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무교동武橋洞』1976

<시> 무교동 11

洪 海 里 2005. 11. 7. 16:39

 

무교동 ·11

 

홍해리(洪海里)
 

혼자 걸어도 하나
둘이 달려도 하나
밀려가며 뒤를 보면
보이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한길에 이는 먼지와
누런 구름장의 교접으로
천의 방언을 지껄이며 내리는 빗소리
비어 있는 귀로 달려가는
병든 말의 갈기가
진달래 피는 여자들의 입술에 타고
굳을대로 굳어 싸늘한 혓바닥으로
밀리는 사람들의 허전한 물결.

불타는 도시의 사지마다
흐물거리는 그림자와
둥둥 떠밀려 사라지는 철이른 나뭇잎
향방없는 폭풍우에 정처를 잃고
젖빛 유리창에 와 소리치는
금속성 발자국들의 해일
부산한 밀림의 안타까움을
가슴마다 가득히 안고
가장 외진 곳에서 만나는 우리의 섹스
마른 꽃대궁에 걸려 펄럭이고 있는
젖은 깃발의 찢긴 꽃이파리
하늘 가득히 나부끼고 있다.

 

- 시집『武橋洞』(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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