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 및 영상詩

[스크랩] 우리 학교에 핀 등나무꽃

洪 海 里 2006. 9. 7. 07:40

여기 해발 고도가 꽤나 높은 중산간 지대인데도
벌써 등나무꽃이 피기 시작했다.

 

교무실이 춥다고 엊그제까지 난로를 때었었는데
이제 봄이 다 지나간 느낌이다.

 

수업 시간

교실로 잘 못 들어와 한 바퀴 돌고 가는 제비 마중하느라
여학생들 까르르 웃고

 

등나무는 언제 저 위까지 물을 빨아올려
휘늘어지게 꽃을 피워놓았을까?

 

* 사진을 누르면 크게 보입니다.(800*600)


   


 

 


♧ 등나무 / 서연정

 

 깨어지기 쉬운 욕망의 부근 세상을 자르고 붙이는 내 푸른 눈을 흘겨본다 그놈은 나보다 더 푸르게 날을 세운 눈으로 어디든 가고 싶은 곳으로 손을 뻗으며 휘어잡으며 한 번 잡으면 결코 놓지를 않는다 갈 수 있는 곳과 갈 수 없는 곳을 가르는 내 손가락질을 분명히 거부하며 흔들거리는 배암의 대가리 초록의 혓바닥은 빛을 받아 더욱 날름거린다 앞장서 달려가는 가슴을 무질러 안돼, 안돼, 주저앉히는 딱딱한 내 머리를 그놈은 깔깔거리며 비웃고 있다

 


 


♧ 등꽃 피는 날에 온 가을편지 / 권경업
   
등꽃, 꽃등불 푸르게 밝힌 한낮
지난가을과
가을하늘이 차곡차곡 접어 보낸 그저께가
꼭 다문 입술, 얌전한 새댁처럼
사월을 가로질러 내게 왔다

 

처음으로, 차마 처음으로 쓸쓸히
긴 겨울 돌아왔다는 너를
내 너를 받아 쥔 업(業)으로
등꽃 향기 환하게 흩어지는 몇 날 며칠
뜬눈으로 앓아

 

아! 이 기막히도록 정겨운
봄날의 아픔이라니

 


 


♧ 등꽃제(祭) / 정민호

 

햇살이 내려와서
한 점 한 점 모두 꽃이 되었다.
푸른 하늘 밑 응어리진 등꽃 넝쿨 속에
알몸을 드러낸 순수 사랑,
여름 향기로 가득 물들어옴을 바람은 안다.
바람에 머문 정오가 나비처럼
고요히 다가와서 나의 머리털을 흔들고
푸르른 꽃가마 타고 느릿느릿 내리는
구름 한 아름 파도소리로 넘쳐 온다
아, 그리움을 말하지 않겠다 나의 그리움을,
넘쳐흐르는 그리움으로
소리 없이 열리는 초여름의 향연
사랑 등꽃제(祭),
젊음으로 가득한 꽃밭으로
푸른 바람이 기억처럼 불고 있다.

 

 


 

♧ 등꽃 아래서 / 허문영

 

 등꽃 향기 속에는 한 번쯤 다시 걸어보고 싶은 꿈길이 있어 지친 그림자 잠시 곁에 접어두고 몸을 눕혔네 머리 속으로 쏟아지는 눈부신 등꽃 향기 따라 누더기 같은 마음도 꽃등불 아래 놓아두고 여름의 푸르른 치마 밑으로 떠났네 자줏빛 등꽃의 방안에서 암술과 수술들이 향기 나는 바람 이불을 덮고 몸을 섞는 동안 이 꽃 저 꽃 속에서 쏟아지는 밀어(蜜語)들이 밤하늘 깊이 별이 되고 있었네 어느새 내 몸 그림자는 사라져버리고 마음 그림자만 길게 남아 있었네 자줏빛 등꽃들은 사내들 불알 같은 꼬투리를 늘어뜨리고 씨앗을 여물고 있는 동안 나는 등꽃 꼬투리 속에서 아기처럼 자라나고 있었네



 

 

♧ 등(藤) - 홍해리(洪海里)
   
5월의 가슴을 열면
눈과 마음은 멀었어도
보랏빛 등을 달고
둥둥둥 울리는 북소리 들린다
환호와 박수소리 쏟아져 내리고
황홀한 번개
침묵의 벼락
가랭이 사이 감추었던 화약으로
몽유병자의 환상을 무너뜨린다
생명을 살찌우는 죽음의 잠이
마음의 고갈을 적시면서
검은빛으로 일어설 때
초록빛 언어여
하늘에 취한 사랑
심장 속에 밝히는 꽃등불이여.

 

 

♬ Cranes - Losif Kobzon

출처 :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글쓴이 : 김창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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