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은자의 북』1992

<시> 가을 단상

洪 海 里 2005. 11. 23. 04:56
가을 단상
홍해리(洪海里)
 

한때는
오로지 올라가기 위해
올라서기 위하여
올라갔었지마는
이제는
그것이 꿈이 아니라
내려가는 일
아름답게 내려가는 일

산천초목마다
저렇듯 마지막 단장을 하고
황홀하게 불을 밝히니
하늘이 더 높고 화안하다
들녘의 계절도
무거운 고개를 대지의 가슴에 묻고
깊은 사색에 젖어
이제 우리 모두 우주의 잠에 들 때

맑게 울려오는 가락
천지 가득 퍼지고
잔잔히 번지는 저녁놀
들판의 허수아비를 감싸안는다

산자락 무덤가의 구절초도
시드는 향기로 한 해를 마감하고
그리고
과일이 달려 있던 자리마다
시간과 공간이 하나가 되니,

오르기 위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내려가기 위하여
아름답게 내려가기 위하여
깊이 깊이 껴안기 위하여
오르는 것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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