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한 세상
홍 해 리
내가 이제까지 살아온 것이
다 네 덕이었구나 하는 걸
이제사 깨닫다니,
세상 어지럽고 흔들린 것이
다 내 탓이었음을
이제서야 알아채니,
미안하구나,
참으로 한심하구나
바보는 바보로 살아야 하느니,
바보가 현인이 되겠는가
바보는 그냥 바보로 살고
현인은 현인으로 살면 되느니!
<시작 노트>
한때는 시를 깎고 또 깎고 벗기고 또 벗기려 들었다. 이제 나이 들고 보니 내가 쓰는 시가 덤덤하고 담담하고
막막하고 먹먹하기 그지없다. 맛도 없고 멋도 없다. 그저 두루뭉술하다. 나이 탓인가 하고 내가 내게 묻곤 한다.
이 「편한 세상」도 그렇다. 시는 가장 인간적이고 자연에 가까운 언어로 쌓은 탑이다. 편하게 살다 가자!
- 포켓프레스신문 2023. 08. 23.
전선용의 그림에 부쳐
洪海里(시인)
전선용은 시인이다. 시인이라고 그림을 그리지 말란 법도 없고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이 전혀 이상할 것도 없다. 시인으로서
그림도 못 그리고 글씨도 시원찮은 것이 부끄러운 일이다.
예로부터 시서화 삼절詩書畵三絶이란 말이 있지 않은가!
나는 임전林田의 그림을 보며 동파東坡가 시불詩佛이라 불린
왕유王維의 시를 보고 한 말을 떠올린다.
바로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詩中有畵
畵中有詩]라는 말! 이 얼마나 멋진 표현인가!
어디 이뿐인가! 강희안의 그림을 보고 '시는 소리 있는 그림이요,
그림은 소리 없는 시'[詩爲有聲畵 畵乃無聲詩]라고 조선
초의 시인이었던 성간成侃이 한 이 말은 또 어떤가!
이와 같이 예로부터 시와 그림을 따로 보지 않고 하나라 여긴
까닭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면서 林田의 그림을 감상하는 것도
2020년 새해에 우리가 누릴 수 있는 큰 복이 아닌가.
그의 붓에 날개가 돋기를 기원하면서 남의 말을 따다 축하의
말씀으로 삼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