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海里 詩 다시 읽기

시집『봄, 벼락치다』의 詩 16편 다시 읽기

洪 海 里 2006. 8. 1. 11:00

<시집『봄, 벼락치다』의 詩 16편 다시 읽기>

 

아름다운 남루

 

洪 海 里


잘 썩은 진흙이 연꽃을 피워 올리듯
산수유나무의 남루가
저 눈부시게 아름다운 빛깔을 솟구치게 한
힘이었구나!
누더기 누더기 걸친 말라빠진 사지마다
하늘 가까운 곳에서부터
잘잘잘 피어나는 꽃숭어리
바글바글 끓어오르는 소리
노랗게 환청으로 들리는 봄날
보랏빛 빨간 열매들
늙은 어머니 젖꼭지처럼, 아직도
달랑, 침묵으로 매달려 있는
거대한 시멘트 아파트 화단
초라한 누옥 한 채
쓰러질 듯 서 있다.

이 막막한 봄날
누덕누덕 기운 남루가 아름답다.


 

 

 

연어 또는 동백꽃

- 우이시편 3


 


가고 싶다

연어처럼

혼인색 붉게 피워

개울 물만 들이지 말고,


지고 싶다

동백처럼

동박새 불러

산등성이만 울리지 말고,



꽃이 피면 지듯이

열매가 익으면 떨어지듯이.


 

 

 

지는 꽃에게 묻다



지는 게 아쉽다고 꽃대궁에 매달리지 마라

고개 뚝뚝 꺾어 그냥 떨어지는 꽃도 있잖니

지지 않는 꽃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피어나

과거로 가는 길 그리 가까웁게 끌고 가나니

너와의 거리가 멀어 더욱 잘 보이는 것이냐

먼 별빛도 짜장 아름답게 반짝이는 것이냐.

 

 

 

 

 

 

꽃나무 아래 서면 눈물나는 사랑아




꽃나무 아래 서면 눈이 슬픈 사람아
이 봄날 마음 둔 것들 눈독들이다
눈멀면 꽃 지고 상처도 사라지는가
욕하지 마라, 산것들 물오른다고
죽을 줄 모르고 달려오는 저 바람
마음도 주기 전 날아가 버리고 마니
네게 주는 눈길 쌓이면 무덤 되리라
꽃은 피어 온 세상 기가 넘쳐나지만
허기진 가난이면 또 어떻겠느냐
윤이월 달 아래 벙그는 저 빈 자궁들
제발 죄 받을 일이라도 있어야겠다
취하지 않는 파도가 하늘에 닿아
아무래도 혼자서는 못 마시겠네
꽃나무 아래 서면 눈물나는 사랑아.

 


 

 

소금쟁이



북한산 골짜기
산을 씻고 내려온 맑은 물
잠시,
머물며 가는 물마당
소금쟁이 한 마리
물 위를 젖다
뛰어다니다,
물속에 잠긴 산 그림자
껴안고 있는 긴 다리
진경산수
한 폭,

적멸의 여백.

 


 


逸脫


1
귀 눈 등 똥
말 멱 목 발
배 볼 뺨 뼈
살 샅 손 숨
씹 이 입 좆
침 코 턱 털
피 혀 힘---

몸인 나,
너를 버리는데 백년이 걸린다
그것이 한평생이다.

2
내가 물이고
꽃이고 불이다
흙이고 바람이고 빛이다.

그리움 사랑 기다림 미움 사라짐 외로움 기쁨 부끄러움 슬픔 노여움과 눈물과 꿈,

옷과 밥과 집, 글과 헤어짐과 아쉬움과 만남 새로움 서글픔
그리고 어제 괴로움 술 오늘 서러움 노래 모레 두려움 춤 안타까움 놀라움 쓸쓸함
(내일은 없다)
그리고 사람과 삶, 가장 아름다운 불꽃처럼
우리말로 된 이름씨들 앞에서
한없이 하릴없이 하염없이 힘이 빠지는 것은
아직 내게 어둠이 남아 있기 때문일까
한 그릇의 밥이 있어서일까
일탈이다, 어차피 逸脫이다.

 


 

 

낙엽을 밟으며


개벽의 울음에서
묵연한 적멸까지
이승에서 저승인데
내가 가야 할 길
한 치 앞이 천리인가 만리인가
피는 아직 시커멓게 울어도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앉은뱅이야
천년 만년 살 것처럼 하지 마라.

소리 없이 세상 열고
조용히 흔들리다
그냥 떨어져 내리는
화엄의 경을 보라
상처없이 물든 이파리가 있는지
느티나무에서 옻나무까지
한평생 눈물로 씻고 울음으로 삭인
한 잎 한 잎 사리로 지는데
함부로 밟지 마라
낙엽만도 못한 인생들아.

 

 

 

 

隱者의 꿈



산 채로 서서 적멸에 든
고산대의 朱木 한 그루,

타협을 거부하는 시인이
거문고 줄 팽팽히 조여 놓고
하늘棺을 이고
설한풍 속 추상으로 서 계시다.

현과 현 사이
바람처럼 들락이는
마른 울음
때로는
배경이 되고
깊은 풍경이 되기도 하면서,

듣는 이
보는 이 하나 없는
한밤에도 환하다
반듯하고 꼿꼿하시다.

 



 

無花果

 


애 배는 것 부끄러운 일 아닌데
그녀는 왜 꼭꼭 숨기고 있는지
대체 누가 그녀를 범했을까
애비도 모르는 저 이쁜 것들, 주렁주렁,
스스로 익어 벙글어지다니
은밀이란 말이 딱 들어맞는다
오늘밤 슬그머니 문지방 넘어가 보면
어둠이 어둡지 않고 빛나고 있을까
벙어리처녀 애 뱄다고 애 먹이지 말고
울지 않는 새 울리려고 안달 마라
숨어서 하는 짓거리 더욱 달콤하다고
열매 속에선 꽃들이 난리가 아니다
질펀한 소리 고래고래 질러대며
무진무진 애쓰는 혼뜬 사내 하나 있다.


 

 

 

洪海里는 어디 있는가



詩의 나라
牛耳桃源
찔레꽃 속에 사는
그대의 가슴속
해종일
까막딱따구리와 노는
바람과 물소리
새벽마다 꿈이 生生한
한 사내가 끝없이 가고 있는
行과 行 사이
눈 시린 푸른 매화,
대나무 까맣게 웃고 있는
솔밭 옆 마을
꽃술이 술꽃으로 피는
蘭丁의 누옥이 있는
말씀으로 서는 마을
그곳이 洪海里인가.

 

 

 

 

 

5월에 길을 잃다


팍팍한 길 나 홀로 예까지 왔네
나 이제 막막한 길 가지 못하네
눈길 끄는 곳마다
찔레꽃 입술 너무 매워서
마음가는 곳마다
하늘 너무 푸르러 나는 못 가네.

발길 닿는 곳마다 길은 길이니
갈 수 없어도 가야 하나
길은 모두 물로 들어가고
산으로 들어가니
바닷길, 황톳길 따라 가야 하나
돌아설 수 없어 나는 가야 하나.

어디로 가나
어디로 가나.


 

 

 

下山
- 閑居日誌 10



까막산 求路庵에서
하산하다
이곳이 선계
사람 사는 곳
진흙구렁이라도 정답고
개똥밭이라도 좋다
구로암에서 길을 찾는 일
길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내 마음속으로 나 있을 뿐
불 없는 고행길은 끝이 없고
짐승들 울부짖는 소리만
산천에 가득하다
하루 종일 잠들지 못하고
암흑의 깊은 골짜기
나는 내려간다
내 마음속의 길을 따라
세상은 그래도 푸르고 환하다
아직은 따뜻하다.

 

 

 

둥근잎나팔꽃



아침에 피는 꽃은 누가 보고 싶어 피는가
홍자색 꽃 속으로
한번 들어가 보자고, 한 번,
가는 허리에 매달려 한나절을 기어오르다
어슴새벽부터 푸른 심장 뛰는 소리---,
헐떡이며 몇 백 리를 가면
너의 첫입술에 온몸이 녹을 듯, 허나,
하릴없다 하릴없다 유성처럼 지는 꽃잎들
그림자만 밟아도 슬픔으로 무너질까
다가가기도 마음 겨워 눈물이 나서
너에게 가는 영혼마저 지워 버리노라면
억장 무너지는 일 어디 하나 둘이랴만
꽃 속 천리 해는 지고
타는 들길을 홀로 가는 사내
천년의 고독을 안고, 어둠 속으로,
뒷모습이 언뜻 하얗게 지워지고 있다.

 

 

 

 

 

숫돌은 자신을 버려 칼을 벼린다




제 몸을 바쳐
저보다 강한 칼을 먹는
숫돌,

영혼에 살이 찌면 무딘 칼이 된다.

날을 세워 살진 마음을 베려면
자신을 갈아
한 생을 빛내고,

살아 남기 위해서는 버려야 한다.

서로 맞붙어 울어야
비로소 이루는
相生,

칼과 숫돌 사이에는 시린 영혼의 눈물이 있다.

 


 

 

 

처녀치마


철쭉꽃 날개 달고 날아오르는 날
은빛 햇살은 오리나무 사이사이
나른, 하게 절로 풀어져 내리고,
은자나 된 듯 치마를 펼쳐 놓고
과거처럼 앉아 있는 처녀치마
네 속으로 한없이 걸어 들어가면
몸 안에 천의 강이 흐르고 있을까
그리움으로 꽃대 하나 세워 놓고
구름집의 별들과 교신하고 있는
너의 침묵과 천근 고요를 본다.

 

 

 

 

 

봄, 벼락치다

 

 

 

천길 낭떠러지다, 봄은.

어디 불이라도 났는지
흔들리는 산자락마다 연분홍 파르티잔들
역병이 창궐하듯
여북했으면 저리들일까.

 나무들은 소신공양을 하고 바위마다 향 피워 예불 드리는데 겨우내 다독였던 몸뚱어리 문 열고 나오는게 춘향이 여부없다 아련한 봄날 산것들 분통 챙겨 이리저리 연을 엮고 햇빛이 너무 맑아 내가 날 부르는 소리,

 우주란 본시 한 채의 집이거늘 살피가 어디 있다고 새 날개 위에도 꽃가지에도 한자리 하지 못하고 잠행하는 바람처럼 마음의 삭도를 끼고 멍이 드는 윤이월 스무이틀 이마가 서늘한 북한산 기슭으로 도지는 화병,

 벼락치고 있다, 소소명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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