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海里 詩 다시 읽기

시집『은자의 북』(1992)에서 · 2

洪 海 里 2009. 10. 13. 17:22

 

   洪海里 시인 

   시집『은자의 북』(1992)  

 

 

~*Convallaria Majalis*~ ~*Windflowers*~

 

 

 풀꽃 한 채 / 홍해리

 

 

겨우내 설계하고
봄이 오자
지상에 집 한 채
세우는구나

꽃등
곱게
밝히고
「채근담」을 펼치다

담담하니
홀로 여는 손이
흙으로 바람으로 물로 빚은
빛을 내품고 있네

옆에서는
산새들이 지절대고
하늘엔
무심한 구름장 날다.

 

 

 

 

난초 이파리 / 홍해리

 

부러질 듯 나부끼는 가는 허리에
천년 세월이 안개인 듯 감기고
있는 듯 없는 듯 번져오는 초록빛 황홀
해 뜨고 달 지는 일 하염없어라.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세이천洗耳泉 / 홍해리

 

 

새벽이면 새들이 날아와
귀를 씻고

한낮이면 하늘이 내려와
귀를 씻는다

남들 잠든 밤이면 나무들이 모여서
귀를 씻고

사이사이 사람들이 올라와
귀를 씻는다 씻는다 하지만

그들이 씻는 것은 귀가 아니라
귀의 껍질뿐

그것을 보고 새들이 웃는다
나무와 하늘도 웃고 있다.

 

 

* 洗耳泉 : 북한산 우이동 골짜기에 있는 약수터

 

 

 

 

 

 

 

 

 

 

 

 

 

 

 

 

 

 

 

 

 

섣달 그믐 / 홍해리 

 

뒤돌아보면
텅텅 비어 있을 뿐 ---

있어야 할 자리
있어야 할 사람
보이지 않고
눈이 뿌린다

망망대해
외진 초소 하나
등불 켜들고
낯선 거리 낯선 사람들 사이
말뚝처럼 내가 서 있다

안개가 울고
별이 하나 둘 떨어지고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바람
바람만
귀를 때리며 지나친다.

 

 

 

Untitled

 

 

등잔 불빛 아래 잠 속에서 / 홍해리

 

시대는 어둠
세상만사 바람 앞의 등불이었다
천지의 칠흑 무한 자궁 속
홀로 잠들어 꿈으로 들면
천년 어둠이 흘러왔다
흘러가는 모습이 보였다
귀를 열면
문득문득 들려오는
짜르르 심지를 타고 오르는 기름소리
하나의 끈으로 우주를 밝히면서
빈 곳 없이 속속들이 채우려 해도
어차피 그댈 만나면
그림자로 길게 누워야 하는 숙명
바람 부는 날
숨을 헐떡이며
벼랑에 끝끝으로 서서
홀로 소리치다 소리치다
눈물로 전신을 사뤄 밝히는
호젓한 적막
등 시린 현실이여
그것은 한 점 슬픈 역사일 뿐인가
우수의 입술로 피우는
아름다운 불꽃 아래
그래도 조국은 아름다웠다
잠 가고 꿈만 남아 꿈도 깨이고
빈방 홀로 밝는 동짓달
쓸쓸한 지창
흔들리는 불빛으로 눈을 씻었다
등잔불만 혼자서 사위고 있었다.

 

 

 

Alone

 

 

마흔아홉 / 홍해리

 

이제 마흔아홉
세상이 이만큼 몸을 풀고 다가오네
어느 새 쓸쓸한 어깨의 가을빛
스산한 바람의 앙상한 손등
마흔 살 성긴 뼈마디 사이마다
삐걱삐걱 문을 여는 소리
목마르던 삶의 초록빛
꽃대궁에 펼쳐지던 황홀한 잔치
한때의 기쁨 아닌 것이 어디 있으랴
안개와 는개, 어둠과 암흑 속에
〈洗蘭軒〉문패 달고 바라보노니
부질없는 이름에 내가 매이네
하릴없이 난초잎 먼지 닦고 마주하면
뼈 없이도 천년을 서는
너의 가는 허리 고요한 몸짓
그 길 따라 등불 들고 가는 이 있어라
불빛 들고 모여드는 산짐승 소리
산천초목 두런두런 몸 던져오네
가슴 열고 더운 입김 뿜어 주네.

 

 

 

Meeting

 

 

말씀 하나 세워 놓고 / 홍해리

 

 

말씀 하나 세우나니,

가장 투명한 말 한마디
가장 가볍고 가장 무거운 그 말
처음이자 마지막인 그 말
나뭇이파리만한 그 말
탯줄 같고 굴레 같은 그 말
무지개 뿌리 같은 그 말
어제 오늘 내일인 그 말
죽어 한 알 사리일 그 말
나의 집인 그 말
산 같고 바다 같은 그 말
나의 법 나의 질서인 그 말
언제나 초록빛으로 빛나는 그 말
나의 섬 반짝이는 섬인 그 말
늘 가슴속에서 축포처럼 터지는 그 말
언제나 어린애인 그 말
가을 강물 가물치 같은 그 말
눈부신 꿈 하늘빛 같은 그 말
어머니 자궁인 그 말
늘 젖어 있는 그 말
산채나물 약술 같은 그 말

 

going to work

 사랑詩 / 홍해리

 

 

사랑아 사랑아
잘못 지은 푸른 죄

나는 별과 별 사이를
건너뛰었다

구름 위에 앉아
잠깐 쉬기

아득하여라
하늘자락

꺾인 풀꽃처럼 뭉개져
던져진 몸뚱어리

아득하구나
사랑이여.

 

 

In Search of Eternity   

 

 

청의출사시靑衣出社詩 / 홍해리

 

 

아득한 하늘바다를
봉두난발의 파락호가 가고 있다

미움 하나 허공에 반짝하자
살기 띤 칼이 비명을 친다

움직이지 않는 바람 앞에 서서
남가일몽을 펼치느니

꿈에서 깨어난 듯
살 수 있을까

봉두난발의 파락호
하늘바다를 아득히 가고 있다.

 

 

 

Other time of movement.  Clouds Tree

 

 

별들이 먹을 갈아 / 홍해리

 

 

시월 상달
날 저물어 별이 돋으면

방마다 지창마다
촛불 밝힐 일

하늘에선
별들이 밤 늦도록 먹을 갈고

묵향이 천지 가득
그리웁게 내리고 내려

새벽이면
素心 한 촉

소복하고
홀로 서네.

 

  

Miles to Go

 

 

가을 단상 / 홍해리

 

한때는
오로지 올라가기 위해
올라서기 위하여
올라갔었지마는
이제는
그것이 꿈이 아니라
내려가는 일
아름답게 내려가는 일

산천초목마다
저렇듯 마지막 단장을 하고
황홀하게 불을 밝히니
하늘이 더 높고 화안하다
들녘의 계절도
무거운 고개를 대지의 가슴에 묻고
깊은 사색에 젖어
이제 우리 모두 우주의 잠에 들 때

맑게 울려오는 가락
천지 가득 퍼지고
잔잔히 번지는 저녁놀
들판의 허수아비를 감싸안는다

산자락 무덤가의 구절초도
시드는 향기로 한 해를 마감하고
그리고
과일이 달려 있던 자리마다
시간과 공간이 하나가 되니,

오르기 위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내려가기 위하여
아름답게 내려가기 위하여
깊이 깊이 껴안기 위하여
오르는 것뿐.

 

 

 

洪海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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