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9 16

호박 / 김포신문 2022. 09. 16.

김포신문 2022. 09. 16. 호박 洪 海 里 한 자리에 앉아 폭삭 늙었다 한때는 푸른 기운으로 이리저리 손 흔들며 죽죽 뻗어나갔지 얼마나 헤맸던가! 방방한 엉덩이 숨겨놓고 활개를 쳤지 때로는 오르지 못할 나무에 매달려 버둥거리기도 했지 사람이 눈멀고 반하는 것도 한때 꽃피던 시절 꺽정이 같은 떠돌이 사내 만나 천둥치고 벼락치는 날갯짓 소리에 그만 혼이 나갔겠다 치맛자락 뒤집어쓰고 벌벌 떨었지 숱한 자식들 품고 살다 보니 한평생이 별것 아니더라고 구르는 돌멩이처럼 떠돌던 빈털털이 돌이 아범 돌아와 하늘만 쳐다보며 한숨을 뱉고 있다 곱게 늙은 할머니 한 분 돌담 위에 앉아 계시다. - 시집『황금감옥』(2008, 우리글) * 감상 밭에, 산길에, 아파트 화단에, 노란 호박꽃이 피었다. 중간중간 애호박도 ..

이 겨울엔 / 한경 The Pen, 2022.01.18.

[한국 현대시, 한시로 만나다] 이 겨울엔 / 홍해리 강성위 필진기자 입력2022.01.18. 이 겨울엔 홍 해 리 이 겨울엔 무작정 집을 나서자 흰 눈이 천지 가득 내려 쌓이고 수정 맑은 물소리도 들려오는데 먼 저녁 등불이 가슴마다 켜지면 맞아주지 않을 이 어디 있으랴 이 겨울엔 무작정 길 위에 서자. [태헌의 한역] 此冬(차동) 此冬不問出宇庭(차동불문출우정) 白雪飛下滿地積(백설비하만지적) 淸如水晶水聲聽(청여수정수성청) 遠處夕燈心心亮(원처석등심심량) 世上何人不迎君(세상하인불영군) 此冬不問立途上(차동불문립도상) [주석] * 此冬(차동) : 이 겨울, 이 겨울에. 不問(불문) : 묻지 말고, 무작정. / 出宇庭(출우정) : 집을 나서다. ‘宇庭’은 집과 뜰이라는 뜻인데 ‘집’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白雪(백..

비 그친 우후 / 경상매일신문, 2022.08.01.

비 그친 오후 / 홍해리 - 선연가嬋娟歌 경상매일신문 기자 / gsm333@hanmail.net입력 : 2022년 08월 01일 집을 비운 사이 초록빛 탱글탱글 빛나던 청매실 절로 다 떨어지고 그 자리 매미가 오셨다, 떼로 몰려 오셨다 조용하던 매화나무 가도 가도 끝없는 한낮의 넘쳐나는 소리, 소낙비 소리로, 나무 아래 다물다물 쌓이고 있다 눈물 젖은 손수건을 말리며 한평생을 노래로 재고 있는 매미들, 단가로 다듬어 완창을 뽑아대는데, 그만, 투명한 손수건이 하염없이 또 젖고 젖어, 세상 모르고 제 세월을 만난 듯 쨍쨍하게 풀고 우려내면서 매미도 한철이라고 노래하고 있는 것인가 비 그친 오후 일제히 뽑아내는 한줄기 매미소리가 문득 매화나무를 떠안고 가는 서녘 하늘 아래 어디선가 심봉사 눈 뜨는 소리로 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