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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꽃과 별과 시 -洪海里의 '찔레꽃' / 김삼주(시인)

洪 海 里 2010. 5. 29. 05:22

 

  

꽃과 별과 시
  -홍해리, 「왜이리 세상이 환하게 슬픈 것이냐」

                                                              김  삼  주


   홍해리의 ‘찔레꽃’
   40년을 피운 꽃의 노래 

  그 향기에, 빛깔에, 환심장할 겨를도 없이 어느새 찔레꽃의 계절이 훌쩍 지나가 버렸습니다. 늦은 봄 들녘 여기저기 지천으로 피는 찔레꽃, 가시는 왜 또 그리 날카롭고 많았던지 땔감으로 쓸 엄두도 못 냈고, 그래서 봄마다 더 무성히 들녘을 수놓곤 했었지요. 아마 지금쯤은 흰 꽃잎도 노란 꽃술도 장맛비에 다 이울고 겨울날 새들을 위해 열매들 살찌우고 있겠지요. 
 그 찔레꽃이 한때 저에겐 배고픔의 꽃이기도 했습니다. 햇보리는 아직도 들녘에서 푸른 이삭으로 서 있어 쑥 범벅이나 수리취 범벅으로 시장기를 삭이던 보릿고개 시절, 찔레덤불은 달금하면서도 삽미澁味가 받히는 찔레 순으로 우리를 유혹하곤 했었지요. 늦은 봄 해는 길어 배고픈 하학 길은 더더욱 더디기만 했고, 그러다 찔레덤불이라도 만나면 우루루 몰려가 웃자란 것이거나 덜 자란 것을 가릴 것 없이 다투어 찔레를 꺾곤 했지요. 그게 무슨 요기 거리라도 되는 양 순도 꽃잎도 다투어 먹곤 했었지요.
 하지만 또 한때 찔레꽃은 혼백 같은 것이기도 했습니다. 정말이지 달밤에 만나는 찔레꽃 덤불은 사뭇 무서운 것이었는데요, 어쩌면 그것이 흰옷을 입은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산야를 피로 물들인 한국전쟁이 휩쓸고 간 자리, 산기슭엔 여기저기 공동묘지가 생겨  났고, 때로 흰옷을 입은 여인들이 그곳을 눈물로 서성이곤 했으니까요. 죽음이 많았던 전쟁 공간, 무서움이 많은 어린 나이의 우리들에겐 귀신 얘기도 많았었지요. 그러니 공동묘지와 흰옷 그리고 흰 달빛의 정황 속에서 찔레꽃 덤불을 죽은 자의 혼령인 양 무서워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나이가 든 이후 저에겐 찔레꽃 덤불에 대한 또 하나의 영상이 겹쳐 있습니다. 홍해리 시인이 “너를 보면 왜 눈부터 아픈 것이냐”라고 이 시에서 표백하듯, 

      
너를 보면 왜 눈부터 아픈 것이냐

흰 면사포 쓰고
고백성사하고 있는
청상과부 어머니, 까막과부 누이

윤이월 지나
춘삼월 보름이라고 
소쩍새도 투명하게 밤을 밝히는데

왜 이리 세상이 환하게 슬픈 것이냐

- 홍해리,‘왜 이리 세상이 환하게 슬픈 것이냐 [찔레꽃, '牛耳詩', '04. 6월호]

 저에게도 목이 먼저 메는 찔레꽃의 환영이 있습니다. 평생을 농사일로 살다간 어머니의 환영, 하얀 머리에 흰옷을 입고 동구 밖 멀리 시선을 모은 채 나를 기다리던 어머니, 찔레꽃에 겹치는 생각은 아득히 어머니에게로 이어지고 또 그 어머니의 나라, 고향에로 이어지곤 합니다. 찔레꽃은요, 그래서 제게 있어 또한 그리움의 꽃이기도 합니다. 
 그런 그리움의 끝자락에서 저는 다시 이 시를 읽습니다. “너를 보면 왜 눈부터 아픈 것이냐”라는 찔레꽃을 향한 원망의 표백을 마치 제 체험인 양 반추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구절 속에 이 시의 비극적 정서는 남김없이 담겨 있는데요, 무의식의 심층에서 자신도 모르게 치밀어 오르는 순수 기억이 그런 반사행동을 유발하는 것이겠지요. 그 사연에 대하여 이 시의 화자는 “청상과부 어머니, 까막과부 누이”라고만 하고서 더 깊은 속사정을 덮어두고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하여는 보다 세심한 헤아림이 필요할 것 같군요. 단순히 가족사의 비극을 암시적으로 얘기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요, 그 이상의 계산된 노림이 분명히 있는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소월이 그의 시 ‘접동새’에서 “누나라고 불러보랴/오오 불설워/시새움에 몸이 죽은 우리 누나는/죽어서 접동새가 되었습니다”라고 노래한 것처럼 말입니다. 소월은 이 시에서 민담 속의 인물을 처음엔 아홉 오라비의 누나로 얘기하다가 이 대목에 와서 화자의 누나로 바꿔 버리지 않습니까. 혹시 홍해리 시인도 그와 유사한 어떤 의도에서 청상과부, 까막과부를 화자의 어머니와 누이로 등장시킨 의도가 엿보이지 않습니까. 말하자면 우리 모두가 함께 안고 있는 민족적 비극성을 시인이 자신의 것으로 끌어안는 것이지요.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땅에는 주어진 목숨 다하지 못하고 초개같이 쓰러져 간 생명들이 너무도 많았지요. 끊임없는 외침 앞에서, 대동아전쟁에서, 동족 상잔의 비극 한국전쟁 에서 또 월남전쟁에서 무수한 생명들이 희생되지 않았습니까. 또 그뿐만도 아니었지요. 자연의 재난 앞에서, 이런저런 사고 앞에서, 산에서, 바다에서, 공사현장에서…… 푸른 목숨들이 사라져 가곤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쪽은 으레 바깥일을 담당한 남자들이었구요. 그 비명非命의 슬픔은 죽은 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늘 살아남은 자의 것으로 남아 있구요. 아마도 그런 죽음과 찔레꽃이 가장 근년에 마주친 것은 육이오전쟁이 아닐까요. 전쟁이 발발한 시점을 우리는 잊지 않으려고 기념 행사를 해 왔고, 그 육이오라는 말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오뉴월엔 찔레꽃이 흐드러지게 피었고, 또 망자를 잊지 못하는 이들이 흰옷 차림으로 고인의 유택을 찾아 나서고……. 특히 미망인이 된 여인들의 울음소리가 우리의 가슴을 저리게 하고, 슬픔은 한 슬픔을 넘어 우리 겨레 모두에게로 흘러오고……. 홍해리 시인은 그런 민족적 비애를 ‘어머니와 누이’로 지칭하여 자신의 가슴속에 통과시키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 까닭에 저 찔레꽃 덤불은 정원에 소담스레 피어오른 것보다는 호젓한 들길에 피어 있는 것이 더 슬프게 우리 가슴으로 다가오겠지요. 아니, 낮은 벼랑에서 바다를 향하여 그 찔레꽃 덤불이 피어 있다면 더더욱 애상미를 유발하지 않겠습니까. 
 홍해리 시인의 찔레꽃을 두고 민족적 비극성의 자아화라고 생각한 데는 또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춘삼월 보름이라고/소쩍새도 투명하게 밤을 밝히는데”라고 하면서 우리 문학의 관습적 상징이 되어버린 소쩍새를 끌어오는 대목입니다. 촉蜀 나라 망제望帝의 혼이라 하여 귀촉도歸蜀道 귀촉도라 운다는 소쩍새, 앞에서 얼핏 보고 지나쳤던 소월의 ‘접동새’도 그것 아니겠습니까. 이처럼 홍해리 시인은 다층적 의미의 꿍꿍이속으로 찔레꽃을 형상화함으로써 우리를 애상의 심연으로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하기는 시인이 꽃으로 우리의 마음을 흔든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육십년대 중반 저 ‘투망도投網圖’의 세계에도 꽃들이 피었었으니까요. 

  그대는 어디서
  오셨나요
  그윽히 바윗가에 피어 있는 꽃
  봄 먹어 짙붉게 타오르는
  춘삼월 두견새 뒷산에 울어 
  그대는 나리에 발 담그고
  먼 하늘만 바라다 보셨나요
  바위병풍 둘러 친
  천 길 바닷가 철쭉꽃
  바닷속에 흔들리는 걸
  그대는 하늘만 바라다보고
  붉혀 그윽히 웃으셨나요
  꽃 꺾어 받자온 하이얀 손
  떨려옴은 당신의 한 말씀 탓
  그대는 진분홍 가슴만 열고.

  - '헌화가獻花歌' 전문

 다 아시다시피 이 시의 뿌리는  ‘삼국유사’에 소 몰고 가는 노인이라고만 밝힌 한 사내의 은근한 마음이 밴 노래 ‘헌화가’가 아닙니까. 석벽 위에 핀 아름다운 꽃을 갖고 싶어   하는 수로水路부인에게, ‘내가 주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면 벼랑 위의 꽃을 꺾어 주겠다’는 의뭉스런 말과 함께 꽃을 꺾어 바친 사내의 노래, 그런 사랑의 세계가 저 헌화가의 공간이 아닙니까. 의뭉스런 이 사랑의 세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홍해리 시인은 연모의 체온을 한층 더 높여 놓고 있습니다. ‘짙붉게 타오르는 진분홍 가슴’의 시각 심상과 ‘두견새 울음’의 청각 심상을 결합하여 우리의 마음까지 붉게 물들이고 있습니다.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춘향春香’도 꽃이어서 “빠알간 꽃이 피는 그대/안가슴에 부는 바람은/옷고름 풀어 헤쳐 놓고 말것다.”고 하고요, ‘겨울 아침의 주차장’도 “그곳은꽃밭이었다/꽃밭의한낯이었다/여자와여자들의복부였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투망도’의 세계처럼 꽃으로 흐드러진 시 공간은 홍해리 시인의 미학 한 가닥을 이루며 이후에도 지속되지요. 시집 제목만 대충 들추어보아도 ‘화사기花史記’며 ‘대추꽃 초록빛’이며 ‘난초밭 일궈 놀고’며 ‘애란愛蘭’이며 꽃의 물결이 일렁이지 않습니까. 
 시의 길 사십 년, 참으로 긴 세월이었습니다. 한 편의 시에 기울이는 아픔, 아니 한 편의 시를 낳기까지의 고뇌를 생각하면 사십 년의 세월이란 참으로 크나큰 아픔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아니 필연이었는지 모르지만, ‘헌화가’의 철쭉꽃에서 ‘왜 이리 세상이 환하게 슬픈 것이냐’의 찔레꽃에 이르는 사십 년은. 또 그만큼 향기롭고 아름다운 시의 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