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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해리 시인의 시와 시론, 그리고 그의 삶 ... 신간 시집『정곡론 』을 읽고

洪 海 里 2022. 12. 7. 06:17

홍해리 시인의 시와 시론, 그리고 그의 삶 ... 신간 시집 『정곡론 』을 읽고

 

                                                                                                            (타관의 포토에서...)

홍해리 시인의 시와 시론 그리고 그의 삶 ... 신간 시집 <정곡론 >을 읽고

1) 시집을 열며...

홍해리 시인은 금년이 팔순이시다. 1969년 첫 시집 『투망도』를 내며

등단하였으니 시력 50년이 넘었다, 젊은 시절 바다를 볼 수 없는 청주에

살던 시인은 “海里” 라는 작은 어촌마을을 꿈꾸며 바다를 동경했다.

그는 처음부터 시를 낚는 어부를 꿈꿨다. 바다는 무진장한 어장, 투망을

던지면 싱싱한 고기가 걸리는 그런 행복한 꿈이었다. 그 생각을 할 때면

언제나 온몸의 근육에 힘이 넘쳐 꿈틀거렸다.

시인의 첫 시집 <투망도>는 그렇게 시작됐다.

“ 투망投網은 언제나 / 첫새벽이 좋다/ 가장 신선한 고기 떼의 /

빛나는 옆구리/ 그 찬란한 순수純粹의 비늘/ 반짝반짝 재끼는 /

아아, 태양太陽의 눈부신 유혹誘惑/ 천사만사千絲萬絲의 햇살에 /

잠 깨어 출렁이는 물결/ 나의 손은 떨어 / 바다를 물주름 잡는다.”

( 첫 시집 <투망도> 부분)

하여 새벽이면 언제나 바다에 출항하여 투망을 던지던 시인은 50년이

넘은 지금도 아직 그가 꿈꾸던 시의 大魚를 잡기 위해 오늘도 바다로

나가고 있다. 그가 바다에 투망을 던지는 한, 그의 꿈은 현재 진행형이다.

대어를 잡을 때까지 지금은 언제나 연습일 뿐이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늙은 어부 산티아고처럼 시인은 언제나 출렁이는 바다에

투망을 던지며 대어를 꿈꾼다. 그것은 죽어서야 끝나는 시인의 숙명이다.

2) <정곡론> 읽기

<시작 연습 詩作鍊習>

엊저녁 난바다로 무작정 출항한

나의 백지선白紙船 해리호海里號

거친 물결을 밀고 나아갔다

오늘 꼭두새벽

빈배로 귀항했다

물고기 한 마리

구경도 못한 채

험난한 바다에서 흔들리다

파도와 달빛만 가득 싣고

축 처진 백기를 들고 투항하듯

쓸쓸한 귀항

나의 배는 허공 만선이었다.

(“시작연습” 전문)

시집 <정곡론>의 첫 시 “시작 연습 詩作鍊習은 위의 글에서 처럼 시인의 못다 이룬

50년 꿈이 담겨 있다. “물고기 한 마리 / 구경도 못한 채” 빈배로 귀항하고 있다는

것은 50년을 넘게 시를 써오지만 아직 마음에 흡족한 시를 만나지 못하고 있다는

시인의 아쉬움이며 겸사謙辭의 말씀이 아니겠는가. 그런 마음은 결국 끝없는 출항과

투망을 계속하는 이유가 될 뿐이다. 시인에게 은퇴란 이 세상을 떠나는 날일 뿐이니...

오늘도 시인은 시를 찾아 나서고 있다.

“ 일보 일배 / 한평생/ 부처는 없고/ 연꽃 속/ 그림자 어른 거릴뿐. //

풍경소리 / 천릿길 / 오르고 올라/ 절 마당 닿았는가/ 보이지 않네.

( ”詩를 찾아서“ 전문)

새벽 세시, 첫새벽이면 언제나 출렁이는 바다에서 고기를 쫒는 어부처럼

시인은 깨달음을 찾아 나서는 선승이기도 하다. 평생을 “시”라는 화두를 잡고

득도할 때까지 지독한 무문관 수련도 마다하지 않는 집념의 수도자! ,

그의 삶에는 오직 “시”외엔 모두 허접쓰레기다. “잘 죽기 위해” 피를 토하며

시를 쓴다.

“ 살기 위하여 / 잘 살기 위하여 쓰지 말고, // 죽기 위해 / 잘 죽기 위해,

// 쓰고, 또 / 써라. // 한 편 속의 한평생, 인생이란 한 권의 시집을! ”

(“명창정궤” 전문)

위 시는 시인의 그 유명한 ‘시로 쓴 시론’, “명창정궤의 시를 위하여”의 일부를

옮겨놓은 시다. 그는 죽기 위해, 잘 죽기 위해 시를 쓰는 것이니 시로 부귀영화를

구하는 것이 아니요, 시와 살며 시로써 이미 보상을 다 받았다고 생각하는

이 시대에 참으로 드물게 보는 무욕無欲의 시인이다.

시인은 거의 십여 년 넘게 치매를 앓고 있는 아내를 집에서 직접 간병하며

<치매행>과 <매화에 이르는 길>그리고 <봄이 오면 눈은 녹는다> 라는 세 권의 치매

간병 시집을 냈으니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고통 속에서 이번에는 정통 시집 <정곡론>

을 또 창작하였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야말로 자신을 극복하고 새로운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큰 시인이다. 니체의 아포리즘을 들먹이지 않아도 시인은 이미

위버멘쉬, 초인으로 변신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잠시 샛길로 벗어난 것 같다.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자.

오래된 대나무가 되어야 비로소 소리를 내는 피리나 퉁소를 만들 수 있듯이

한 해 한 해 칸칸이 탑을 세우며 아름다운 소리를 꿈꾸는 시인은

“죽순시학”을 지향한다.

숨어 사는 시인이 시환詩丸을 물에 띄우듯 / 대나무는 임자를 만나 소리

한 자락을 뽑아내니/ 산조니 정악이니 사람들은 이름을 붙인다/ 몇 차례

겨울을 지나 대나무가 되고 난 연후의 일이다. ” (“죽순시학 竹筍詩學” 부분)

시인의 시와 시론에는 그의 삶이 온전히 녹아 있다. 그의 삶에는 잡다한

불순물이 끼어들 수가 없다. 순수, 생명, 정수精髓만 있을 뿐이다. 그것이 시로

태어날 뿐이다. 시인이 좋아하는 옛 친구, 동양의 철학자 장자가 가르쳐준

지혜를 통하여 시 “정곡론”이 완성된다.

“보은 회인에서 칼을 가는

앞못보는 사내

안 보이는데 어떻게 일을 하는지요

귀로 보지요

날이 서는 걸 손으로 보지요

그렇다

눈이보고 귀로 듣는 게 전부가 아니다

천천히 걸어가면

보이지 않던 것

언제부턴가 슬몃 보이기 시작하고

못 듣던 것도 들린다

눈 감고 있어도 귀로 보고

귀 막고 있어도 손이 보는 것

굳이 시론詩論을 들먹일 필요도 없는

빼어난 시안詩眼이다

잘 벼려진 칼날이 번쩍이고 있다. ”

( “정곡론正鵠論” 전문)

“ 나는 갈고 또 간다 / 절・차・탁・마의 한 생이 지고/ 한 편의 시가 탄생하도록!”

( “ 나는 간다” 부분)

갈고 또 갈아서 잘 벼려진 칼을 얻는 것 처럼 한 편의 빼어난 시,

그 시를 얻기 위하여 자신을 ‘갈고 또 간다’ 면서 시를 쓰다 죽는 그 길을

끝까지 “나는 간다” 며 능청스럽게 언어유희를 즐기고 있다.

“한 권의 시집을 세우는 것은

시집 속 수십 편의 시가 아니라

한 편의 빼어난 시다.

한 편의 시를 살리는 것은,

바로,

반짝이는 시의 눈이다.

스스로

빛나는

시의 눈빛!

그 눈을 씻기 위해

시인은 새벽마다

한 대접의 정화수를 긷는다.

( ”시안詩眼“ 전문)

“ 앞을 보려거든 뒤로 걸어가라/ 뒤를 봐야 앞이 보인다/ 똑같은 것은

아름답지 않다/ 신은 같은 것을 창조하지 않았다/ 무심한 바람이

발길을 흔들어대도/ 물속 푸른 하늘을 새는 날고/ 하늘바다 높이 물고기는

헤엄친다/ 명중하는 표적의 울림을 위하여. “

( ”시핵詩核“ 부분)

한 편의 빼어난 시는 시안詩眼이 있고, 그 안에 시핵詩核이 살아 있나니,

아, 그 시안과 시핵을 찾아 내는 것이 한 편의 빼어난 시가 되는 것을!

그것은 생각의 뒤집기요 사물 뒤에 숨어 있는 알멩이를 찾아냄이니....

참으로 어려운 시의 길이다.

“하늘을 안고

땅을 업고

무한 공간 속을 날아가고 있었다

날아도 날아도 제자리였다

겨울이었다

꽁꽁얼어붙은세상에서시인이라는

수인명패를달고있는사람들이비명을

치고있었다바락바락발악을하고있었다

모두가꿈을꾸고있는지도모르고있었다

날개가 너무 무거웠다.“

( “ 꿈” 전문)

장주의 “나비 꿈”처럼 훌쩍 날아간 팔십평생,

시를 잡고 시의 수인이 되어 꿈처럼 살았던 시인의 지난 세월이 눈물겹다.

그러나 꿈이 있었기에 힘든 길이어도 시인은 50여년을 걸어왔고 지금도

그 길을 걷고 있다. 꿈이 있는 한 그에게 절대로 실패는 없다. 한 편의 빼어난

시를 얻기 위한 그의 꿈은 반드시 이루어 질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니 이미 이루어졌다! 다만 시인이 걸아가야 할 길이 아직 남아있을 뿐이다.

시인이라는 명패를 수인처럼 달고 우이동에서 칩거하며 미치듯 발악하듯

하얀 백지위에 읽고, 생각하고, 쓰고, 고치고, 다시 써온 시력 50여년 ,

노 시인의 한 생이 아름답다. 이제 시인의 날개가 좀 가벼워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아름다운 창공을 훨훨 날아 다닐 수 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홍해리 시인의 서정시 한 편을 읽으며 끝내겠다.

허락없이(?) 빌려쓴 유산슬의 트로트 제목 “합정역 5번 출구”가

요즘 핫하다는데.....그 노래를 들으면서 “수유역 8번 출구”에 가보자

“ 바람 부는 날

나 역에 나가 그대를 맞으리라.

수유역 8번 출구

그대를 처음 만난 곳.

사람들이 물밀 듯이 몰려 나오는데

그대는 보이지 않네.

한 계절이 그렇게 흐르고

한 해가 저물고 있는데,

눈도 내리지 않고

바람만 부는 한낮.

나 그곳에 나가

무작정 기다리네.

바람은 그날처럼 불어오는데

그대는 오지를 않네.“

(“수유역 8번 출구” 부분)

아름다운 서정시 한 편이 시론으로 팽팽했던 내 긴장을 누그러뜨린다.

시인은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가?

오늘도 시인이 기다리고 있는 천상의 여인이여, 시의 반려여 가까이 오시길,

바람부는 날 하염없이 나는 그대를 기다리고 있나니....

마음이 쓸쓸할 때 <수유역 8번출구>에 가자.

내려서 우리시회 아지트인 “시수헌”에 들르자.

그곳에서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 한바탕 질펀하게 놀아보자....ㅎㅎㅎ

♣출처: 홍해리 시인의 신간 시집 <정곡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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