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대추꽃 초록빛』1987

<시> 능동과 수동

洪 海 里 2005. 11. 12. 02:21
능동과 수동 6
홍해리(洪海里)
 

흘러가는 강물을 따라 흐르면
거대한 다리를 감고 돌아 흘러서
얼마쯤 가면 우리 금으로 빛나랴
흘러온 것이 물소리뿐인가, 아아
빈 몸을 흔들며 가는 안개의 시간
뒤돌아보지도 않고 내처 흘러가
바다에 이르면 또 어디로 가나
아침 햇살에 놀라 몸을 떨면서
간밤의 짓거리를 지껄이는
너 열려 있음의 바다여
하늘을 떠받칠 듯 당당하던 수 억의 죽음을
한 손에 받아들고
백기를 든 말 탄 사내들이 재가 되어 떠도는
강철보다 강한 벽 밤의 지상에서
자동판매기같은 여자들은 스스로 빛나고
바닷속에 갈앉은 돌덩이만 침묵이다
말라빠진 혓바닥으로 핥고 핥던
이시대의 숨겨진 섬
그 기슭에 초록빛 깃발을 새로이 꽂고
얼어붙은 심장을 햇빛 속에 내어다 넌다
아아 잠들지 못하고 허공중에 떠도는
영원의 태반 같은 이 시대의 언어여
눈썹 사이 천년이 조을다 조을다 가도다.

           (진단시 9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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