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문학평론> 민족시사의 소재 전통 재구에 헌신된 시정신 / 春香, 지게 : 김열규

洪 海 里 2005. 11. 29. 13:20
민족시사의 소재 전통 재구에 헌신된 시정신/김열규
ㅡ진단시 동인 제15시집 '춘향과 지게'에 부쳐서ㅡ
 

                           민족시사의 소재 전통 재구에 헌신된 시정신
                        ㅡ진단시동인 제15시집 '춘향과 지게'에 부쳐서ㅡ

                                                         김열규 (문학평론가·서강대 교수)

    1. 소재전통을 스스로 짐진 지게들
 소재를 미리 정해 놓고서 시작을 한다는 것은 스스로 멍에를 지고 길을 나서는 것과 진배없는 일인 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 입을 막아놓고 노래하려고 드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말하는 게 더 옳을 법도 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니, 입막고 노래하는 고역을 치르면서 이미 열네 권의 시집을 낸 것도 가당찮는 일인데 이제 거듭 또 한권의 시집을 내게 되다니 정말이지 어안이 벙벙해진다.
 소재를 미리 정해 놓고서 시작을 하게 되는 일이 고역일 수밖에 없는 사단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소재를 미리 매겨놓았기에 더 이상 소재 고르기에 마음을 안써도 되는 게 이를테면 상당한 정도 미리 점수를 따놓고 들어가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필경 자승자박이요, 자작지얼이란 것을 실감하게 되기 때문이다. 시는 특히 서정시는 걸음으로 치면 아무래도 정처없이 나선 흩은 걸음이지 정해진 경로를 밟는 발놀림으로 가는 걸음일 수는 없는 탓이다. 흩은 가락, 흩은 춤…… 말하자면 우리 예술의 한 극치인 저 유명한 散調를 더불어서 시는 역시 흩은 노래, 흩은 말이라야 하는 것이다.
 소재가 미리 정해지면 강압적으로 그것에 매이게 된다. 이것은 자명한 일이다. 싫어도 지어야 하고 노래해야 한다. 억지노래가 아름다울 턱이 없다는 것은 억지 춘향이란 말을 떠올릴 필요도 없이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다. 이번 시집이 춘향을 소재로 잡았을 때, 하마 벌써 억지춘향의 탄생이 예견된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이같이 강요된 시작, 굳이 비겨서, 말을 고쳐 하자면 학생들 숙제하듯이 해야 하는 시작이란 점이 소재가 미리 제약되었을 때의 어려움이다. 이것을 첫째 어려움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한데 둘째 어려움은 더더욱 심각하다. 『진단시』동인들이 골라내는 소재는 한결같이 이른 바 '전통소재', 바로 그것이다. 크게는 한국인의 문화전통이나 생활전통, 작게는 민속전통에 들 만한 것에서 『진단시』동인들은 굳이 소재를 캐내는 것이다. 한 나라의 문학사에 매우 굵고 단단한 소재 전통이 있기 마련인데 그중에서도 민족전통은 더 없이 심층적이고도 폭넓은 소재 전통을 이루게 된다. 그것은 문학적인 영감의 보고노릇을 하면서도 동시에 개개인 시인이며 작가들에게 심대한 압력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것이 곧 소재 전통이 지닌 두 개의 얼굴, 두 가지의 속성이다. 하도들 많이 다루었기 때문에 한다한 말, 허다한 사연을 이미 그것들을 두고 다 해왔기 때문에 그속을 헤집고 혼자만의 목소리로 노래하기가 쉽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래서 소재 전통은 영감의 수원지 노릇을 하면서도 거꾸로 시인의 목에 채워지는 항쇄 노릇도 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민족이 시인에게 건네는 선물이자 동시에 지극한 짐이다. 
  민족의 무게, 겨레의 짐을 견뎌내는 힘 그 자체로서 지게와 동화된, 강한 자의식이 진단시 동인들에게는 용틀임을 하거나 아니면 꿈틀대고 있거나 하는 듯이 느껴지는 것이다. 그렇다. 이번의 새 시집을 위한 소재로서 동인들이 「지게」를 고른 것은 그 동안 그들이 해온 작업을 생각하게 될 적에 우연한 선택이었다고 말하긴 어려울 것 같다. 
  무엇보다도 그들이 전통적인 소재를 무겁게 짐지는 것으로 시작의 단서를 삼아왔다는 것만 보아도 알 일이다. 그들은 민족적 전통, 민족문화의 소재 전통을 힘겹게 지고 견뎌낸, 그리하여 '민족의 살아 있는 혼으로 남아 있는 지게' 바로 그것이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것을 머뭇댈 아무 이유도 그들에게서 찾을 수 없다. 그들은 민족문학의 소재 전통을 스스로 짐지고 나르고 그리고 마침내 부려 놓는 지게꾼 동인들이었던 셈이다.

    2.민족적인 집단무의식이 일군 공감
  바로 이 점에서 이들 진단시 동인의 강한 개성을 미루어 헤아리게 되어 있는 것이지만 그들은 용케도 소재 전통이 주는 그 선물성과 짐스러움의 양극을 슬기롭게 조화시킨 것이라고 칭송해도 좋으리라 여겨진다. 이같이 둘째 난점이 극복되었을 때, 그들이 첫째 난관을 용케 헤집고 나왔다는 것을 더불어서 말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은 소재의 사전 제약이 오히려 동인들을 구심점을 향해서 수렴케 하면서 동시에 그 구심점에서 마치 잘 익은 술이듯이 발효하게 만들기도 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이를테면 민족적 집단무의식이라고나 부를 그들 무의식의 사뭇 깊은 심층에서 끈적대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음을 증거대고 있는 것이라고 보고 싶다.
   산 속 깊은 웅덩이 바닥에 용이 도사리고 있듯이 그들 의식의 깊은 웅덩이 속에 무의식의 시적인 영감이 동인스럽게 서려 있는 것이다. 한국인의 전통적 정서, 핏줄이듯이 내림으로 물려 받았을 시적 서정에 스스로 헌신코자 다짐했을 그들로서는 으례 길러두어야 할 용 한 마리를 길러낸 것이라고 말해도 좋다. 말하자면 소재의 제약은 그들이 기왕에 나누어 가지고 있었을 민족적 무의식의 심지에 불지르는 한 가닥의 불씨로 작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소재가 사전에 한정되는 창작행위에 위에서 든 어려움, 그 두 가지의 어려움만이 걸림돌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과 맺어져 있으면서도 좀 차원이 다른 셋째 어려움이 그들의 발목을 휘어잡고자 덤비게 되는 것이다. 가령 진단시 동인이 선택한 소재는 두 가지로 가름될 수 있다. 하나는 '춘향', '지게', '꽃상여' 등과 같은 '풋소재'다.
   앞의 무리는 이미 문학(전설이나 민요 등 이른바 구술전승까지 포함한) 속에서 자라나서 전해지고 있는 소재고 뒤의 무리는 그렇지 못한 소재들이다. 전자는 이미 문학에서  그들대로의 어엿한 전통을 이루고 있는 만큼, 그 소재에 도전하는 작가 시인에게 발판을 제공하면서도 함께 막중한 억압을 가하게 된다. 그것이 도전하는 작가 시인에 의해서 새로이 환골탈태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가령, 구라파문학사에서 이른바 파우스트의 소재 전통이 이어져 왔지만 그 소재사의 길고 긴 산맥 속에서 그나마 제 고개를 내밀고 솟은 작품이 얼마나 되는지 따져보면 사정을 헤아리게 되리라 믿는다.
이와는 달리, 풋소재는 미개척의 황무지로서 시인 작가의 삽이 들여놓아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어서 여기에도 예사 난관이 버티고 있는게 아님을 눈치채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풋소재는 비록 문학세계에서는 아직 모습을 드러내놓지 않은 신선한 것이라고는 해도 한 민족이나 집단의 생활 및 그 전통이 거기 달라붙게 만든 시대며 세월의 때며 찌꺼기가 매우 두터운 켜를 이루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게만 해도 그렇다. 지게에 짐 지워져 있을, 보이지 않는 전통의 무게, 세월의 앙금, 민족생활의 침전물이 지게 위에는 산더미처럼 덧쌓여져 있을 게 뻔하다. 지게 그 자체가 이미 시인들에게 허리가 휘기 마련인 커다란 짐이다.

     3.역사적 지층의 융합
   이같이 익은 것은 익은 것대로 풋것은 풋것대로 시인의 도전을 기다리고 있다. 시인 자신이 먼저 건넨 도전에 소재가 다시 한번 더 도전해오는 것이다. 익은 소재의 경우에는 문학사 전체가 시인에게 막중한 압력을 가해 올 것이고 풋소재의 경우에는 한 겨레의 생활사 전체가 대단한 중압감을 가해올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경우에나 시인은 자신의 주제, 자신의 형식, 시적 의장으로 이들에 도전해야 한다. 그리하여 소재사의 숲속에서 비로소 한 시인은 제 몫의 빛을 발하게 된다. 그 결과 소재 제약은 소재 제약이 없는 경우보다 역으로 시인의 창조성에 대한 더더욱 빛나는 시금석이 되는 것이다.
   소재에 대한 시인의 도전, 그것을 위해서 시인은 그가 딸린 시대와 역사를 등에 지고는 소재가 이미 짐 지고 있는 역사의 유구한 역사의 켜와 시대의 연륜과의 사이에서 대화의 넓으나 넓은 지평을 열어야 한다. 그리하여 그것은 역사와 역사의 응답이 되고 시대와 시대의 교감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만 그럴 경우에 시인은 이들 교감과 응답을 위한 촉매가 되고 때로는 영매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태어난 작품은 시인에 의해서 포태된 시대와 시대가 교응하는 소리, 묵은 시대가 새로이 떨치고 되살아나는 기척, 거듭나는 전률할 만한 울림이 된다. 그때 시인은 민족의 입, 겨레의 입으로 자처해도 좋다.
   한 시인을 통해서 시대와 시대, 그리고 역사와 역사가 맞물리는 가열한 현장이 곧 진단시 동인임이 드러날 때, 우리들은 소재가 제약됨으로써 시인에게 부하될 세 번째 짐, 제3의 난관을 지적하게 된다. 그들은 혼자서 시 쓰는 순간일지라도 결코 혼자 있지 않다. 그 순간 그들이 놀리고 있는 붓자루, 펜은 외짝이 아니다. 역사와 역사의 교감, 시대와 시대의 교응, 전통과 오늘이 맞물리는 사나운 물살, 그리고 무엇보다 민족의 집단적인 무의식을 다시금 되울리게 하여야 할 웅장한 종치기, 종울림----이런 시공에서 진단시 동인은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4.고쳐 써질 문학사를 기다리며
 죽어서도 차마 저승을 못가고는 이승을 헤매면서 살아 생전에 맺혔던 일들을 넋들이 털어놓는 게 다름 아닌 넋두리다. 그건 삶의 심층에까지 박혀 있는 근원적인 상처, 마음의 상흔이 엮어가는 사연이다. 지극한 아픔의 사설, 아니리가 곧 넋두리다. 무당은 넋두리를 받아서 죽어간 영혼을 구제하고 더불어서 망자와 아픔을 나누어 가지고 있는 살아남은 자들의 넋을 구제한다. 상처를 풀어서 상처를 다스리고 낫게 하는, 우리들 한국인의 가장 지극한 언어 그것을 우리들은 넋두리라고 불러들 왔다. 그렇다. 『진단시』동인들의 작품은 겨레의 근원이, 민족의 뿌리가 오늘에 부르는 넋두리다. 어제의 상처가 오늘을 살고 있는 상처와 만나서 일구어내는 심흔의 메아리로서 이들을 노래한다.

    해종일
    진달래 타는 구비구비
    먼 고향집

    싸릿문 들어서면
    댓돌 옆
    놋요강 위로

    저녁놀처럼
    스러지는 
    할아버지 기침소리
 
    구멍난 
    검정 고무신
    미끄러지며

    알구지에 
    작대기 맞춰
    서 있던 너의

    등태 뒤에 꽂힌 
    녹슨 조선낫 
    하나

    장가 못간 노총각 
    넋두리
    구성진 가락

    지겟가지에
    검정구름 한 짐
    근심바람 한 짐 지고

    헛간에 선 채
    밀삐는 끊어지고
    꼬리는 삭아내려

    흙벽에 기대어
    서 있다 너는
    늙은 철학자처럼.

                   ---홍해리의 「지게」전문

   그러니까 동인들 전체의 추세로 보아서 이들은 귀향을 하되, 민족의 짙으나 짙은 상흔에로 회귀한다. 그리고 그 상흔의 입을 빌어서 이들은 넋두리를 펼쳐놓는 것이다. 이것을 아주 줄여서 민족의 原像, 겨레의 根像에로의 회귀라고 불러두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러면서 이들은 민족의 원형적 심성, 겨레의 원형적인 시정신에로 귀향한다.

   
 한 민족의 문학사는 그것이 지닌 몇 가닥의 통시적인 축으로써 이루어지기 마련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말하자면 대들보격인 축의 하나는 아무래도 이른 바 '소재 전통'이 차지하게 된다. 『진단시』동인들이 줄곧 다루어 온 시의 소재 치고 민족적인 소재 전통에 속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 열다섯 권의 시집에 이르도록 이들은 줄곧 그같은 소재 전통만을 전적으로 다루어왔다. 하나의 민족문학사가 소재 전통의 축을 따라서 비로소 온전하게 엮어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게 된다면 『진단시』동인이 추구해온 시 작업의 문학사적인 의의가 단박에 알아 차려지리라 믿는다. 실제로 이들은 민족문학사의 저류를 꿰뚫고 흐르는 가장 굵은 흐름을 줄기차게 일구어온 것이다.
 그것은 이들 동인을 기다려서 비로소 고쳐 써져야 마땅한 민족 문학사가 있기 마련이라는 것에 대해서 강력하게 시사하게 된다. 언젠가 고쳐 써진 문학사가 있게 되리라는 믿음을 『진단시』동인들과 나누어 가지는 것으로 끝맺음을 가름할까 한다. 

                                                     『現代詩와 傳統意識』(문학예술.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