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海里 詩 다시 읽기

『봄, 벼락치다』의 꽃詩 27편 모음

洪 海 里 2006. 10. 21. 19:00

<『봄, 벼락치다』의 꽃詩 27편 다시 읽기>

 

1. 동백꽃 속에는 적막이 산다 / 洪 海 里





뚝!

 

(시집『봄, 벼락치다』2006. 우리글)

 

 

2. 이팝나무 / 洪 海 里



흥부네 자식들이 이밥 한 그릇 앞에 하고 비잉 둘러앉아 있다.

하늘이 밥이다.

꽃은 금방 지고 만다.

이팝나무 소복한 꽃송이 흰쌀밥 향기로 흥부는 배가 부르다.

 

 

 

3. 푸른 유곽 / 洪 海 里
- 아카시아

 

 
오월이 오고
아카시아 초록 물이 올라
천지를 진동시키는
유백색 향기
검은 스타킹의 서양 계집애들
쭉쭉 뻗은 다리
늘어진 꽃숭어리 숭어리
댕그랑댕그랑
지독한 그리움에 흔들흔들
눈 맑고 귀 밝은 조선 사내들
다 어디로 숨어버리고
점령군 같은,
게릴라 같은
천하의 무서운 사내들
부산한 발자국 소리
요란한 거리, 거리
질펀한 사랑
어질어질 어지러운
오오, 저 진동하는 단내
흐드러진 푸른 유곽의.


4. 찔레꽃 / 洪 海 里

 

 

장미꽃 어질머리 사이
찔레꽃 한 그루
옥양목 속적삼으로 피어 있다.

돈도 칼도 다 소용없다고
사랑도 복수도 부질없다고
지나고 나서야 하릴없이 고개 끄덕이는
천릿길 유배와 하늘 보고 서 있는 선비.

왜 슬픔은 가시처럼 자꾸 배어나오는지
무장무장 물결표로 이어지고 끊어지는 그리움으로
세상 가득 흰 물이 드는구나.

밤이면 사기등잔 심지 돋워 밝혀 놓고
치마폭 다소곳이 여미지도 못하고 가는
달빛 잣아 젖은 사연 올올 엮는데,

바람도 눈 감고 서서 잠시 쉴 때면
생기짚어 피지 않았어도
찔레꽃 마악 몸 씻은 듯 풋풋하여
선비는 귀가 푸르게 시리다.

 

 

 

5. 밤늦이 늘어질 때 / 洪 海 里



몽환의 산그늘에 반란이 일어나고 있다
천근 고독의 사내가 자신을 해체하고 있다
구릿빛 비린내 느정느정 늘어져 꽃피고 있다.

벌거숭이 맨발로 달려가는 기적소리 들린다
푸른 천둥소리 은밀하니 진저리치는 산골짜기
허리끈 풀어진 잠들지 못하는 유월의 밤은 짧다.

 

 

6. 사랑은 덧없는 덫 / 洪 海 里

-나팔꽃


1
금빛
햇살로
열려
바르르
떨다
주름주름
말리는
陰脣

2
허공만
가득한
대낮,
소리없이
지는
통꽃잎,
꽃잎들

3
사랑은

덧없는

덫.


 

 

7. 고추꽃을 보며 / 洪 海 里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도 않는
저 작고 보잘것없는 흰 꽃
쥐 죽은 듯 조용하다
어찌 저것이 밀애를 했나
푸른 고추를 달고
소리 소문도 없이 속에 하얀 씨앗을 가득 담는지
햇빛 쨍한 날
어느새 검붉게 피를 토하며
시뻘건 독을 모아
씨앗들을 노랗게 영글리는지
짤랑짤랑 방울 소리를 내는지
참,
모를 일일세
허구한 날
하고많은 꽃 다 제쳐두고
오늘 내 네 앞에서 전전긍긍하는 것은
내 버린 영혼을 네 매운 몸으로
비벼대고 싶어서일까 몰라
오랫동안 햇빛에 취한 너를 보며
내 홀로 골몰하는 것은
너의 우화등선
아니 수중 침전을 위해서인가
드디어
네가 죽어 눈앞이 환하다
세상이 시원하다
어, 시원해,
잘 익어 곰삭은 고추장 만세!

 

 

 

8. 지는 꽃에게 묻다 / 洪 海 里



지는 게 아쉽다고 꽃대궁에 매달리지 마라

고개 뚝뚝 꺾어 그냥 떨어지는 꽃도 있잖니

지지 않는 꽃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피어나

과거로 가는 길 그리 가까웁게 끌고 가나니

너와의 거리가 멀어 더욱 잘 보이는 것이냐

먼 별빛도 짜장 아름답게 반짝이는 것이냐.

 

 

 

9. 나팔꽃, 바르르 떨다 / 洪 海 里



꽃 속으로 속으로 들어가면

꿈의 집 한 채

영원으로 가는 길

눈썹 끝에 머무는

꿈결 같은 꽃자리

까막과부 하나.

 

 

 

10. 참꽃여자 9 / 洪 海 里

 

 
연분홍
꽃잎
하나
술잔에
띄우면,

연애하다
들킨
계집애
달아나는
저 허공!

 

 

 

11. 참꽃여자 8 / 洪 海 里

 


나이 들어도
늙을 줄 모르고,

달래야!
한마디에,

속치마 버선발로
달려나오는,

볼 발그레 물들이는
그 女子.

 

 

 

12. 꽃다지꽃 / 洪 海 里

 

 

꽃에서 꽃으로 가는 완행열차
나른한 봄날의 기적을 울리며 도착하고 있다
연초록 보드란 외투를 걸친 쬐그마한 계집애
샛노랗게 웃고 있는 앙증맞은 몸뚱어리
누가 천불나게 기다린다고
누가 저를 못 본다고
포한할까 봐 숨막히게 달려와서
얼음 녹아 흐르는 투명한 물소리에, 겨우내내
염장했던 그리움을 죄다 녹여, 산득산득
풀어 놓지만 애먼 것만 잡는 건 아닌지
나무들은 아직도 생각이 깊어 움쩍 않고
홀로 울고 있는 초등학교 풍금소리 가득 싣고
바글바글 끓고 있는 첫사랑,
꽃다지꽃.

 

 

 

13. 꽃나무 아래 서면 눈물나는 사랑아 / 洪 海 里



꽃나무 아래 서면 눈이 슬픈 사람아
이 봄날 마음 둔 것들 눈독들이다
눈멀면 꽃 지고 상처도 사라지는가
욕하지 마라, 산것들 물오른다고
죽을 줄 모르고 달려오는 저 바람
마음도 주기 전 날아가 버리고 마니
네게 주는 눈길 쌓이면 무덤 되리라
꽃은 피어 온 세상 기가 넘쳐나지만
허기진 가난이면 또 어떻겠느냐
윤이월 달 아래 벙그는 저 빈 자궁들
제발 죄 받을 일이라도 있어야겠다
취하지 않는 파도가 하늘에 닿아
아무래도 혼자서는 못 마시겠네
꽃나무 아래 서면 눈물나는 사랑아.

 

 

14. 조팝나무꽃 / 洪 海 里

 


숱한 자식들
먹여 살리려
죽어라 일만 하다
가신
어머니,

다 큰 자식들
아직도
못 미더워
이밥 가득 광주리 이고
서 계신 밭머리,

산비둘기 먼 산에서 운다.

 

 

 

15. 왜 이리 세상이 환하게 슬픈 것이냐 / 洪 海 里
- 찔레꽃


너를 보면 왜 눈부터 아픈 것이냐

흰 면사포 쓰고
고백성사하고 있는
청상과부 어머니, 까막과부 누이

윤이월 지나
춘삼월 보름이라고
소쩍새도 투명하게 밤을 밝히는데

왜 이리 세상이 환하게 슬픈 것이냐.

 

 

 

 16. 푸서리의 찔레꽃 / 洪 海 里

 

 

도시락
둘러멘
무명 보자기
계집애
하얀 얼굴
잘 익은 농주든가
아질한 향내

먼지 풀풀
황톳길
허기진 바람
가뿐 숨
단내 나는데
딸각딸각 빈 소리
타는 고갯길

 

 

17. 장미, 폭발하다 / 洪 海 里


가시철망

초록 대문 위

천하에

까발려진

저,

낭자한 음순들

낭창낭창

흔들리는

저, 저,

호사바치.

 

 

18. 찔레꽃 필 때 / 洪 海 里



제 가슴속

하얀 그리움의 감옥 한 채 짓고

기인긴 봄날

홀로

시퍼렇게 앓고 있는 까치독사

내가 줄 게 뭐냐고

먼 산에서

우는 뻐꾸기

해배될 날만 기다리는

오동나무 속

새끼 딱따구리

까맣게 저무는 봄날---.

 

 

 

 19. 白宮 속 까만 씨앗을 위하여 / 洪 海 里

 

 

1
작년 여름
죽을둥살둥 죽-을-둥-살-둥
2층 지붕 TV 안테나까지 감고 올라가
하늘등을 달고 종을 울리던
말라버린 나팔꽃 줄기를 본다
아직도 쇠 파이프를 악착같이 움켜쥐고 있다
이미 길은 끊어지고
목숨도 다했지만
죽어서까지도 필사적이다.

2
올라갈수록 이파리도 커지고
줄기도 튼실해지던 너
네가 떨어뜨린 씨앗들이
올해도 마당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
길을 찾아가는 것은 길을 내는 일
꽃을 피우는 일은 잠깐
그 아름다운 찰나를 위하여
너는 온몸으로 몸부림을 쳤다
얼마나 힘든 노역이었더냐
너의 몸이 손이었다
일손이었다.

3
몸으로 파이프를 장악하여 너는
왼쪽으로, 위로만 방향 지시를 했지
그것이 무슨 예언이었을까
아래쪽의 비난의 소리를 묵살하고
고통의 달콤한 맛을 즐기려 했을까
父祖의 권위를 지키고 싶었을까.

4
밑에서 뿌리를 잘라 놓아도
몸 안의 남은 피 한 방울까지 짜 올려
마지막 꽃송이를 피우고 나서야
잎은 시들고 줄기는 말라 파이프에 매달렸다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의 힘으로
천리 먼 길 白宮 속 까만 씨앗을 익혀
피의 족보를 쓰는 독기와
서럽던 역사도 있어 너는 아름답다.

 

 

 

 20. 달개비꽃 / 洪 海 里



마디마디
정을 끊고
내팽개쳐도,

금방
새살림 차리는
저 독한 계집.

이제는
쳐다보지도,
말도 않는다고

말똥말똥 젖은 눈
하늘 홀리는
저 미친 계집.

 

 

 

21. 無花果 / 洪 海 里

 


애 배는 것 부끄러운 일 아닌데
그녀는 왜 꼭꼭 숨기고 있는지
대체 누가 그녀를 범했을까
애비도 모르는 저 이쁜 것들, 주렁주렁,
스스로 익어 벙글어지다니
은밀이란 말이 딱 들어맞는다
오늘밤 슬그머니 문지방 넘어가 보면
어둠이 어둡지 않고 빛나고 있을까
벙어리처녀 애 뱄다고 애 먹이지 말고
울지 않는 새 울리려고 안달 마라
숨어서 하는 짓거리 더욱 달콤하다고
열매 속에선 꽃들이 난리가 아니다
질펀한 소리 고래고래 질러대며
무진무진 애쓰는 혼뜬 사내 하나 있다.

 

 

 22. 추상 / 洪 海 里

 


할 일 다한 밤나무 꽃이삭
공중에서 교미를 마친 수벌처럼
숭얼숭얼 떨어져 땅에 누웠다
밤느정이 세상사 부질없다고
이별이야, 님과 나의 이별이야
이리저리 얽혀 응어리진 매듭
마지막 혼불로 풀고 있는 것인가
온몸이 꽃으로 무너져내린 사내
여장한 사내
푸른 치마 꺼꾸로 입고 그린
추상화 한 폭
밤늦게 홀로 돌아오는 길
대낮 같이 밝은 오월 보름날
느정느정 솔지 않은 희망이여
파란과 만장인 生의 만날이었던가
한 치 건너 두 치인 세상
달빛이 밤늦으로 그린 그림을 본다
땅 위에 그린 밤늦의 추상화를.

 

 

 

 23. 추억, 지다 / 洪 海 里

 


한여름 다 해질녘
봉숭아 꽃물을 들인다
꽃을 따 누이의 손톱마다
고운 물을 들인다
이쁜 반달손톱 속에는 벌써
첫눈이 내린다
매미 소리 한철 같은 누이의
첫사랑이 내린다
추억이 짓는 아스라한 한숨소리
손톱 속으로 스며들고
손가락 꼭꼭 싸맨 그리움이
추억추억 쌓이고 있다
해 설핏한 저녁에 꽃물을 들이는
눈썹마당에 이는 바람인 듯
슬슬슬 어스름이 내릴 때
가슴속에선 누가 북을 치고 있는지
다소곳 여민 적삼 안으로
그리움이 스멀스멀 스며들고
입술 촉촉 젖어 살짝 깨무는 소리
어스레한 누이의 젖은 눈가로
봉숭아꽃 하나 둘 지고 있었다.

 

 

 

24. 둥근잎나팔꽃 / 洪 海 里

 


아침에 피는 꽃은 누가 보고 싶어 피는가
홍자색 꽃 속으로
한번 들어가 보자고, 한 번,
가는 허리에 매달려 한나절을 기어오르다
어슴새벽부터 푸른 심장 뛰는 소리---,
헐떡이며 몇 백 리를 가면
너의 첫입술에 온몸이 녹을 듯, 허나,
하릴없다 하릴없다 유성처럼 지는 꽃잎들
그림자만 밟아도 슬픔으로 무너질까
다가가기도 마음 겨워 눈물이 나서
너에게 가는 영혼마저 지워 버리노라면
억장 무너지는 일 어디 하나 둘이랴만
꽃 속 천리 해는 지고
타는 들길을 홀로 가는 사내
천년의 고독을 안고, 어둠 속으로,
뒷모습이 언뜻 하얗게 지워지고 있다.

 

 

 

25. 처녀치마 / 洪 海 里



철쭉꽃 날개 달고 날아오르는 날
은빛 햇살은 오리나무 사이사이
나른, 하게 절로 풀어져 내리고,
은자나 된 듯 치마를 펼쳐 놓고
과거처럼 앉아 있는 처녀치마
네 속으로 한없이 걸어 들어가면
몸 안에 천의 강이 흐르고 있을까
그리움으로 꽃대 하나 세워 놓고
구름집의 별들과 교신하고 있는
너의 침묵과 천근 고요를 본다.

 

 

 

26. 참꽃女子 15 / 洪 海 里



산등성이 지는 해, 네 앞에선


어찌 절망도 이리 환한지


사미니 한 년


山門에 낯 붉히고 서 있네.

 


 

27. 목련꽃, 지다 / 洪 海 里


목련아파트 101동 1001호
창 밖만 바라보던 눈먼 소녀
목련꽃 하얗게 피었다
이울던 저녁
달빛을 타고 뛰어내렸습니다
면사포를 쓰고
결혼식을 기다리던 신부
소리 소문 없이 져 버렸습니다
하염없는 봄날은 자꾸 저물고
길 위에서 꿈꾸기 위하여
무작정 뛰어내렸다고
소문만, 하냥, 귀가 아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