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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행致梅行 1.2.3.4 시집 종합... 副題 (홍해리 시인의 신간 “치매행 제4시집” 「이별은 연습도 아프다」에 부쳐 )[출처] 치매행致梅行 1.2.3.4 시집 종합... 副題 (홍해리 시인의 신간 “치매행..

洪 海 里 2022. 12. 6. 13:24

시집을 열면서....

 

홍해리 시인의 치매행 제4시집 「이별은 연습도 아프다」가 『놀북』 출판사에서

나왔다. 치매 아내에 대한 간병시집 제1시집 「치매행」 이후 5년여 만이다.

이번 시집으로써 아내에 대한 애절한 思婦曲은 총 네 권 전편 421편으로

끝이라고 하니 그 의미가 크다.

 

제1시집 「치매행」 2015. 황금마루 ......................................치매행 1-150편

제2시집 「매화에 이르는 길」 2017. 도서출판 움..............치매행 151-230편

제3시집 「봄이 오면 눈은 녹는다」 2018. 도서출판 움.....치매행 231-330편

제4시집 「이별은 연습도 아프다」 2020. 놀북 ....................치매행 331-421편

 

이 시대에 「치매행致梅行시집」의 의미는 무엇일까?

 

황혼이혼, 졸혼 등 예전에는 생각도 못하던 세태의 흐름 속에서 과연 부부의

사랑과 신뢰는 믿을 수 있는 것인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건강할 때나 아플

때나 서로 사랑하겠다는 결혼의 서약은 어디까지 유효한가?

「치매행」 시집은 지독하리만큼 원칙에 충실한 마음 여린 한 지아비가 아픈

지어미에 대한 무한 책임을 보여준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치매행 1집부터 4집까지 전체를 다시 읽으며 이 시인의 사는 모습에서

사람의 길을 생각해 본다.

 

(치매행 제 1시집)

 

1) 발병

 

“밤낮없이 두통으로 고생하는

너, 서러워서 나는 못 보네“ (「정 – 아내에게」 부분, 비밀 2010/ 우리글)

 

이때가 ‘致梅行’의 시작이었다.

한일병원, 삼성병원, 서울대학병원, 고려대학병원을 거쳐

다시 한일병원으로

먼 길을 돌아 돌아 집으로 왔다"

「아내여 아내여」 부분 (치매행 276)

 

2010년경에 시인의 아내는 몸이 많이 약해지고 밤낮없이 두통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그런 아내를 바라보며 시인은 안타까운 심정을

시로 표현했지만 이때가 치매의 시작이었다는 것을 당시에는 알지

못하였으리라.

 

아내가 아픈 이후로 여러 병원을 다녔지만 결국 치매로 판정 나고서는

약이나 타서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기나긴 가정 간병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치매행 제2시집)

 

2) 치매 아내의 변화하는 모습

 

「치매행 1편」에 치매초기의 아내 모습이 나타나 있습니다.

 

“아내가 문을 나섭니다/ 어디로 가는지도/ 왜 가는지도 모른 채/

그냥 집을 나섭니다/ 눈은 내리는데/ 하얗게 내려 길을 지우는데/

지팡이도 없이 밖으로 나갑니다/ 닫고 걸어 잠그던 문 다 열어 놓고/

매듭과 고삐도 다 풀어버리고/ 바람처럼 강물처럼 구름처럼/ 텅 빈

들판처럼 혈혈孑孑히......, / 굽이굽이 한평생/ 얼마나 거친 길이었던가/

눈멀어 살아온 세상 / 얼마나 곱고 즐거웠던지 /귀먹었던 것들 다 들어도/

얼마나 황홀하고 아련했던지,/ 빛나던 기억 한꺼번에 내려놓고 /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사는 / 슬픈 꿈이 아름답고/ 아름다운 삶이 아득한,

아침에 내린 눈 녹지도 않은/ 다 저녁때 / 아내가 또 길을 나섭니다.

(「다 저녁때」 전문 “치매행1”)

 

이때만 해도 아내는 집을 혼자서 나가기도 합니다. 말을 하고 떼를 쓰기도

합니다 점차 아내는 어린아이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낮에는 주간(월-금)

요양시설에 맡겨집니다.

 

“ 아내는 다시 한 살이 되고 나서/ 다시 한 살이를 시작하는/

어른애가 되었습니다/ 어린이가 어른이가 되었습니다/ 아침마다

가방을 메고/ 어른이 유치원엘 갑니다“ (「어른애」 부분 치매행 157)

 

집안에 있을 때는 무서운 지뢰 매설자가 됩니다

 

“한순간/ 한눈팔면 어김없이 어디선가 지뢰는 폭발합니다/

새벽부터 대책 없이 지뢰 제거 작업에 몰두하다 보면/

세상이 쓸쓸하기 짝이 없습니다. / 퇴직하고 할 일 없이 노는 사내/

그냥 노는 꼴 못 보겠다고 / 일거리 만들어 주는 아내/

똥 칠갑漆甲이 된 손을 닦고 씻고/ 마주 앉아 아침상을 비웁니다“

( 「방심」부분 치매행 176)

 

이때까지는 아내에게 딸에 대한 흐릿한 생각이 아직 살아 있습니다

 

"새벽 네 시/ 아내가 2층으로 올라갑니다/ 불 꺼진 방으로 올라갑니다

“어디 가? 내려와!”/ “ 얘, 어디 갔어?”/ “걔, 여기 없어, 제 집에 있지!”/

아내는 딸애가 시집간 것도 모릅니다. "(「새벽 네시」 부분 치매행155)

 

이후 작은 사건으로 인하여 아내는 그간 의탁하였던 주간 요양시설에서도

퇴소하면서 이제는 아내를 집에서 온종일 돌보게 됩니다.

 

답답해서 환장할 것 같은 이때가 시인에게는 그래도 봄날이었습니다.

엉뚱한 말이라도 할 수 있었고 지뢰 매설로 힘들었지만 아내는 몇 가지

말과 행동을 하곤 했으니까요. 그러나 이제는 먹는 것도 말도 잊어버립니다

시인은 한탄합니다. 아무 말이라도 해보라고...

 

"배고프면/ 밥 먹자 하고,// 아프면 / 병원 가자는, //

말만이라도/ 할 수 있다면, // 걱정 없겠다/ 정말 좋겠다." (「원願」, 치매행 169)

 

이제 아내는 말도 행동도 못하고 오직 왼쪽 팔을 움직일 뿐 온몸을 침대에

맡긴 채 살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식물인간입니다.

 

“ 이제는 왼쪽 팔을 움직이는 것이 전부/ 온몸을 침대에 맡긴 채/

허공으로 눈길을 던질 때마다/뭔가를 말하려는 듯 애절합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하다못해 집 뒤 둘레길이라도 걸었을 것을/

이제와 생각하니 한이 됩니다" (「마지막 나들이」 치매행 317 부분)

 

벌써 삼 년을 홀로 누워 있는 아내의 삶은 그대로 시인의

가슴에 박히는 화살이 됩니다

 

“삼 년을 홀로 누워 // 미완의 삶을 잇는 // 아내의 눈빛 //

내 가슴에 그냥 박히는 // 천의 화살!" (「애절哀切」 전문 (치매행 410)

 

(치매행 제3시집)

 

3) 간병하는 시인의 모습

 

사랑하는 아내의 발병을 보면서 모든 게 “아 내 탓이로다, 내 탓!”

(「내 탓」, 치매행 305 부분) 이라며 자책하던 시인은 직접 가정 간병을

결단하면서 현실을 긍정하고 있지만...기억을 잃어버린 아내의 모습을

바라볼 때면 다리가 비틀거리고 어깨가 축 처집니다.

 

“ 아내는 자유의 나라에서 / 놀고 있는데, // 작달비 내리 퍼붓는/

해질녁// 너덜겅길/ 비틀비틀 걸어가는 // 사내 하나/

등이 굽고 어깨가 처진.“ ( 「해질녁」전문 치매행 151)

 

이제 시인도 점차 지쳐갑니다. 간병은 무쇠도 녹여버릴 만큼

힘든 노동입니다. 팔순을 바라보던 시인에게 희망 없는 간병은

참으로 힘든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 아픈 것도 모르고 누워 있는 사람도 있는데/

힘든다는 말 하지 말자/ 식욕부진/ 체력 저하/ 수면 부족/

당연한 일 아닌가“ ( 「간병」 부분 치매행 307)

 

혼자 밥해 먹고 간병하는 하루하루 힘든 것이 당연한 일로

여기지만 이제는 눈썹도 천근인 저녁 시간입니다.

 

“나이 든 사내/ 혼자 먹는 밥.// 집 나간 입맛 따라/ 밥맛 달아나고,//

술맛이 떨어지니/ 살맛도 없어,// 쓰디쓴 저녁답/ 오늘은 눈썹도 천근이다 “

(「오늘은 눈썹도 천근이다」전문 (치매행 231)

 

밥맛이 있겠습니까? 하루 종일 기저귀 갈아 채우고 긴장하며

지낸 하루입니다

 

“병든 아내 똥 한 번 안 만져 보고/ 남편이라 할 수 있겠는가//

오늘도 집사람 기저귀 갈아주고/ 뒤처리를 하다 보면/

내 손은 이미 황금손이 되어 있다“ (「비닐장갑」 부분 치매행 191))

 

지쳐가는 시인은 아내의 미래를 생각하며 자식들에게 미리 유언의

시를 쓰고 있습니다. 이때만 해도 아내와 함께 최후를 맞이할 각오를

하고 있었나 봅니다. 참으로 눈물 나는 현실입니다

 

“어느 날/ 둘이서 나란히 누워 있다고/ 놀라지 말 일이다//

세상이 다 그렇고/ 세월이 그런 걸 어쩌겠느냐//

말이 없다고/ 놀라지 마라/ 이미 말이 필요 없는 행성에서//

할 말 다 하고 살았으니/ 말이 없는 게 당연한 일//

천지가 경련을 해도/ 그리워하지 마라/ 울지 말거라//

유채꽃 산수유꽃 피면/ 봄은 이미 나와 함께 와 있느니.“

(「자식들에게」 전문 치매행 218)

 

치매는 점점 나빠질지언정 치료로써 더 나아질 수 없는 병이지요

시인은 점점 지쳐갑니다. 너무 피곤하여 어느 날은 잠도 못 잡니다..

그 날의 모습을 시로 그렸습니다

 

“초저녁 자리에 들어/ 실컷 잔 것 같은데/

이제 / 겨우 열 시.//

또 한껏 잔 듯해/ 시계를 보니/ 열두 시 자정! //

아직 / 오늘에 머물러 있네“ (「전야」 부분 치매행 419)

 

주변 사람들이 이제 그만 요양병원에 보내라고 합니다.

시인의 고통을 참다못한 말씀이겠지요 그러나...

 

“주변에서, 이제 그만,/ 아내를 요양시설에 보내라고 합니다//

그러나 내가 나를 용서할 수 없어 / 그 말을 받아들일 수 가 없습니다//

살아 있는 것만도 고마운 일/ 곁에 있어 주는 것도 감사한 일 //

이제껏 해 준 게 아무것도 없는데 / 빈손으로 떠나보낼 수는 없습니다//

참을 수 있을 때까지 견뎌내고/ 가는 데까지 함께 가겠습니다//

“미안합니다!” ( 「이제 그만」 전문 치매행 267)

 

아내는 곧 시인 자신입니다 그러니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한 아내와

함께 끝까지 가는 것입니다. 혼자 해 보겠습니다. 미안합니다!

 

매일 혼자 먹는 저녁밥, 그나마 한 병의 막걸리가 위안이 됩니다

 

“삶은 감자 한 알/ 달걀 한 개/ 애호박 고추전 한 장/막걸리 한 병//

윤오월 초이레/ 우이동 골짜기/ 가물다 비 듣는 저녁답/ 홀로 채우는 잔.“

(「만찬」 전문 치매행 237)

 

시인의 체력은 점점 고갈되어 가는데 간병은 언제 끝날 수 있는 것인가요?

지금 시인의 삶을 보고 누가 그를 비난할 수 있나요? 그런데 누군가 시인을

비난 하는 말이 귀에 들어왔나 봅니다 눈물 나도록 슬프고 화가 나겠지요

사람이 얼마나 비열할 수 있나요?

 

“마누라 아픈 게 뭐 자랑이라고/ 벽돌 박듯 시를 찍어내냐?/

그래 이런 말 들어도 싸다/ 동정심이 사라진 시대/

바랄 것 하나 없는 세상인데/ 삼백 편이 넘는 허접쓰레기/

부끄러움도 창피한 것도 모르는/ 바보같이 시를 찍는 기계다. 나는!“

(「시를 찍는 기계」 부분 치매행 346)

 

그래도 가까운 친구가 치매행 시집을 응원합니다

 

“기왕 시작詩作을 시작始作했으니/ 천 편의 시를 쓰기 바랍니다/

그러면 시신Muse詩神도 감동하리라 믿습니다/ 그리하여 환자의 병을 말끔히/

낫게 해 줄 것입니다/ 축원합니다! ///

 

그래 천 편의 시를 쓰자/ 아니, 천 편 아니라 만 편인들 쓰지 못하랴/

병든 마누라 팔아 시를 쓴다고/ 누가 얄밉게 비아냥대든 말든/

그게 뭐 대수겠나/ 그래서 아내의 병이 낫기만 한다면/

천 편, 만 편의 시를 쓰고 또 쓰리다!" (「천 편의 시」부분 치매행 347)

 

그러나 이 각오도 더 이상 지탱할 수 없나 봅니다 점점 그 끝이 오고 있나요?

시인은 이별을 할 때가 오고 있음을 직감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어느 날엔가는 꿈에서 아내가 그 날을 미리 보여줍니다.

 

“아내가 하얀 옷을 입고 가고 있었다.// 빛나는 흰빛, 그림자도 뵈지 않았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홀로 가고 있었다.// 기해년 정월 그믐 경칩의 새벽이었다.“

(「흰 그림자」 전문 (치매행 392)

 

이제 이별 연습하고 있나요? 그 날을 준비하고 있나요?

그저 우두망찰 별만 바라보고 있나요?

 

“껴안아야 할 사람과 /떠나보내야 할 사람을 위하여/

별리別里를 찾아/ 별과 별 사이를 헤매는 이/ 우두망찰 해 서 있을 때도/

이 별과 저 별을 노래하는 일.“ (「별리를 찾아서」 부분 치매행 386)

 

아내와의 이별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눈물이 앞섭니다. 이별은 연습도

너무 아픕니다. 「치매행」 마지막 시편은 이렇게 끝이 납니다!

 

!

 

(「이별은 연습도 아프다」 전문 치매행 421)

 

(치매행 제4시집)

 

시집을 덮으면서....

 

시는 무엇인가?

“시를 쓰기 위해서는 새들이 어떻게 나는지 느껴야 하며, 작은 꽃들이

아침에 피어날 때 어떤 몸짓을 하는지 알아야 한다. 시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감정이 아니고 경험이기 때문이다. 시는 알지 못하는

곳에 난 길, 뜻밖의 만남이다. “ (릴케)

 

릴케는 시는 감정이 아니고 경험이라고 하였다. 시는 구체적 삶 속에서

시인이 직접 겪고 만난 기쁨 고통 애환을 표현한 것이리라. 그러므로

사람들에게 시가 따뜻한 위안이 되고 슬픈 사람에게는 기쁨의 샘이 될 수

있는 것이리라

 

치매행 시편은 모두 소박한 시입니다. 따뜻한 마음으로 공감하면 눈물 나게

다가오는 시입니다. 아내가 치매에 걸렸다는 구체적 삶 속에서 늙은 시인

남편이 간병에 따른 육체의 한계를 이겨내고 끝까지 인간의 품위를 지켜주려고

눈물로 쓴 사랑의 서사시입니다. 10여 년간간 치매 아내 곁에서 홀로 지탱하며

기록한 안타까운 간병일지입니다.

 

그 시간은 “남편으로서 또한 시인으로서 긴 성찰의 시간이었으며, 이를 통하여

자신을 극복하고 대지에 홀로 설 수 있는 큰 사람으로의 변신의 시간이었다.“

고 나는 생각합니다.

 

한 때 「자식들에게」(치매행 218)를 읽으며 혹시 여차하면 시인도 아내와 함께

눈을 감는 것이 아닐까 걱정도 했습니다만 고통 속에서 자신을 극복한 시인은

이제는 동반 자살이 이라는 슬픈 엔딩이 아닌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삶이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자신을 극복한 사람에게는 아직 살만한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새벽 3시, 바람 좋은 날, 책상 위에 하얀 백지와 연필이 놓여있는 우이동

시인의 작은 방 세란헌, 달빛이 깊숙이 비치자 스르르 잠이 깬 노시인, 매일 자기를

충전할 수 있는 새벽 맑은 시간. 백운대를 향하여 가부좌하고 묵상으로 하루를 시작

하던 시인의 마음속에 깨달음의 환희가 터집니다.

 

“새벽에 잠을 깨는/ 적막 강산에서/ 남은 날/ 말짱 소용없는 날이 아니 되도록/

깨어 있으라고/ 잠들지 말라고/ 비어 있는 충만 속/ 생각이 일어 피어오르고/

허허 적적/ 적적 막막해도/ 달빛이 귀에 들어오고/ 바람소리 눈으로 드니/

무등, / 무등 좋은 날! “ (「무심중간」 전문 치매행 330)

 

“무등, 무등 좋은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