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임보론> 映山紅과 꽃방석 - 林步의 시 「꽃방석」/洪海里

洪 海 里 2005. 12. 1. 06:49
映山紅과 꽃방석 -林步의 詩 「꽃방석」

洪 海 里


林步는 도사다. 그를 생각하면 깊은 산 속에 있는 암자가 떠오르고 유유자적하는 선풍이 불어온다. 그는 북이 있으면 북쟁이요 꽹과리가 있으면 상쇠가 된다. 개량 한복을 입고 곱새춤을 추는 것을 보면 영락없는 꼽추다. 어려서부터 젖어온 남도 가락의 멋이 시에도 배어 있지만 그는 노래를 부를 때 남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가락을 뽑는다. 자신의 목소리로 자기의 노래를 불러댄다. 정직하다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는 남의 노래를 잘 부르지 않는다. 자기의 노래라도 부를 때마다 곡조가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그 중에는 이미 주변에서도 흥얼흥얼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가 <꺼욱꺼욱>을 비롯해서 몇 곡이 된다.
요즈음은 서울과 청주 사이를 오명가명 차 안에서 테입으로 듣고 따라 부르다 보니 정지용의 <향수>와 박화목의 <보리밭>, 정태춘의 <북한강에서> 같은 노래도 제법이다. 그는 주말에서 주초까지는 우이동 집에서 식구들과 함께 살고 주중의 3일은 청주에서 혼자 떠돈다 (충북대 국문과 교수이기 때문에).
그러다 시간만 나면 차를 몰고 돌아다니며 유적지를 찾고 산천경개를 즐기다 보니 이제는 문화유산 답사기를 써도 몇 권은 될 것이다. 지금부터 4년전, 그러니까 1992년 봄날 어느 주말에 우이동의 술자리에서 그는 소설 한 권을 풀어놓았다. 어느 화창한 봄날 스산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어 무작정 동학사를 찾아갔더란다.
절길을 따라 오르며 봄 경치에 취해 길가에 있는 늙은 주모가 부친 빈대떡과 도토리묵 안주에 막걸리를 몇 말 걸쳤겠다. 이제 취흥도 일어 절집 마당으로 들어서다 시인은 눈을 감고 말았다. 집채 만한 영산홍 한 그루가 수천, 수만 송이의 붉은 꽃을 달고 서 있는데 마치 온 세상이 활활 타오르는 것 같았다.
꽃에 취해 그만 넋을 잃고 바라보던 그는 또 한 번 기절할 듯 놀라고 말았다. 영산홍 뒤켠에 숨어 있듯 서 있는 볼그레 얼굴을 붉힌 사미니를 보았던 것이다. 여자라면 손목밖에 못 잡아보고 口接 한 번 해본 적이 없는 이 순진무구한 만년 소년시인이 가슴방아만 찧고 말았겠다. 얼마나 황홀했겠는가. 저것이 사람인가, 아니면 부처님의 현신인가. 그는 죄를 짓는 것 같아 더 쳐다보지 못하고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 산길로 접어들었다.
얼마쯤 올라가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미진해서 다시 내려와 꽃 뒤에 숨어 있던 사미니를 찾았으나 그 자리에는 늙은 여승이 입이 찢어져라 웃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찌된 일인가. 이 무슨 조화 속이란 말인가. 허망하고 허망한지고! 그 예쁜 사미니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눈을 씻고 보고 또 봐도 아까 그 사미니는 보이지 않았다.
세상에 나를 기다려주는 것이 어디 있을까. 철석같이 믿고 있던 이 웃집 금분이, 은분이도 때가 되면 밤송이 벌듯 해서 알토란 같은 자식을 업고 나타나지 않던가.
이래서 그는 「映山紅」을 낳게 되었다.


東鶴寺 아랫절
吉祥庵 뜰에
흐드러진 영산홍
온 산천 태우는데
고놈보다 더 고운
沙彌尼 한 년
절문 뒤에 숨어서
웃고 섰다가
달려나온 돌부처에
귀 잽혀 가네.
ㅡ「映山紅」전문


낚시꾼의 손 끝에 짜릿짜릿하게 오는 손맛 같은 詩 「映山紅」의 시인은 순수 토종이다. 도와 선의 냄새도 난다. 교회의 집사이지만 서양 종교와는 거리가 먼 것 같다. 오히려 먹물옷과 노장의 바람맛도 난다. 남보다 늦은 나이에 시작했지만 우리 시의 운율 연구로 학위를 받은 것도 그의 시와 무관하지 않다. 「映山紅」도 7·5조의 운율이 그대로 살아 있어 편안하고 기름지게 읽혀지지 않는가.
여러분은 '姜宇'라는 성씨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그는 강우씨의 시조다. 두 딸과 두 아들의 이름을 강우 원진/원미/원일/원용이라고 지어주었다. 이 세상에 태어나 마침내 한 성씨의 시조가 된 것이다. 큰 딸 강우 원진의 우와 원을 빨리 읽으면 원이라고 한 자의 발음이 된다. 성명 4자를 3자로 부를 수 있는 묘미를 여기서도 살려준 것이다.
요즘 그는 짧은 시와 이야기가 담긴 설화시를 관심하고 있다. 짧아도 소설 한 권이 담겨 있는 시, 재미있는 시, 읽으면서 말의 힘과 시의 맛을 느끼게 하는 시를 그는 쓰고 있는 것이다. 그는 애면글면하지 않고 머리 속에, 가슴속에 품고 삭이던 것을 시원스레 꺼내 보여 준다. 때로는 야한 듯한 단어나 표현이 눈에 띄기도 하지만 저속한 허식성이 없어 오히려 생기가 도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개짐 같은 시가 아니라 맑고 야무져 빈 틈이 없는 결곡진 시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리라. 그는 언어를 달구고 두드려 언어 미학을 맛보게 하고 속의 숨은 뜻을 캐내는 재미를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東鶴寺 봄 골짝 吉祥庵 뜰에
映山紅 불붙었단 소문을 듣고
밤잠도 설치며 달려갔더니
지난밤 비바람에 꽃잎은 다 지고
꽃방석만 너댓 평 깔렸습디다
목탁소리 둬 자락만 감고 돕디다.
ㅡ「꽃방석」전문


그는 한때 수석에 미쳐서 오석 산지마다 바랑을 메고 쫓아다녀서 지금도 집 안팎에 돌천지를 이루고 있다. 그렇듯 무생명체에 몰입하여 무념의 대화를 나누던 그가 이제는 있는 그대로의 수석이요 아름다움인 자연에 빠져 있다. 그의 조용하고 관조하는 선비적인 풍모가 시편마다 배어나오고 있다. 선비라는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그는 첫시집 『林步의 詩들 <59-74>』를 상재한 후 폐업인지 휴업인지는 모르지만 여러 해 동안 침묵을 지켰다. 생활에 바빠서 그랬는지, 첫 시집 산고로 허탈해져 그랬는지, 그 사이 그는 사군자를 열심히 익혔고 붓글씨도 일가를 이루게 되었다.
그러다 그는 80년대부터 시를 열심히 토해내기 시작했다. 『山房動動』『木馬日記』『황소의 뿔』『은수달 사냥』 『날아가는 은빛 연못』 등이 이렇게 해서 나온 것들이다. 이야기가 갓길로 샜지만 작년 봄에 그는 知名의 思秋期를 맞았던 모양이다. 몇 년 전에 보았던 볼 붉은 사미니의 모습이 뇌리에 박혀 그는 영산홍이 필 날만 고대하고 있었다. 어렵사리 동학사 주지의 전화번호를 알아내어 떨리는 목소리로 그에게 문안을 올리고 꽃소식을 물었지만 주지의 대답은 아직 꽃은 필 생각도 않는다는 것이었다. 퇴근 후 저녁마다 전화통을 괴롭혔으나 대답은 하나같이 아직 멀었다였다. 며칠 밤을 앓던 그는 차를 몰고 봄바람을 탔다. 나는 듯이 동학사 길상암 뜰로 달려간 그의 눈에 띈 것은 꽃방석이었다.
꽃침대, 물침대, 돌침대, 흙침대가 판을 치는 요즘 세상에 그의 꽃방석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자연이 꽃을 떨구어 그에게 마련해준 이 황홀하기 그지없는 몇 평의 하늘방석! 그렇다. 우리가 사는 일이 다 그렇지 않던가? 무엇을 욕심내고 무엇을 얻으려 할 것인가? 다 부질없는 일. 헛된 탐욕이 있을 뿐 아니겠는가. 이제 돌부처에 귀잽혀 마음을 씻고 목탁소리로 빈 귀를 채워야하지 않겠는가? 올해도 어김없이 영산홍은 피려고 준비 중인데 그는 또 영산홍 귀신에 씌어 안달하며 며칠 밤, 밤을 날리고 가슴을 밝힐 것이다. 그러다 주말에 우이동으로 돌아오면 한잔술에 그의 십팔번 <꺼욱꺼욱>을 구슬프게 뽑아댈 것이다. 세상을 다 살아본 듯이, 초탈한 듯이, 탈속한 곡조로 우리들의 가슴을 촉촉히 적셔줄 것이다. 영산홍 꽃잎에 내리는 봄비처럼. 비바람에 떨어져 누워 꽃방석이 된 꽃잎의 노래처럼. 텅 빈 이들의 가슴에 가득 차는 절절한 바람처럼.


사랑 고백 같은 건 난 안 할 거야
한평생 묻어둔 걸 인제 해 뭘해
그 얘긴 그냥 품고 산천 갈 거야
동지 섣달 쌓인 눈 그거나 녹여
떠가는 까마귀 떼 불러 모을 거야
꺼욱꺼욱 꺼꺼욱 나도 꺼꺼욱
그렇게 나 숨어서 목이 쉴 거야.
-「꺼욱 꺼욱」전문 
- 월간 『현대시학』(1996년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