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무교동武橋洞』1976

<시> 무교동 9

洪 海 里 2005. 11. 7. 16:37

 

무교동 ·9

 

홍해리(洪海里)
 

해가 지고
달빛에 익사하는
살아 있는 모래알들
백색 깃발을 흔들며
젖어 있는 모래알들.

모래알이 모래알과 얼리는
그 속에서도
우리들의 눈은 황홀하고
우리들의 귀는 뜨겁고 맵다.

살 있는 것
피 있는 것
모두 버리고
비인 것만 가득 우리들의 것.

가는 것을 가게 두고
오는 것을 오게 두고
기다려도 기다려도
전신으로 덮이는 구름장.

빗소리가 몰리는
자갈밭으로
푸른 풀밭을 밟고 온
바람소리가 가고
우리들의 귀도 그 뒤를 쫓고 있다.

낙엽을 밟던 더운 발들이
싸늘한 도시의 변두리
길가 간이주점의 포장을 펄럭이고
사내들은 어둠이 되었다
이내 불꽃으로 피어오른다.

무차별 폭격을 감행하는
불의 사내들
불이 오를 때마다
먼 데서 우는 여자들의 울음소리
사내들의 황홀함을 위하여,

초조와 불안과 우울로
창밖에 눈발은 날려 쌓이고
진눈깨비속으로
한 해가 지고 있다
한 해를 몰고 왔다
한 해를 끌고 가는
천의무봉인 절대자의 휘파람소리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 시집『武橋洞』(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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