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
1797년 영국작가 메리 셸리 출생
과학자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시체의 뼈를 갈아 만든 신장 244cm의 ‘괴물’은 자신의 창조주를 저주하며 울부짖는다. “내 배우자를 만들어
내라!”
오늘날 ‘SF소설’의 원조로 꼽히는 ‘프랑켄슈타인’(1818년).
소설의 부제이기도 한 ‘현대의 프로메테우스’는 재앙이었다. 과학기술의 악몽이었다. 이미 산업혁명의 시기에 닥친 ‘과학의 공포’였다.
정작 원작은 거의 읽은 사람이 없다는 ‘프랑켄슈타인’. 그 작가는 놀랍게도(?) 여성이다.
메리 월스톤크래프트 고드윈 셸리! 이 긴 이름에는 혁명의 시대를 살았던 가족사가 고스란히 배어 있다.
메리 셸리는 급진적 사상가로 무정부주의를 설파했던 윌리엄 고드윈과 여성 해방론자였던 메리 월스톤크래프트 사이에서 태어났다. 남편은 바로 그
낭만파 시인 퍼시 셸리다.
근대 페미니즘의 토대가 되었던 ‘여권의 옹호’(1792년)를 썼던 어머니는 ‘반쪽뿐인 세계’에 저항했다. “나는 새로운 종(種)의 시조가
될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생전에 ‘치마를 두른 하이에나’로 비난받았다. 18세기가 지핀 자유의 불길은 오직 남성만을 비추고 있었다. “여성은 남성에
종속되어야 한다.”(로크)
그러한 시절에 ‘프랑켄슈타인’은 작가 메리에게 현실의 암울한 중력(重力)에서 벗어나 진보적 사상을 실험할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이었다.
1960년대에 이르러서야 이 소설은 ‘페미니스트 SF’로 읽힌다.
‘프랑켄슈타인’은 당대의 남성 신화에 대한 도전이었다. 서구문명의 남성주의에 대한 비판이었다. 여성의 잉태 없이 태어난 괴물은 여성의
존재를 지워버린 서구사회를 빗대고 있었다.
메리는 열여섯의 나이에 시인 셸리를 만났다. 그는 유부남이었으나 메리는 기꺼이 그의 정부(情婦)가 되었고, 부인이 자살하자 결혼했다.
그러나 모계(母系)의 불행은 대물림된다.
외할머니는 ‘매 맞는 아내’였고, 사생아를 출산해 손가락질을 받았던 어머니는 메리를 낳은 지 열흘 만에 죽었다.
메리는 네 자녀를 두었으나 셋을 일찍 잃었고 남편도 서른 되던 해 물에 빠져 숨진다.
“여성의 성공은 결국 자기 성(性)의 고유한 축복을 앗아간다”(칸트)고 했던가.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저주 받은 창조자여! 신은 자비심을 가지고 자신을 닮은 아름다운
인간을 만들었는데, 내 모습은 어찌 이리 추악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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