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들 / 홍해리
가을걷이 끝나고
눈 시린 하늘 아래 빈 들에 서면, 빈들
빈들, 놀던 일 부끄러워라
빈 들만큼, 빈 들만큼 부끄러워라
이삭이나 주우러 나갈까 하는
마음 한 켠으로
떼지어 내려앉는 철새 떼
조물조물 주물러 놓은 조물주의 수작들!
해질녘 / 홍해리
꽃들이 만들어내는 그늘이 팽팽하다
서늘한 그늘에서도
어쩌자고 몸뚱어리는 자꾸 달뜨는가
꽃 한 송이 피울 때마다
나무는 독배를 드는데
달거리하듯 내비치는 그리운 심사
사는 일이 밀물이고 썰물이 아니던가
꽃이 피고 꽃이 지는 세상
하늘과 땅 다를 것이 무엇인가
가만히 있어도
스스로 저물어 막막해지는
꽃그늘 해질녘의 풍경소리!
귀가歸家 / 홍해리
백운白雲 인수仁壽 만경萬景 향해 걸어가는
해질 임시
삼각산三角山이 어느새 보이지 않는다
아침에 금빛으로 반짝이던 길
은비단 깔아놓은 마당에 멎고
별 몇 개 꽃잎처럼 떨어져 있다
영원이 날개를 접고
칠흑으로 잠들어 있다
바위 잠 속으로 들어간다
바위 속에 내가 있다.
황태의 꿈 / 홍해리
아가리를 꿰어 무지막지하게 매달린 채
외로운 꿈을 꾸는 명태다, 나는
눈을 맞고 얼어 밤을 지새고
낮이면 칼바람에 몸을 말리며
상덕 하덕에 줄줄이 매달려 있는
만선의 꿈
지나온 긴긴 세월의 바닷길
출렁이는 파도로 행복했었나니
부디 쫄태는 되지 말리라
피도 눈물도 씻어버렸다
갈 길은 꿈에서도 보이지 않는
오늘밤도 북풍은 거세게 불어쳐
몸뚱어리는 꽁꽁 얼어야 한다
해가 뜨면
눈을 뒤집어쓰고 밤을 지샌 나의 꿈
갈갈이 찢어져 날아가리라
말라가는 몸속에서
난바다 먼 파돗소리 한 켜 한 켜 사라지고
오늘도 찬 하늘 눈물 하나 반짝인다
바람 찰수록 정신 더욱 맑아지고
얼었다 녹았다 부드럽게 익어가리니
향기로운 몸으로 다시 태어나
뜨거운 그대의 바다에서 내 몸을 해산하리라
- 월간『우리詩』(2009. 2월호)
洪海里 시인
블로그/ http://blog.daum.net/hong1852
카페 / http:// cafe.daum.net/urisi
* 최병무 시인의 블로그(http://blog.daum.net/dongsan50)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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