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문학평론> 삼국유사와 현대시 - 서동요 / 송정란

洪 海 里 2005. 12. 5. 05:53
삼국유사와 현대시
- 薯童謠
송 정 란
⑶ 진단시 동인의 시적 변용

「진단시」 동인은 우리나라의 동인들 중 드물게도 우리 정신에 대한 전통에의 천착에 주력해 왔다. 「진단시」의 두드러진 특질은 1982년부터 시작된 테마시의 제작으로, 매호마다 공동의 테마를 내걸고 동인 전체가 개성적이고 창조적인 작업에 임해 왔다. 테마시란 우리의 역사·전통·민속 등의 특징적인 사물이나 작품, 유물 등을 글감으로 제시하고 이를 재평가·재해석하는 방식이다. 사화집 1집부터 서동, 수로부인, 온달, 백결선생 등 설화적인 것과 동동, 배비장, 정읍사, 놀부, 춘향 등 고전과 연관된 것, 도깨비, 말뚝이, 서낭당, 꽃상여, 장승, 피리, 지게, 등잔 등 토속적인 것을 제재로 가리고 작품화한 것이다. 진단시 동인이었던 임보는 테마시가 “우리의 전통 문화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여 한국 현대시 속에 우리 정신을 심으려는 의도로 시도”82)된 것임을 밝히고 있다.
진단시 동인은 권천학, 김규화, 문효치, 박진환, 신규호, 임보, 정의홍, 홍해리 등으로 출발하여 후에 유승우, 이용주, 장순금 등이 가세하였다. 진단시 동인의 테마시 중에서 ‘서동’을 테마로 한 작품을 비교하도록 하며, 이에 앞서 서동설화를 살펴본다.
서동은 「武王」83) 설화의 주인공으로 선화공주와의 사랑 이야기로 민간에 잘 알려져 있는 민담적 요소가 강한 설화이다. 설화를 세 단락으로 나누어 보면, 첫째 단락에서는 서동은 과부인 그의 어머니가 池龍과 관계해서 태어났으며, 재주가 뛰어나고 넓은 도량을 갖추었으며, 후에 백제 제30대 임금인 무왕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제왕의 기이한 탄생을 알리는 신화적 요소가 강하다고 할 수 있다. 둘째 단락은 서동이 진평왕의 셋째딸 선화의 아름다움에 대한 소문을 듣고 서라벌로 가 동네아이들에게 노래를 지어 부르게 했으며, 향가 「서동요」가 삽입되어 있다. 노래가 장안에 퍼져 선화는 쫓겨나 서동과 함께 살게 되었고, 선화가 가져온 금을 보고 서동은 마를 캐던 곳에서 많은 금을 캐어내 용화산 사자사의 지명법사의 신통력으로 그것을 진평왕에게 보낸다는 이야기로 민담적 요소가 들어 있다. 셋째 단락은 무왕과 왕비가 용화산 못가에서 미륵삼존을 만났는데 왕비가 그곳에 절을 세울 것을 청하여, 지명법사가 신통력으로 하룻밤 동안 못을 메우고 미륵삼존상과 탑 등을 세워 그곳을 미륵사라고 이름지었다. 이것은 불교적 신비 체험과 미륵사 창건 연기설화로 볼 수 있다.84)
「무왕」 설화의 현대문학에서의 수용은 주로 두번째 단락인 서동과 선화의 사랑에 얽힌 이야기와 향가 「서동요」가 그 대상이 되고 있다.

善花公主님은 남몰래
밤마다 서동을 안고 간다네.

眞平王의 진노도 지엄함도 사위스러움도
百濟의 창칼 아닌 사랑은 막지 못했지
푸른 달빛 치맛자락으로 말며
쫓겨난 善花를
가슴넓은 百濟의 薯童이 맞으니
悲戀의 公主 王妃 되셨지.

그러니까 천오백여 년 전의 로맨스
예나 지금이나 사랑은 하나인 것을
分斷의 아픔으로 우는 사랑은
西曆 이천 년에도 이루어지지 못할
오늘의 아픔일레
노래 아닌 울음일레.
―박진환, 「薯童」 일부

「서동요」는 “선화공주님은/ 남 그윽히 얼어두고/ 맛둥방을/ 밤에 몰래 안고 가다.”라는 가사로 되어 있는데, 박진환은 「서동요」를 인유하면서 서동과 선화의 사랑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신라의 진평왕이 백제의 창칼은 막을 수 있어도 사랑은 막을 수 없었다며, 국경을 넘어선 젊은이들의 고귀한 사랑을 찬양하고 있다. 그러나 이 “천오백여 년 전의 로맨스”는 지금이나 옛날이나 마찬가지로 어떠한 역경을 딛고서라도 이루어질 수 있는데, 남과 북으로 갈라진 우리의 분단은 이루어지지 못하는 사랑의 아픔처럼 남아 있다며, 설화의 의미를 확장시키고 있다. 국경조차 넘어서 하나가 된 남과 여의 아름다운 사랑을 통해, 박진환은 나라가 둘로 갈라진 우리의 역사적 현실에까지 상상력을 뻗쳐 시화하고 있다.

前生의 질긴 인연이 玉빛으로 살아나
흘러들어오는 강물에
무수히 꽃피어 흐르는 그대의 얼굴.

그대의 알몸을 안고
내 마음으로 들 때
감자밭은 황금의 동굴이 되고,

숲에서 바다에서
일제히 머리 들고 일어서는 빛,
풍장 치며 날으는 빛
―문효치, 「薯童의 기쁨」 일부

물의 보편적 이미지는 시간의 흐름, 그리고 영속성이다. 문효치는 두 사람의 사랑이 전생으로부터 이어져온 운명적인 것으로 해석하고, 그것을 “옥빛으로 살아나 흘러들어오는” 강물의 이미지로 치환하고 있다. 그 사랑은 육체적인 것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이 더 크기에 “그대의 알몸을” 나의 육체로서 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으로” 안는 것이다. 그것은 “숲에서 바다에서 일제히 머리 들고 일어서는 빛”처럼 온천지가 감응하는 환희로 돌아온다. 누구든지 그토록 열망하던 사랑이 이루어졌다면, 온세상이 자신의 것이 된 듯한 기쁨을 느낄 것이다. 서동이 그토록 사모하던 선화와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순간을 문효치는 서정적인 표현으로 잘 드러내고 있다.

1. 城을 허물어 나라를 세우다(薯童의 일기)

하늘로 오르는 용의 잔등을
타고 오르다.
황토 물살 거센 강줄기에서
몸 일으키는
견고한 城.

모래가 자라 돌이 되고
돌이 다듬어 城을 이루다.
…중략…

푸르게 물든 풀잎을 엮어
무성한 소문의 벽을 뛰어넘고
밤마다 야망의 긴 자락을 끌고 국경의 발치로 내려서다.
―권천학, 「서동이랑 선화랑」 일부

권천학의 시는 3편의 연작시로, 인용시 1편과 2편의 「아름다운 집(선화의 일기)」, 3편의 「사랑의 나라」로 구성되어 있다. 연작시 1편에서는 서동의 출생과 왕위에 오른 일, 선화를 얻기 위해 서라벌로 간 이야기를 형상화하고 있다. 연작시 2에서는 선화가 서동의 아내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연작시 3에서는 두 사람이 국경을 허물고 사랑의 나라를 세운 것으로 끝을 맺고 있다. 이것은 「무왕」 설화의 첫번째와 두번째 서사 단락을 차용하고 있다. 인용시를 분석하면, 1연은 용이 하늘로 승천하면서 “견고한 성”이 강물에서 몸을 일으키고 있다. 무왕의 태생설화는 과부가 池龍과 관계해서 태어난 자식으로, 시의 문맥상 견고한 ‘성’은 바로 서동을 가리킴을 알 수 있다. 2연에서는 모래를 돌이 되도록 자신을 단련시켜 성을 쌓는 즉, 서동이 왕위에 오를 때까지 무수한 역경과 고난이 뒤따랐음을 암시한다. 인용된 시의 마지막 부분에서 서동은 선화의 소문을 듣고 서라벌로 향하고 있다. 권천학은 서동을 순수한 로맨티스트로 그려낸 문효치와는 달리, 왕이 되려는 야심을 품고 있으며 선화를 차지하기 위해 밤마다 야망의 발걸음을 서라벌로 돌리는 인물로 해석하고 있다. 권천학의 연작시 1편의 서동은 권력지향적이고 공격적이다. 이에 비해 연작시 2편의 선화는 성이 아닌 ‘아름다운 집’으로 자신의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여 “성의 뿌리에 깊이 스며”드는 나약하고 순응적인 여성이다. 연작시 3편에서 선화와의 사랑을 이룸으로써 서동은 또 하나의 성(신라)에 대해 자신의 성(백제)을 견고하게 쌓기보다 그것을 허물어버리고 사랑의 나라를 세운다는 것이다. 서동의 강력한 야심이 선화의 사랑에 의해 화해와 평화의 결말을 맺고 있다.

천오백 년도 넘은 그날
나는 미꾸라지처럼 물을 타고 올라가
까마득한 세월의 어둠 속
저녁 무렵의 서동을 만난다.

희미한 옛마을의 저녁
갓벗은 소년, 서동 왕자는
아직도 소년같이 고구마나 구우며
구워내는 고구마에 손도 태우며,
…중략…

까마득한 세월의 그쪽이니
고구마나 구워서, 사위스런 노래나 지어서
求婚한 서동이여

숯검정도 묻은 고구마같은 서동이여
깜깜한 우리 선조여
―김규화, 「薯童이여」 일부

위의 인용시는 처음부터 시인이 직접 시의 화자로 등장하여 시적 담론을 이끌어가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시인의 눈에는 “사위스런 노래나 지어서” 구혼하는 서동의 천진난만한 사랑법이 안쓰럽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시의 초점도 서동이 고구마를 구워 아이들에게 먹이며 서동요를 부르게 하는 사건에 맞추어져 있다. 그리고 숯검정 묻은 고구마처럼 구혼의 방법에 대해 깜깜한, 기껏 동네 아이들을 불러모아 서동요나 부르게 하면서 사랑을 기다리는 서동이 바로 “우리의 선조”들의 모습이라는 데까지 시적 진술을 확장시키고 있다. 김규화는 왜 사랑법에 서툰 서동에 초점을 맞추어 그 순박하고 어리석은 행동을 질책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현대인이 잃어버린 순수한 사랑에의 갈망을 역설적으로 표현해 내고자 한 것이다.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현대인의 사랑에 비해 우리 선조들의 사랑은 우직하고 충실한 것이었다. 그러기에 시인은 선량하고 행복한 삶을 살았던 우리 민족의 원형적 모습을 그리워하며, 서동 설화를 통해 이를 복원하고자 한 것이다.

메마른 서울의 골짜기에서
내가 오늘 캘 수 있는 건 무어냐
…중략…

등뒤를 따르며 노래부르던
아이들도 떠나고

굴렁쇠를 버리고 저자거리로
모두 떠나버리고

아스팔트 위에 혼자 남아
낡은 스프링처럼 구겨지는데
그대에게 마지막 무슨 연가를
지어 바칠 수 있을까
…중략…

내 한번 뽑아 부르면
그대서껀 모두 무너져 내릴

번쩍이는 노랫말은
없을까, 그대여.
―신규호, 「新薯童謠」 일부

인용시의 제목이 「신서동요」이듯 신규호의 서동요의 시·공간적 배경은 현재, 서울이다. 시인이 살고 있는 서울의 현실은 천오백 년 전 백제와는 달리 노래를 부르거나 굴렁쇠를 굴리는 아이들도 없다. 낭만이라고는 아무 데도 찾을 수 없다. 아스팔트를 굴러다니는 낡은 스프링처럼 그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한 채 외롭고 쓸쓸한 존재로 살아가야 한다. 서동이 캐었던 마와 같은 순수한 낭만을 잃어버린 각박한 마음은 연인을 위해 노래를 지어 바칠 여유가 없는 것이다. 신규호는 순수한 사랑을 잃어버린 현실의 세태를 안타까워하면서, 이를 다시 ‘시’에 대입시키고 있다. 서울의 삶은 시인의 정서를 메마르게 하고 엄동설한과 같이 마음을 얼어붙게 한다. 순수와 낭만을 잃어버린 영혼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는 시를 창조해 내지 못한다. 신규호는 「신서동요」를 통해 서울의 각박한 세태와 메마른 시인의 정서를 함께 경계하고자 하는 시적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나의 귀에
봄비가 시린 발자욱을 놓고 가듯
그렇게 한 톨의 웃음이라도
놓고 간다면
목구멍에 뼈마디에
양심의 가시 하나 걸리지 않고
그대를 앗을 수도 있지만
지금은 봄이 와도 봄일 수 없어
가장 인간적인 것이
그리운 때.

개가 짖는다 한낮에도
도둑이 싫어서 그것이 싫어서,
우간다의 某氏같이 목적을 위해
또 누구같이 그것을 위해
선량한 戀敵을 짓밟아버리고도
부끄럼 모르는 권력처럼 서서
그대를 앗을 수도 있지만,
―정의홍, 「薯童의 말」 일부

정의홍은 ‘서동’이라는 테마와의 거리를 가장 멀리 두고 있다. ‘봄비’, ‘양심의 가시’, ‘개’, ‘우간다의 모씨’(독재자), ‘선량한 연적’, ‘부끄럼 모르는 권력’ 등 이해하기 어려운 기호들로 가득차 있다. 이 기호들 중에서 시의 해석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기호를 선택하자면, 양심과 권력, 두 가지로 압축시킬 수 있다. 서동과 선화의 관계를 남자와 여자의 사랑의 역학 관계로 보지 않고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로 파악한 것이다. 서동은 설화에서처럼 선화의 사랑을 얻기 위해 온갖 노력과 정성을 다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권력 혹은 폭력의 힘을 빌어 단숨에 선화를 차지하려는 존재이다. 밝은 대낮(평화, 안정)에도 아무런 부끄럼없이 피지배자의 모든 것을 훔쳐가는 도둑(지배자)은 아무리 개가 짖어도 끄떡도 하지 않는다. “봄이 와도 봄일 수 없”는 이러한 현실에서 선화를 빼앗더라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가 없다. 그러나 시인은 “가장 인간적인 그리운 때”임을 자각하고 그러한 시대적 조류에 영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봄비가 시린 발자욱이나마 한 톨의 웃음(희망)을 주고 있으며, 곧 꽃들이 만개할 따듯한 봄이 돌아올 것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는 서동과 선화의 사랑이 사회적, 역사적 의미로 확대되어 남성중심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억압으로 읽혀질 수 있으며, 독재자의 민중에 대한 압정으로도 알레고리화될 수 있다. 아름다운 여자를 빼앗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는 서구의 신화와는 달리, 서동은 가장 인간적이고 순수한 행동으로 자신의 사랑을 성취해 낸다. 정의홍은 신화의 세계가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 던져주는 참다운 행동의 전형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고 있다.

兄님,
열 일곱 이른 여름은
유난히도 출렁거렸지요.
…중략…

兄님은
한 이레 밤쯤 생각다가 드디어
잣나무 끝에 꽂힌
달을
부끄럽게 삼켰지요.

한 말의 마(薯)를 지고
떠나던
열 일곱
내 往十里 驛舍 위에도
그 달이
그렇게 와
걸렸데요.
―임보, 「薯童 兄님의 달」 일부

임보는 ‘서동’을 형님이라고 부르며 어미에 존칭어를 붙여 시적 진술을 시작하고 있다. 설화 속의 서동이라는 인물에 친근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삶을 먼저 살았던 먼 조상이라는 것보다는 서동과 시인은 같은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열입곱의 나이로 서동은 잣나무 끝에 꽂힌 달을 부끄럽게 삼켰다. ‘달’은 바로 선화를 비유한 것으로, 서동이 첫 동정을 잃은 것을 상징하고 있다. 시인 역시 열일곱 살 때 어떤 연유로 왕십리 역에서 새로운 출발을 기다리고 있다. 거기에서 시인은 첫경험을 했으며,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동정을 잃은 것이 아닌, 성인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를 치룬 것이 된다. 신화는 먼 옛날의 화석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출생과 사망, 결혼 등에 관련된 것들 등등 수없이 많이 있다. 의례는 끝없이 반복되어온 신화적 행위로서, 그 행위의 전형이 바로 원형(archetypes)인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마음은 그 개인의 역사를 가질 뿐만 아니라 인류문화의 최초의 단계로부터 남겨진 인류 공통의 심리적 유산을 잠재 의식 속에 이어받기 때문이다.”85) 서동이 선화와 결혼하고 난 후 임금의 자리에 오른 것처럼 임보는 첫경험이라는 원형적 통과의례를 거쳐 어른의 세계로 떠날 수 있는 있는 권리를 스스로에게 부여한 것이다.

3. 서울

6월이 오면
밤꽃이 흐드러지게 피지만
시멘트 철근의 숲은
개스에 젖어 있고
눈먼 하늘 아래
아래만 살아남은 뜨거운 사랑
순간 접착제
뻥 튀긴 강정
불꽃만 요란하고
식은 잿더미가 골목마다 쌓인다.
별이 뜨지 않는
서울의 거리
이제 사랑도 별볼일 없어라
찍어바르고
문지르고 두드려
저마다 몇 개의 탈을 쓰고
거리마다 서성댄다
소리의 집만 무성한 잡초덤불
깨어진 거울 조각이
시대의 흙 속에 묻힌다.
―홍해리 「서동요」 일부

홍해리의 연작시 「서동요」는 1편 「사랑」과 2편 「노래」에서 각각 설화 속의 사랑을 서정적이고 민요적 율격을 살려 찬미하고 있다. 그러나 인용된 시에서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오늘날 「서울」의 사랑 풍속도를 이야기하고 있다. 천년 전에 그러했듯이 해마다 6월이 되면 밤꽃(사랑의 감정)이 피지만, 육체적인 사랑만 순간 접착제나 뻥 튀긴 강정처럼 일회성으로 나누고 영혼의 결합은 쉽게 식은 잿더미로 버려지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사랑이란 신성한 행위는 삶의 공간에서 영원히 반복되는 것이지만, 현재 우리의 시대에는 깨어진 거울 조각처럼 별볼일 없는 것이다. 탈을 쓴 진실하지 못한 사랑이 판을 치며, 별(희망이나 낭만)이 없기에 사랑도 존재할 수 없다. 시인은 이러한 세태를 격렬하게 비판하며 각성을 촉구하려는 시적 의도를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지금까지 ‘서동’설화를 테마로 한 진단시 동인 8인의 시편들을 비교 분석해 보았다. 대부분의 시인들이 서동과 선화와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시화하고 있으나, 시인의 주관에 따른 굴절과 변모 과정은 다양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설화가 가지고 있는 서사적 메시지를 각 시인의 개성에 따라 다양하게 표출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와같이 『삼국유사』 설화를 테마로 한 진단시 동인의 성과는, 오늘의 삶의 결을 겨레의 공동체적 현장 속에서 상상하고 추적하고 있다는 점과, 한 편의 설화를 여러 명의 이 창작함으로써 그 속에서 총체적인 문학성을 드러내고 새로운 미적 가치와 균형을 얻을 수 있다는 데 있다.86) 설화의 재해석을 통해 새롭게 현대시로 태어난 옛이야기와 노래는 다양한 모습으로 변용되어, 고전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즐거운 시 감상을 우리들에게 함께 선사하고 있다.
 
 
 

薯童謠

 

洪 海 里

 

 

1
천의 아이들 입마다
불을 밝혀서

서라벌 고샅마다
밤을 밝히던

사랑 앞엔
국경도 총칼도 없어

오로지 타오르는
불꽃 있을 뿐

사랑도 그적이면
꽃이였어라.

2
사랑 앞에선
황금도 돌무더기
신라 천년
사랑 천년
그 언저리
노랫소리
들려요 들려요
그대 옆구리 간질이던
바람
아직도 가슴에 타고
서라벌 나무 이파리 
하나 
흔들리고 잇어요
고샅마다
아롱아롱 일어나는 
아지랑이
몽롱한 꿈자리
보여요 보여요.

3
6월이 오면
밤꽃이 흐드러지게 피지만
시멘트 철근의 숲은
오염에 젖어 있고
흐린 하늘 아래
아래만 살아남은 뜨거운 사랑
순간접착제
뻥튀긴 강정
불꽃만 요란하고
식은 잿더미가 골목마다 쌓인다
별이 뜨지 않는
매연의 거리
이제 사랑도 별볼일없어
찍어 바르고
문지르고 두드려
저마다 몇 개의 탈을 쓰고
거리마다 서성댄다
소리의 집만 무성한 잡초 덤불
깨어진 거울조각이
시대의 흙 속에 묻힌다.

(19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