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565

남대희 시집『어느 날 찾아온 풍경들의 기억』 表辭

남대희 시집 표사 시집을 받으면 제일 먼저 보게 되는 것이 바로 「시인의 말」이다. 이 시집 머리에 시인은 "처음에 나는/ 시詩가/ 세상의 꿈이고 희망이었으면 했다// 지금도 그렇다."라는 짧은 말씀을 올렸다. 시를 보면 그것을 쓴 사람이 보이기도 하는데 남 시인이 그런 경우가 아닌가 생각된다. 시는 시인이 이제까지 살아온 삶의 흔적일 수밖에 없다. 시인의 눈으로 본 자연과 주변 인사가 시적 풍경이 되어 한 편의 시로 살아나기 마련이다. 남 시인의 시가 호흡이 짧고 내용이 명쾌하다는 것은 그 동안 시에 대한 내공이 많이 쌓였고 그 만큼 깊어졌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자연이 사람의 삶일 수 있고 사람이 자연일 수 있는 세상은 얼마나 살맛나는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이겠는가 하는 생각을 이 시집을 읽으면..

독종

홍해리 시인 - 독종 / 비젼통신 포포 김영교 추천 2020.03.24. 1 세상에서 제일의 맛은 독이다. 물고기 가운데 맛이 가장 좋은 놈은 독이 있는 복어다. 2 가장 무서운 독종은 인간이다. 그들의 눈에 들지 마라. 아름답다고 그들이 눈독을 들이면 꽃은 시든다. 귀여운 새싹이 손을 타면 애잎은 손독이 올라 그냥 말라죽는다. 그들이 함부로덤부로 뱉어내는 말에도 독침이 있다. 침 발린 말에 넘어가지 마라. 말이 말벌도 되고 독화살이 되기도 한다. 3 아름다운 색깔의 버섯은 독버섯이고 단풍이 고운 옻나무에도 독이 있다. 곱고 아름다운 것들은 모두 독종이다. 그러나 아름답지 못하면서도 독종이 있으니 바로 인간이라는 못된 종자이다. 4 인간은 왜 맛이 없는가? [홍해리 시인 약력] 충북 청주 출생(1942)..

시가 죽이지요

시가 죽이지요 홍 해 리 시가 정말 죽이네요 시가 죽인다구요 내 시가 죽이라니 영양가 높은 전복죽이란 말인가 시래기죽 아니면 피죽이란 말인가 무슨 죽이냐구 식은 죽 먹듯 읽어치울 만큼 하찮단 말인가 내 시가 뭘 죽인다는 말인가 닦달하지 마라 죽은 밍근한 불로 천천히 잘 저으면서 끓여야 제 맛을 낼 수 있지 벼락같이 쓴 시가 잘 쑨 죽맛을 내겠는가 죽은 서서히 끓여야 한다 뜸 들이는 동안 시나 읽을까 죽만 눈독들이고 있으면 죽이 밥이 될까 그렇다고 죽치고 앉아 있으면 죽이 되기는 할까 쓰는 일이나 쑤는 일이나 그게 그거일까 젓가락을 들고 죽을 먹으려 들다니 죽을 맛이지 죽 맛이 나겠는가 저 말의 엉덩이같은 죽사발 미끈 잘못 미끄러지면 파리 신세 빠져 나오지 못하고 죽사발이 되지 시를 쓴답시구 죽을 쑤고 있..

홍해리 시인의 시와 시론, 그리고 그의 삶 ... 신간 시집『정곡론 』을 읽고

홍해리 시인의 시와 시론, 그리고 그의 삶 ... 신간 시집 『정곡론 』을 읽고                                                                                                             (타관의 포토에서...)​​홍해리 시인의 시와 시론 그리고 그의 삶 ... 신간 시집 『정곡론』을 읽고​1) 시집을 열며...​홍해리 시인은 금년이 팔순이시다. 1969년 첫 시집 『투망도』를 내며 등단하였으니 시력 50년이 넘었다, 젊은 시절 바다를 볼 수 없는 청주에 살던 시인은 “海里” 라는 작은 어촌마을을 꿈꾸며 바다를 동경했다. 그는 처음부터 시를 낚는 어부를 꿈꿨다. 바다는 무진장한 어장, 투망을 던지면 싱싱한 고기가 걸리는..

치매행致梅行 1.2.3.4 시집 종합... 副題 (홍해리 시인의 신간 “치매행 제4시집” 「이별은 연습도 아프다」에 부쳐 )[출처] 치매행致梅行 1.2.3.4 시집 종합... 副題 (홍해리 시인의 신간 “치매행..

시집을 열면서.... 홍해리 시인의 치매행 제4시집 「이별은 연습도 아프다」가 『놀북』 출판사에서 나왔다. 치매 아내에 대한 간병시집 제1시집 「치매행」 이후 5년여 만이다. 이번 시집으로써 아내에 대한 애절한 思婦曲은 총 네 권 전편 421편으로 끝이라고 하니 그 의미가 크다. 제1시집 「치매행」 2015. 황금마루 ......................................치매행 1-150편 제2시집 「매화에 이르는 길」 2017. 도서출판 움..............치매행 151-230편 제3시집 「봄이 오면 눈은 녹는다」 2018. 도서출판 움.....치매행 231-330편 제4시집 「이별은 연습도 아프다」 2020. 놀북 ....................치매행 331-421편 이 시..

가을 들녘에 서서 / 기청(시인 · 문예비평가)

가을 들녘에 서서 洪 海 里 눈멀면 아름답지 않은 것 없고 귀먹으면 황홀치 않은 소리 있으랴 마음 버리면 모든 것이 가득하니 다 주어버리고 텅 빈 들녘에 서면 눈물겨운 마음자리도 스스로 빛이 나네. - 『푸른 느낌표!』(2006, 우리글) * 간결하고 담백한 선풍의 시다. 이 시의 서두를 의미상으로 풀어보면 '눈먼 자에게는 모두 아름답게 보이고 귀먹은 자에게는 모두 황홀하게 들린다'가 된다. 마음의 눈, 마음의 귀는 잡다한 현실이 아닌 본성의 세계이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다. 그것처럼 "마음 버리면"(현상의 탐욕을 내려놓으면) 텅 빈 마음이 되고 그것은 역설적으로 충만한 행복이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가을 "텅 빈 들녘에 서면/ 눈물겨운 마음자리도/ 스스로 빛이 나네"라고 하여 불교적인 깨달음을 지향한다..

월간《우리詩》신작소시집 /2023. 1월호.

2023. 신년호 〈신작소시집〉 세란헌洗蘭軒 외 4편 洪 海 里 물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으로 난잎을 씻고 내 마음을 닦노니, 한 잎 한 잎 곧추서고 휘어져 내려 허공을 잡네. 바람이 오지 않아도 춤을 짓고, 푸른 독경으로 가득 차는 하루 또 하루 무등, 무등 좋은 날! * 세란헌 : 우이동에 사는 한 시인의 달팽이만 한 집. 푸른 하늘 무지개 늙바탕에 한무릎공부했다고 깔축없을 것이 어찌 없겠는가 세상 거충대충 살아도 파근하고 대근하기 마련 아닌가 나라진다 오련해진다고 징거매지 말거라 한평생 살다 보면 차탈피탈 톺아보게 되느니 더운 낮에 불 때고 추운 밤에 불 빼는 어리석은 짓거리 하지 마라 씨앗은 떨어져야 썩고 썩어야 사는 법 때 되면 싹 트고 열매 맺느니. 독거놀이 오늘도 혼자 앉아 물밥 한 병, 닭가..

으악새 / 유시욱(문학평론가)

으악새 洪 海 里 바람에 일렁이는 은백의 머리칼 아름답게 늙은 사람 고운 사람아 저건 꽃이 아니라 차라리 울음이리 낮은 곳으로 펼치는 생명의 비단이여 구름으로 바람으로 굽이치는 만릿길 끊일 듯 들려오는 향기로운 단소 소리 가다가 돌아서서 넋을 잃고 바라보면 수천수만 새 떼의 비상이네 물보라 피우는 능선의 파도이다가 풀밭에 달려가는 양 떼이다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쓸쓸한 그리움이네 산기운 모아 뽑는 허이연 기침소리 저건 꽃이 아니라 차라리 울음이네. * 에서도 양 감각의 이미지는 자유자재로 구사되어 있다. 억새풀 같은 흔한 소재에서 참신한 상을 끌어내기란 용이한 일이 아니다. 생명의 비단에서 굽이치는 구름길이나 바람길, 새 떼의 비상, 물보라 이는 파도, 양 떼로 이어지는 시각적 표상과 단소소리와 기침소리,..

낮과 밤, 나의 이중생활 / 김영기(시인)

전라매일 2021.04.01. [문학칼럼-시인의눈] 낮과 밤, 나의 이중생활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갑작스러운 인지장애로 본의 아니게 치매약을 복용하면서 졸지에 이중생활이 시작 되었다. 지금까지 가끔 꿈을 꾸는 경우 외엔 잠이 내게 간섭하는 일은 없었다. 그 짧은 꿈조차도 깨자마자 기억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서 잠이란 그저 몸과 뇌가 쉬는 시간이고, 잠시 자신과의 결별 정도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꿈이 너무도 선명해졌다. 도무지 현실과 구분이 되지 않는 비현실의 현실 속에서 뇌가 잠들지 않는 것이다. 과거의 일이 편집되고 가공된 긴박하고 웅장한 영상이 밤새도록 감긴 눈꺼풀 안으로 영화처럼 펼쳐지고, 그 생생함에 몸은 의지와 상관없이 격렬하게 반응한다. 아마도 기억의 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