리 시인은 허수어미를 갖지 못하는 허수아비의 고독을 논배미 한가운데서 읽은 게 아니라 많은 사람이 모인 곳에서 느꼈다. 하지만 끝까지 버틴다. 지금껏 세상을 다 가진 부자였지 않은가. 사람의 기본적 고독의 사유를 허수아비 옷자락에 걸치게 한 작품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 이오장(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