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서處暑 지나면
洪 海 里
처서 지나면
물빛도 물빛이지만
다가서는 산빛이나 햇빛은 또 어떤가
강가 고추밭은 독이 오를 대로 오르고
무논의 벼도 바람으로 꼿꼿이 섰다
이제는 고갤 숙이기 위하여
맨 정신으로 울기 위하여
아래로 아래로 흘러가는 강물은
무엇이 그리 급한지
반짝반짝 재재재재
몸을 재끼면서
그리움도 한 움큼 안고
쓸쓸함도 한 움큼 안고
'사랑이란 늘 허기가 져!' 하며
물결마다 어깨동무를 한다
다리 밑 소용돌이에 물새 몇 마리
물속에 흔들리는 구름장 몇 점
가자! 가자! 부추기는 바람소리에
흘러가는 물결이여, 세월이여
처서 지나면
모든 생이 무겁고 가벼운
이 마음의 끝
한탄강에 와 한탄이나 하고 있는가.
- 시집『푸른 느낌표!』(2006, 우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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