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詩> 설마雪馬

洪 海 里 2010. 6. 1. 10:51

 

설마雪馬 / 홍해리


눈처럼 흰 말

눈 속에 사는 말

눈 속을 달려가는 말


설마 그런 말이 있기는 하랴마는

눈처럼 흰 설마를 찾아

눈 속으로 나 홀로 헤맨다 한들


설마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만

말은 한 마리도 보이지 않고

말 달려가는 요란한 소리만 들려올 뿐


한평생 허위허위 걸어온 길이라 해도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아 막막하니

말꾼 찾아 마량馬糧을 준비할 일인가


오늘 밤도 눈 쌓이는 소리

창 밖에 환한데

설마가 사람 잡는다 해도


나를 비우고 지우면서

설마 설마 하는 마음으로

설마를 찾아 길 없는 밤길을 나서네.

              - 시집『비밀』(2010)에 수록


*  동음이의어를 이용한 재미난 시다. 대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믿으면서도 어쩌면 그 일이 현실로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아주 버리지는 못할 때, ‘설마’라는 말을 떠올리게 된다. 시인은 눈처럼 희고 눈 속에 사는 설마의 존재에 대해서 의심을 하면서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설마설마하면서 설마를 찾아 나서고자 한다.

  설마를 그리는 시인의 노력은 설마의 달려가는 발굽소리를 듣는 데까지 이른다. 조금만 더하면 설마의 꽁지도 보일 것 같지만, 아마도 그런 일은 생길 성싶지 않다. ‘설마’는 화자가 추구하는 이상적 가치 혹은 궁극의 지향점으로 존재하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세계에 좌절하면서도 시인은 현실적 노력을 마다하지 않는다. 말꾼을 찾아보기도 하고 말먹이도 준비해 둔다.

  여하한 노력 끝에 설마가 욕심으로 가닿을 수 없는 경지임을 깨닫기에 이르렀으나 시인은 밤길이든 꿈길이든 길로 나서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다가갈 수 없는 세계인 줄 알면서도 그 세계를 넘보고 싶은 마음 또한 어찌하지 못하는 것이다.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눈 덮인 언덕, 그 위에 외롭게 서 있을 설마를 생각해 본다.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 설마, 설마의 비밀을 캐고 싶다. 시인의 설마에 어설프게 고삐를 매려 하지 않았나 내심 걱정도 하면서.          - 이동훈(시인)

 

* 병솔나무꽃(bottle brush tree)은 http://blog.daum.net/jib17에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