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무교동武橋洞』1976

<시> 무교동 15

洪 海 里 2005. 11. 7. 16:42

 

무교동 ·15

 

홍해리(洪海里)
 

대한민국의 자궁
서울의 클리토리스.

하늘로부터 낙낙히 나부끼는
천의 만의 꽃잎들
하늘의 하얀 깃발들
푸른 목덜미를 내놓은 채
낮의 미로를 헤매이다
밤의 절벽으로
음산한 침묵을 깨며 내려 앉는다
내려 앉는다
창백한 웃음소리들.

잠자리 날개같은 하루살이들이
차가운 안개에 싸여
히히히 히히히 히히덕거리며
자유! 정의! 평화! 하며 내리는
무수한 천상의 축복의 메시지
젊음의 텍스트를
민주주의의 오르가즘을 위하여
문을 열고 맞는 미명의 새벽바람.

주홍빛 찬란한 허벅다리
농자색 유방으로
반짝이며 난무하는 조화의 화원
여자들은 마른 꽃으로 피어나고
사내들은 열심히 죽음을 연습한다
날이 새고 밤이 밝는다
거대한 도시
위대한 도시
빛의 충만을 위하여
끝없이 함몰하는 저 개미들의 땀과 피
별과 함께 늪 속으로 늪 속으로.

벌거숭이 강철과 불빛과
미궁속에서 암담하게 바스러지는
한 줌 꿈인 모래알들.

영원한 종말
영원한 시작을 위하여
불의 꿈, 물의 꿈, 바람의 꿈, 모래의 꿈, 소리의 꿈,
빛깔의 꿈, 사람의 꿈, 죽음의 꿈, 하늘의 꿈, 꿈의
꿈들을 싣고
바다로 바다로 달려가는
끝없는 한강줄기

물빛에 반짝이는 허공의 불빛
절망의 하얀 손들이
그 불빛을 잡고
허허로이 나부끼는 덧없는 깃발이 되어
하염없이 펄럭이고 있다
영원한 끝
새로운 출발을 위하여,

대한민국의 자궁
서울의 클리토리스
숱한 뉘우침을 만나
질긴 어둠이 되고 있다.

 

 * 처음 계획은 '무교동' 시리즈를 50편 정도 만들어 시집을 내려고 했으나 15편으로 끝내기로 했다. - 洪海里

 

- 시집『武橋洞』(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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