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커니 잣거니』(미간)

적울積鬱

洪 海 里 2022. 9. 19. 15:12

적울積鬱

 

洪 海 里

 

"시는 내 영혼의 멍에,

향기롭게 빛나는 미라"라고

꿈속에서 미친 듯이 소리치고 있었다

"미라야, 너를 사랑해!" 하고 말해도

멍에는 벗겨지지 않고

미라의 무덤도 펼쳐지지 않았다

미라는 행간에 잠들어 있었다

나는 행간을 건너뛰면서 미라를 깨웠다

잠에서 깨어난 미라를 마구 씹기 시작했다

조미료, 방부제가 너무 많이 들어간 듯했다

질겅질겅 씹다 입술도 깨물고

꼭꼭 씹다 혓바닥도 물어뜯었다

살맛 피맛이 이럴까 하며 제멋대로 씹었다

되는 대로 씹다 뱉을 일이 아니었다

곰곰 씹어 보니 제 살맛 피맛이 아니었다

미라 속에 씹히는 돌이 있었다

그것만 뱉어내면 되는 것이었지만

가려내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꼭두새벽 밖에 나와 하늘을 보면

꺼진 영혼의 별들이 졸음에 겨워 있었다

답답한 내 미라의 파편만 같아

피마 한 마리 잡아타고 달려가고 싶었다

하늘길이 열리고 날이 밝을 때까지

환히 열린 무덤 속으로 달리고 싶었다.

 

- 시전문무크 《시와인식》200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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