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海里 詩 다시 읽기

洪海里의 詩 18편 다시 읽기

洪 海 里 2006. 12. 27. 16:57

<洪海里의 詩 18편 다시 읽기/시집『푸른 느낌표!』>

 

1. 나 죽으면 바다로 돌아가리라

 

넓고 넓은 바닷가 외진 마을

어머니의 고향

우주의 자궁

나 죽으면 그 곳으로 돌아가리라

돌아가 그 보드라운 품에 안겨

무한과 영원의 바다를 살리라

이승에서 지은 죄와 모든 때

뜨거운 불로 사루고 태워

한줌의 가루로 남아

천지를 진동하는 폭풍과 파도에 씻기어

벽옥의 바닷속 깊이 가라앉으리라

꽃 한 송이 무슨 소용 있으랴

빗돌이 무슨 필요 있으랴

이름도 흔적도 꿈도 잊어버리고

붉은 해 바다에 떠오를 때

바다를 깨워 바다에 뜨고

진홍빛 노을 서녘 하늘 물들이면

나 파도와 함께 잠들리라

하늘에 수많은 별들 불 밝히고

하나가 따로 없는 바다에서

나도 하나의 바다가 되리라

그리하여 파도의 꿈을 엮으리라

어린 아이 맑은 미소의 집을 짓고

혼돈의 바다

원시의 바다에서

그 조화의 바다

생명의 바다에서

일탈한 죽음의 넋들과 만나

아름다운 불륜으로 자유의 사생아를 낳으리라                               

끝없이 한없이 낳으리라

묵시와 화엄의 바다

충일과 자족의 바다에서

파도가 파도를 낳고

그 파도가 파도를 낳고 낳으리라

파도 하나가 다른 파도를 흔들어

온 바다가 하나의 큰 파도로 피리라

바다가 껴안고 있는

바닷속 물의 섬에는

자연의 혼교가 이어지고 이어지고

설레임이 죽은 바닷가에서

또다른 설레임이 태어나고

그리움이 끝난 바닷가에서

또다른 그리움이 피어나고

사랑이 끝난 바닷가에서

또다른 사랑이 일어나고

울음도 눈물도 다 죽은 바닷가에서

또다른 울음과 눈물이 솟아나고

ㅎㅎ!  웃는 소리도 끝난 바닷가에서

또다른 웃음이 터져나오는

오 절망의 사랑이여

절망의 절망의 사랑이여

나 죽으면 바다로 돌아가리라

절망의 바다로.  

 


2. 보세란報歲蘭

- 백묵소白墨素


삼복 더위, 가을을 넘더니

아세亞歲 지나

새해가 온다고, 너는

나를 무너뜨리고 있다

네 곁을 지켜주지 못하는

나의 무력함――

겨우내 감싸주지 못한

너의 외로움

밤새도록 몸이 뜨겁더니

안개처럼 은밀하니 옷을 벗고

달을 안은 수정 물빛으로

절망의 파편들을 버리고

드디어 현신하다

수없이 날리는 향香의 화살들

눈물겨운 순수의 충격이다

새 천년 첫 해오름과

첫날밤의 달빛으로

수천 억겁의 별빛을 모아

내 가슴에 쏟아붓는,

적요의 환희와

관능의 절정

너는 불꽃의 혀로 찍는 황홀한 구두점

또는

푸른 느낌표!

 

 

3. 초여름에서 늦봄까지


1
그해 여름
혼자
빨갛게 소리치는
저 장미꽃더미 아래
나는
추웠네
한겨울이었네
속살 드러내고 속살대는
초여름 문턱에 서서
나무들은 옷을 껴입고 있었네
연초록에서 진초록으로.

 

2
천둥과 번개 사이로
불볕더위가 느릿느릿 지나가고
흰 이슬 방울방울
지천으로 내리는
황금벌판---,
발가벗고 누워도
부끄럽지 않았네
온몸의 광채
저 높은 거지중천으로
흥겹게 퍼져
하늘을 덮고 있었네
가슴에 응어리진
아픔의 알갱이도 금빛으로 익어
투명한 빛살로 원을 그리고
견고한 열매 속
하늘로 하늘로 길이 열리고 있었네.

 

3
온 세상에 흰눈이 내려쌓여
천지가 적막에 잠길 때
포근한 눈이불을 뒤집어쓴
보리밭 이랑이랑
별로 뜨고 있었네, 나는,
긴긴 밤 서성이며
잠 못 드는 저 보리싹들을 안고
일어서는 은빛 대지는
가장 지순한 한 편의 위대한 시를
깊이 깊이 품어안은 채
수천수만의 꽃봉오리를 밝히고 있었네.

 

4
산비둘기 울음으로
쑥 냉이 꽃다지 벌금자리로
돋는 사랑이여
차라리 질경이 속에 들어가
작디 작은 씨앗이 되어
그리움이 이는 풀밭길
연초록으로 피어나고 싶네
빛과 어둠
시작과 끝
삶과 죽음을 잇는 끈이 되어
두 손길 마주잡고
눈에 젖는 사랑
따숩은 세상길에
그의 시간이 되고 싶네
무량공간으로, 나는.

 


4. 가을 들녘에 서서


눈멀면
아름답지 않은 것 없고
 
귀먹으면
황홀치 않은 소리 있으랴
 
마음 버리면
모든 것이 가득하니
 
다 주어버리고
텅 빈 들녘에 서면
 
눈물겨운 마음자리도
스스로 빛이 나네.

 

 

5. 지독한 사랑

 

나,

이제

그대와 헤어지려 하네

지난

60년 동안 나를 먹여 살린

조강지처

그대를 이제 보내주려 하네

그간 단단하던 우리 사이

서서히 금이 가고

틈이 벌어져

이제 그대와 갈라서려 하나

그대는 떠나려 하지 않네

남은 생을 빛내기 위해

금빛 처녀 하나 모셔올까

헤어지는 기념으로

사진도 두 번이나 찍고

그대와 나 사이를 이간질하던

나의 나태와 무관심을 나무랐지만

그대를 버리기

이렇게 힘들고 아플 줄이야

이 좋은 계절

빛나는 가을에

오, 나의 지독한 사랑,

6번 어금니여

나 이제 그대와 작별하려 하네!

 

 

6. 절정을 위하여


조선낫 날빛 같은 사랑도

풀잎 끝의 이슬일 뿐

절정에 달하기 전

이미 내려가는 길

풀섶에 떨어진 붉은 꽃잎, 꽃잎들

하릴없이 떨어져 누운 그 위에

노랑나비 혼자 앉아

하마하마 기다리고 있다

절망이 아름답다고

노래하는 시인이여

슬픔도 눈물로 씻고 씻으면

수정 보석이 되고

상처도 꽃으로 벌어

깊을수록 향으로 피어오르는가

마음을 닦아 볼까

스스로 깊어지는 숲

속으로 들어가

흔적도 남기지 않는

바람을 만나네

무거운 마음 하나 머물고 있는

바윗속을 지나니

절정은 이미 기울어지고

풀 새 벌레 한 마리 들리지 않네

목숨 지닌 너에게나 나에게나

절정은 없다.

 


7. 엽서


시월 내내 피어오르는

난향이 천리를 달려 와

나의 창문을 두드립니다

천수관음처럼 서서

천의 손으로

향그런 말씀을 피우고 있는

새벽 세시

지구는 고요한 한 덩이 과일

우주에 동그마니 떠 있는데

천의 눈으로 펼치는

묵언 정진이나

장바닥에서 골라! 골라! 를 외치는 것이

뭐 다르리오마는

삐약삐약! 소리를 내며

눈을 살며시 뜨고

말문 트는 것을 보면

멀고 먼 길

홀로 가는 난향의 발길이

서늘하리니,

천리를 달려가 그대 창문에 닿으면

'여전히

묵언 정진 중이오니

답신은 사절합니다'

그렇게 받아 주십시오

그러나

아직 닿으려면 천년은 족히 걸릴 겁니다.

 


8. 가벼운 바람

 

사람아

사랑아

외로워야 사람이 된다 않더냐

괴로워야 사랑이 된다 않더냐

개미지옥 같은 세상에서

살얼음판 같은 세상으로

멀리 마실갔다 돌아오는 길

나를 방생하노니

먼지처럼 날아가라

해탈이다

밤안개 자분자분 사라지고 있는

섣달 열여드레 달을 배경으로

내 생의 무게가 싸늘해

나는 겨자씨만큼 가볍다.


 

9. 먹통사랑 


제자리서만 앞뒤로 구르는

두 바퀴수레를 거느린 먹통,

먹통은 사랑이다

먹통은 먹줄을 늘여

목재나 석재 위에

곧은 선을 꼿꼿이 박아 놓는다

사물을 사물답게 낳기 위하여

둥근 먹통은 자궁이 된다

모든 생명체는 어둠 속에서 태어난다

어머니의 자궁도 어둡고

먹통도 깜깜하다

살아 있을 때는 빳빳하나

먹줄은 죽으면 곧은 직선을 남겨 놓고

다시 부드럽게 이어진 원이 된다

원은 무한 찰나의 직선인 계집이요

직선은 영원한 원인 사내다

그것도 모르는 너는 진짜 먹통이다

원은 움직임인 생명이요

또 다른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해 직선이 된다

둥근 대나무가 곧은 화살이 되어 날아가듯

탄생의 환희는 빛이 되어 피어난다

부드러운 실줄이 머금고 있는

먹물이고 싶다, 나는.

 


10. 산벚나무 꽃잎 다 날리고 
―隱寂庵에서
      

꽃 지며 피는 이파리도 연하고 고와라
때가 되면 자는 바람에도 봄비처럼 내리는
엷은 듯 붉은빛 꽃 이파리 이파리여
잠깐 머물던 자리 버리고 하릴없이,
혹은 홀연히 오리나무 사이사이로
하르르하르르 내리는 산골짜기 암자터
기왕 가야할 길 망설일 것 있으랴만
우리들의 그리움도 사랑도 저리 지고 마는가
온 길이 어디고 갈 길이 어디든 어떠랴
하늘 가득 점점이 날리는 마음결마다
귀먹은 꽃 이파리 말도 못하고 아득히,
하늘하늘 깃털처럼 하염없이 지고 있는데
우리들 사는 게 구름결이 아니겠느냐
우리가 가는 길이 물길 따르는 것일지라
흐르다 보면 우리도 문득 물빛으로 바래서
누군가를 위해 잠시 그들의 노래가 될 수 있으랴
재자재자 끊임없이 흘러가는 물소리 따라
마음속 구름집도 그냥 삭아내리지마는
새로 피어나는 초록빛 이파리 더욱 고와라.

 

 

 11. 우도牛島에서 


한 남지가 바다로 들어가고

또 한 남자가 따라 들어가고


그해 겨울

우도 바닷가에는


무덤마다 갯쑥부쟁이가 떼로 피어

바다만 바라보고 있었다


남정네들 떠나간 자리마다

눈빛이 젖어


낮게 낮게 몸을 낮추고

하염없이 바다만 바라보고 있었다.

 


12. 상사화相思花 

내가

마음을 비워

네게로 가듯

너도

몸 버리고

마음만으로 

내게로 오라

너는

내 자리를 비우고

나는

네 자리를 채우자

오명가명

만나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가는 길이 하나이기 때문

마음의 끝이 지고

산그늘 강물에 잠기우듯

그리움은

넘쳐 넘쳐 길을 끊나니

저문저문 저무는 강가에서

보라

저 물이 울며 가는 곳

멀고 먼 지름길 따라

곤비한 영혼 하나

낯설게 떠도는 것을!

 

13. 금란초金蘭草 

 

무등無等의

산록


금빛

화관을 이고


황홀한 

화엄세계를


한 송이로


열고 있는

여자女子.

 

14. 사랑의 뿌리


지난 봄날 나는 너를 보냈다
그 동안 든 정 때문에 찰칵
마지막 사진을 찍고 
모를 것이 정이라고
그간 서로 붙어 살아왔다고
떠나려 하지 않는 너
단호하게 결별을 선언했지만
뿌리는 두고, 너는
몸만 가버렸다
필요 없는 사랑은 화근거리
사랑이면 은밀히 묻어두었을 것을
사랑의 오독이었을까
시간이 가면
뿌리도 저절로 솟아오르리라
지층 깊이 박혀 있는 너를 보내려
다시 입 꽉 다물고 촬영을 하고
몽혼을 하고
집게로 뿌리를 물고 뽑아올린다
바르르 바르르 몸이 떨리고
자지러질 듯 혼절할 듯
이마에 진땀을 흘리며
너도 나도 울고 있었다
나도 너를 떠나보내기 아쉬웠던가
재차 마취를 하고
무지막지하게 떨치려 해도
옴짝달싹도 않던 너---
드디어 손을 놓고 너는 울었다
너 있던  자리 얼기설기 꿰매고 
허탈과 통증으로 일그러진 한밤
시커먼 피가 꾸역꾸역 흘러나온다
너의 흔적이, 너의 상처가,
뼛속의 적막이 온몸을 찍어누른다


사랑은 부드러운 힘, 
지독한
또는 
악랄한.


 

15. 사랑이여 가을에는

- 향부자香附子

 

사랑이여 가을에는

네 몸에 불을 질러라

다 태워버려라

한여름 피어오르던 짙은 젊음

이제 마른 풀잎으로 남아

시든 허상뿐

겉불을 질러

겉으로 무성한 허무의 껍질

다 태우고 나면

허망한 잿더미

바람에 풀풀 날리고

다 쓸려가고 나면

남을 것은 이 지상엔 없다

땅 속 깊이 묻혀

불로도 타지 않고,

죽지 않고 박혀 있는

사랑의 뿌리

다시 캐내어

불로 사루고 사루면

까맣게 남는 새까만 알갱이

그것도 사랑은 아니다

다시 씻고 부시고 닦으면

한 줌 금으로 남을까

다 타서 없어진

네 사랑이 향기로울까

사랑이여

이 가을에는

네 몸에 불을 질러라

다 태워버려라.

 


16. 시詩를 찾아서

 

세상이 다 시인데,

앞에서 춤을 추던 놈들

눈으로, 귀로 들어와

가슴속에서 반짝이다

둥지를 틀고 있다

바다에 그물을 친다

나의 그물은 코가 너무 커

신선한 시치 한 마리 걸리지 않는다

싱싱한 놈들 다 도망치고

겨우 눈먼 몇 마리 파닥이는 걸

시라고, 시라고 나는 우긴다

오늘밤엔 하늘에 낚시를 던져

별 한 마리 낚아 볼까

허공의 옆구리나 끌어당겨 볼까

물가에 잠방대는 나의 영혼

지는 노을이나 낚을까 하다

미늘만 떨어져 나가고

수줍게 옷고름 푸는 별도 잡지 못하고

천년이 간다

길은 산보다 낮은데

나는 산 위에서

우모羽毛 같은 몸으로

천리는 더 가야 하리라

시를 만나려면.

 

 

17. 봄비 갠 뒤


마악

목욕탕, 나서는

 

열일곱

기인 머리

 

촉촉한

향香

 

연둣빛

갈증. 

 


18. 세란헌洗蘭軒에서

 

난잎에

고요처럼

내려앉는 먼지를,

마음으로

씻어주는

새벽녘,

때맞춰

화로에선

차茶ㅅ물이 끓는데,

화선지에

묵향墨香은

번지지 않고,

가슴에

그리움만

고요처럼 쌓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