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여 가을에는
네 몸에 불을 질러라
다 태워버려라
한여름 피어오르던 짙은 젊음
이제 마른 풀잎으로 남아
시든 허상뿐
겉불을 질러
겉으로 무성한 허무의 껍질
다 태우고 나면
허망한 잿더미
바람에 풀풀 날리고
다 쓸려가고 나면
남을 것은 이 지상엔 없다
땅 속 깊이 묻혀
불로도 타지 않고,
죽지 않고 박혀 있는
사랑의 뿌리
다시 캐내어
불로 사루고 사루면
까맣게 남는 새까만 알갱이
그것도 사랑은 아니다
다시 씻고 부시고 닦으면
한 줌 금으로 남을까
다 타서 없어진
네 사랑이 향기로울까
사랑이여
이 가을에는
네 몸에 불을 질러라
다 태워버려라.
시집『푸른 느낌표!』(우리글,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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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벼락치다" 를 홍해리 시인님으로부터 선물로 받게 되었다.
책상 앞에 나와 늘 함께 있는 "봄, 벼락치다" 를 하루에 몇 번씩 읽고
또 감상하며 느껴본다.
자연과 함께하는 이글을 대하다 보면 나 자신이 자연이 되기도 한다.
어떤 꽃이나 사물을 아무렇게 대하지 않고 가슴으로 받아들이며
끌어안으려는 홍 시인님의 뜨거운 열정을 본 듯하여 그 마력에 빠져
들곤 한다. 내가 주인공이 될 수 있는 홍해리 시인님의 글.
오늘도 시집 속에 주인공이 되어 봄, 속에서 벼락을 맞고 있는 해바라기.
* 위의 시 '사랑이여 가을에는'의 부제는 '향부자香附子'이다.
시집『푸른 느낌표!』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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