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보내고 너를 보내고 홍 해 리 돌아서는 사내의 뒷모습 그의 어깨에 얹히는 어둠의 무게. 너는 내 혓바닥에 돋아나는 천 개의 바늘 나의 비인 얼굴에 깔리는 살구꽃빛 서름이다. 너를 보내고 혼자서 돌아서는 한밤의 달빛 발밑에 으스러져 수 천의 별이 떨어진다. 저마다 혼자서인 가로수 아래 바.. 詩選集『洪海里 詩選』(1983) 2006.11.18
빛나는 계절 빛나는 계절 홍 해 리 예식장 가는 길목 조그만 꽃집 주인은 외출중 꽃이 피어 있다 비인 공간을 가득 채운 阡의 얼굴 파뿌리도 보인다 예식장 지하 신부 미용실 몇 송이 장미꽃의 분홍빛 친화 그들의 손과 손 사이 참숯으로 피일 저 서늘한 신부 호밀밭을 들락이던 바람을 타고 살찐 말의.. 詩選集『洪海里 詩選』(1983) 2006.11.18
안개꽃 안개꽃 홍 해 리 살빛 고운 아기들이 꿈속에서 젖투정을 하고 있다 배냇짓으로 익은 하늘빛 아기들의 마을에는 늘 안개꽃이 피어 있다 무릎이 퍼렇도록 기는 토끼풀꽃 목걸이로 젖어 있는 울음 하나 고사리 손을 흔들어 흰 구름장을 목에 걸고 종종종 기고 있다 안개꽃 핀다. (시집『우리.. 詩選集『洪海里 詩選』(1983) 2006.11.18
인수봉을 보며 인수봉을 보며 홍 해 리 봄이 오면 풀잎이 돋아나듯이 느글대는 피를 어쩔 수 없다 문득 차를 타고 4·19탑 근처를 서성거리다 인수봉을 올려다보면 그저 외연한 바위의 높이 가슴속 숨어 있는 부끄러움이 바람따라 똑똑히 되살아난다 백운대를 감고 도는 흰 구름장 벼랑에 버티고 선 작.. 詩選集『洪海里 詩選』(1983) 2006.11.18
귀뚜라미 귀뚜라미 홍 해 리 한밤 난로 위에 끓는 물소리 마루바닥을 기고 있는 허기진 벌레 한 마리 엉금엉금 기다 기인 촉수를 늘여 SOS를 치고 있다 별나라에 달나라에 그 곳엔 아직도 풀밭이 푸르른지 풀잎마다 이슬이 반짝이는지. 들어도 듣지 못하는 너의 부호를 이 아픈 시대에 태어난 나는 .. 詩選集『洪海里 詩選』(1983) 2006.11.18
텅 빈 귀 텅 빈 귀 홍 해 리 밤낮없이 시장기가 드는 나의 귀 바람소리 폭포소리만 귓전을 친다 우리는 귀를 막고 우리는 들으려 한다 죽은 소리는 소리가 아니다 천 리 만 리 밖에서도 가득차오는 산 소리가 하늘빛 깨치면서 산빛으로 물빛으로 달려가고 있다 죽은 꽃이 떠가는 허공중으로 목금을.. 詩選集『洪海里 詩選』(1983) 2006.11.18
백목련 백목련 홍 해 리 달빛이 깨어지게 시리던 밤에 하늘에서 내려온 소복의 여인 나뭇가지마다 끝끝으로 앉아서 하이얀 비둘기를 날리고 있다 하늘 끝까지 하늘 끝까지 파도치며 오르는 날개짓소리 한밤의 맑디 맑던 잠을 데불고 사라지는 아침의 서늘한 바람 새벽달만 조각조각 깨쳐버리고.. 詩選集『洪海里 詩選』(1983) 2006.11.18
메밀꽃 메밀꽃 홍 해 리 소복을 한 젊은 여자가 달빛과 달빛 사일 오가며 천상에서 바래인 옥양목 한 필을 산간에 펼쳐 널고 있다 겨드랑이 아래로 사태지는 그리움 저 서늘한 불빛으로 달래이며 천년을사루어도 다 못할 정을 하얀 꽃으로 피우고 있다 달이 이울면 산이 쓸리고 반쯤 젖어 흔들리.. 詩選集『洪海里 詩選』(1983) 2006.11.18
춘곤 춘곤 洪 海 里 들길을 돌아오는 비인 달구지 쓸쓸한 황혼만 가득 태우고 바퀴 아래 깔리는 자갈만 억울하다 무성한 보리밭을 지날 때에도 황소방울은 울리지 않고 고달픔만 어깨에 굳은 살로 쌓인다 밤새도록 밀려오는 해일을 막소주 한 잔에 내어맡기고 죽음 곁으로 죽음 곁으로 우리는 죽은 듯이 내.. 詩選集『洪海里 詩選』(1983) 2006.11.18
하교 하교 洪 海 里 하루 종일 운동장에선 투창 쏘는 소리 핑핑 날고 있는 배꽃같은 다리 사이 하늘은 맑다. 허공에 던져졌던 빛나는 눈동자 은빛 반짝이는 사기질 치아 혀를 날름대며 숨는 저녁놀 그 속으로 수 천의 웃음소리가 재잘거림을 데불고 밀리고 있다. 까르르 하루의 고뇌와 함께 하늘에 뜨는 발.. 詩選集『洪海里 詩選』(1983) 2006.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