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바람도 구멍이 있어야 운다 』2016

<시> 적막을 위하여

洪 海 里 2012. 9. 26. 04:12

 

적막을 위하여

- 秀然에게

 

洪 海  里

 

 

불알 두 쪽 사내도 못 되어서

눈도 가려진 무거운 길목에서

너는 홀로 고요해지려는 것이냐

더욱 환해지는 달빛을 보려거든

출렁이는 무덤 같은 너의 두 유방

슬픔으로 몸을 입는 한때가 있었거니

저 밝은 죄, 환한 죄 같은 것으로

너는 열병처럼, 염병처럼 우는 것이냐

고요해지고 또 고요해져서

드디어 적막에 들거든

지독한 어둠도 더욱 단단해지리니

달빛 속으로 홀로 흘러 흘러들어가

네가 숨을 수 없는 허공을 아득히 채우거라

한 생이란 한 줌 모래알이 흘러내리는 시간

모래알을 세게 움켜쥐면 쥘수록

시간은 빠르게 빠져나가기 마련이라서

적막은 스스로 제 속에 고요를 기르고

쓸쓸함과 외로움도 겹쳐 하나 되는 것이니

마음이란 깊고 넓기 그지없음을 부디 알거라

이루지 못하고 가차 없이 떨어져 내리는

마음속 오래뜰에 하얀 소리의 파편들이 보이거든

허예진 추억의 물꽃이라 여기거라

지는 것은 아름답기 분통같아서

꽃도 싸움도 일찍 진 것이 오래가느니.

 


- 시집『바람도 구멍이 있어야 운다』(도서출판 , 2016)

      - 계간《시에》(2013.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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