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9/19 3

적울積鬱

적울積鬱 洪 海 里 "시는 내 영혼의 멍에, 향기롭게 빛나는 미라"라고 꿈속에서 미친 듯이 소리치고 있었다 "미라야, 너를 사랑해!" 하고 말해도 멍에는 벗겨지지 않고 미라의 무덤도 펼쳐지지 않았다 미라는 행간에 잠들어 있었다 나는 행간을 건너뛰면서 미라를 깨웠다 잠에서 깨어난 미라를 마구 씹기 시작했다 조미료, 방부제가 너무 많이 들어간 듯했다 질겅질겅 씹다 입술도 깨물고 꼭꼭 씹다 혓바닥도 물어뜯었다 살맛 피맛이 이럴까 하며 제멋대로 씹었다 되는 대로 씹다 뱉을 일이 아니었다 곰곰 씹어 보니 제 살맛 피맛이 아니었다 미라 속에 씹히는 돌이 있었다 그것만 뱉어내면 되는 것이었지만 가려내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꼭두새벽 밖에 나와 하늘을 보면 꺼진 영혼의 별들이 졸음에 겨워 있었다 답답한 내 미라의 파편만..

호박 / 김포신문 2022. 09. 16.

김포신문 2022. 09. 16. 호박 洪 海 里 한 자리에 앉아 폭삭 늙었다 한때는 푸른 기운으로 이리저리 손 흔들며 죽죽 뻗어나갔지 얼마나 헤맸던가! 방방한 엉덩이 숨겨놓고 활개를 쳤지 때로는 오르지 못할 나무에 매달려 버둥거리기도 했지 사람이 눈멀고 반하는 것도 한때 꽃피던 시절 꺽정이 같은 떠돌이 사내 만나 천둥치고 벼락치는 날갯짓 소리에 그만 혼이 나갔겠다 치맛자락 뒤집어쓰고 벌벌 떨었지 숱한 자식들 품고 살다 보니 한평생이 별것 아니더라고 구르는 돌멩이처럼 떠돌던 빈털털이 돌이 아범 돌아와 하늘만 쳐다보며 한숨을 뱉고 있다 곱게 늙은 할머니 한 분 돌담 위에 앉아 계시다. - 시집『황금감옥』(2008, 우리글) * 감상 밭에, 산길에, 아파트 화단에, 노란 호박꽃이 피었다. 중간중간 애호박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